오랜만에 서평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책을 읽는 것도 여전히 좋고, 다 읽고나서 좋아하는 구절을 정리하는 것도 즐겁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인 서평은, 어렵다. 읽은 책의 또 다른 분신을 낳는 듯한 느낌, 부담감이라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어떤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저 그 일이 즐겁기만 하면 안 되고 쓴맛도 보아야 한다고들 말한다. 얼마 전에 본 일본 드라마에서도 그와 비슷한 대사가 있었다. 사랑은 그저 행복하고 기쁘기만 하지 않다고.
얼마 전 회식자리에서 어떤 분도 그렇게 조언하셨다. 통역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 번은 울어야 한다. 전쟁 같은 회의의 통역을 반복하며 한 번은 울어야 성장한다고 말씀하셨다. 한 없이 즐겁기만 해서는 실력을 쌓을 수 없다는 의미일 게다.
지금 내가 서평쓰기가 어려워진 것은, 더 크기 위한 성장통일 게다.
인생에서 아픈 시간이 찾아오는 것 또한 성장하기 위한 하나의 마디라는 의미일 게다.
독서 수업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보는 게 마냥 좋다고 했을 때, 그것은 아직 내가 성장통을 겪을 만한 단계에조차 이르지 못했다는 걸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된다.
안상헌의 <생산적 책읽기 50>(북포스, 2005)에는 다음과 구절이 있다.
“배움의 준비는 필요성인 경우가 많다.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안타까워하는 그 순간이 바로 배울 수 있는 시간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보일’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야 절박해지고 절실해진다. 절박함과 절실함이 있어야, (중략) 돌아갈 힘을 남기지 않고 전력투구할 수 있다."
아직은 모든 면에서 부족한 나이다. 부족하다는 것을 나 스스로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들이 더 많을 것이다. 모르는지 조차 모르면서 지나쳐온 많은 것들을 더 알아가고 싶다.
아직은 일에서도 삶에서도 자아에서도 부족한 것들 투성이고 미숙한 것들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위의 책의 구절을 통해 조금은 위안을 삼고 싶다.
부족한 면들을 더 알고 싶어 한다는 것. 그 ‘필요성’을 내가 느끼고 있다는 것. 저자의 말대로, 필요성의 자각이 나의 시각을 밝게 해 줄 것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