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같다.
아이들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언어를 ‘고민하고’ 있다. ‘고민하고’ 있을 뿐 아직 ‘배우고’ 있는 단계는 아니다. 배우고 싶은데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알지 못해 ‘배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루이스 세뿔베다의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란 책에서 갈매기 켕가는 말한다. 인간들은 제 각기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참 잘도 말이 통한다고. 언어가 통한다고 마음이 통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언어가 더 중요한 순간이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어린 친구들과 나는 마음도 언어도 통하고 싶다.
어떤 책에 이런 말이 있었다. ‘사랑한다’는 것을 말로 하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을 전할 방법이 없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쓰는 거라고. 아이들에게는 ‘사랑해’라는 말이 아닌 다른 게 필요하지 않을까. 사랑받고 있구나, 관심 받고 있구나, 내가 나의 빛깔대로 훨훨 날 수 있기를 바라는구나, 라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여전히 생각이다. 방법은 아직 모르겠다. 위의 책에서, 소르바스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어린 갈매기를 키우며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고양이가 갈매기를 키우니 알리가 없지!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모든 부모나 어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아이에게, 그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고양이가 백과사전에서 답을 찾고 주위 고양이들에게 자문을 구하며 조심스레 키워가듯 모든 부모나 어른들도 그렇게 아이들을 키워나가고 있는 게 아닐까.
고양이 소르바스가 어린 갈매기가 나는 모습을 꿈꾸며 응원하던 모습을 보며, 나를 그 소르바스에게 오버랩해 본다. 어린 갈매기가 날개를 펼치고 갈매기답게 날아가듯 나의 어린 친구들도 그렇게 그 어린 친구들 자신답게 자신의 삶을 날아갔으면 좋겠다.
고작 한 번 만났으면서 지나친 꿈을 꾸는 건 아닌지 나 자신을 위한 욕심은 아닌지 나에게 묻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봄이니까, 조금 더 욕심을 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