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서로 기대며 사는 삶

by 유정

내가 잘 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는 ‘기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을 생각하면, 거절당하는 두려움이 함께 떠오른다.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편하게 기댈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도대체 기댄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에 빠진다. 어떻게 하는 것이 기대는 것일까. 그리고 기대는 행위 자체가 무엇인지도 나는 모르는 듯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송정림의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나무생각, 2013)라는 책에서 기대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내가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던 기대는 것에 대해 내가 알지 못하던 시각에서 쓰고 있어 약간의 충격을 동반한 신선함이 담긴 글이었다.


“인간인 우리는 많은 사물과 자연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우울한 날에는 하늘에 기대고, 슬픈 날에는 가로등에 기댑니다. 기쁜 날에는 나무에 기대고, 부푼 날에는 별에 기댑니다. 사랑하면 꽃에 기대고, 이별하면 달에 기댑니다.”


나는 그동안 기댄다는 것은, 오로지 '힘을 가진' 플러스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 사람 중에서도 내가 기대도 되냐고 허락을 구할 수 있는 사람, 또한 허락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송정림의 위의 글에서 그런 나의 편견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인간은, 우리는, 그리고 아마도 나는 무의식 중에 많은 사물과 자연에 기대어 산다. 그렇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내가 인식하지 못했을 뿐.

슬픈 마음을 가진 날 올려다 본 하늘과 하늘의 조각달, 그리고 우울한 날 바라본 길가의 꽃들. 그런 것들에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기대고 있었다.


같은 책 중에 이런 구절도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비스듬히 기댄다는 것은 그의 마음에 내 마음이 스며드는 일입니다.

그가 슬프면 내 마음에도 슬픔이 번지고 그가 웃으면 내 마음에도 기쁨이 퍼집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댄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상대의 마음이 내 마음에 스며드는 것이란다. 그것이 기댄다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한 기댄다는 것, 내가 그렇게 어렵고 두렵게 여겼던 기댄다는 것이 '스며드는 것'이었다.

나는 애당초 기댄다는 것에 대한 정의를 잘못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어렵게 여기고 거절당하는 두려움을 느꼈었던 것은 아닐까.


“서로서로 기대고 산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연이겠지요.

그 인연의 언덕은 어느 날은 흐리고 어느 날은 맑게 갤 겁니다.

흐리면 흐린 대로, 개면 갠 대로 그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어 주는 것...

그것이 서로 기대고 살아가는 인연의 덕목이겠지요.”


따뜻한 글이다. 따뜻한 문장이다. 따뜻한 글자다.

차가운 직선과 약간의 곡선으로 이루어진 글자가 모이고 모여 따뜻한 온기를 가진 글로 탄생했다. 글은, 책은 신비롭다. 문자 속에 따뜻함을 품을 수 있는 요상한 도구이다.


가끔은 어렵고 쉽게 소화되지 않는 글이 멋있어 보이고 그런 책을 읽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책처럼 마음의 온기를 유지시켜주는 책은, 마치 삼시 세끼 주식과 같이 나를 살게 한다. 이런 책이 나를 숨 쉬게 한다.

책 속에서 또 하나를 배웠다. 기댄다는 것이 무언인지.


올해는 작년보다, 지금까지의 나보다,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을 한다. 내가 사람들을 진심으로 품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할 때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줄도 알아야 하고, 힘들 때는 솔직하게 누군가의 어깨에 기댈 줄도 알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스스럼없이 기댈 수 있는 사람,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어깨를 스스럼없이 내어줄 수 있는 사람.

서로서로 기대고 산다는 것이 인연이라는 이 문구가, 오늘 내 삶의 선물처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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