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이란 책을 읽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많은 생각들이 소용돌이친다.
책을 덮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다이어리에 새로운 꿈 목록 하나를 추가한 일이다. 예전부터 가슴에 품고는 있었지만 다이어리에 눈에 보이는 글자로 꼭꼭 눌러쓸 만큼의 용기가 나지 않던 꿈이다.
소설처럼의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다. 작은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어 아이들이 마음껏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책을 읽지 않더라도 언제든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 그리고 그 중에 책 읽어주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만들어 주고 싶다. 만약 내가 결혼을 했다면 나의 아이에게는 매일 책을 읽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친구와도 의미 없는 이야기에 허무해 하지 말고 서로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한 장면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6학년 때, 저녁까지 단짝 친구와 매일 놀러 다녔다. 우리집이나 친구네 집에서 놀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놀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그때 우리 사이에 ‘장난전화 걸기’가 한때 유행이었다. 전화를 걸어 딴 사람인 척 하거나 그랬던 것 같다. 어느 날 친구와 우리집에서 놀고 있는데 같은 반 남자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억에 남는 건, 그 아이가 전화를 해서는 계속 만화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농담을 던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끊지도 않고 계속해서 만화책만 읽었다.
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무슨 말을 걸어도 끄덕하지 않고 계속해서 만화 대사를 읽었고 나와 친구는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웃기만 했다. 마지막에 어떻게 전화를 끊었는지, 다음 날 학교에서 그 친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읽어준 책은 무슨 책이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어준다'는 표현 앞에 그 친구가 떠오른다. 오랜만에 찾은 기억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가슴이 따뜻해지고 생각이 물이 끓듯 뒤엉켜지며 지층이 분리되었다가 재배열되는 듯한 이런 분열의 시간이 즐겁다. 가끔 매일의 일상이 지루하고 아침에 눈 뜨는 것이 식상하게 느껴질 때가 찾아오곤 하는데 책은 그런 삶의 무료함을 잊게 해 준다. 그리고 잊었던 꿈을 꾸게 하고 지금처럼 먼지 쌓인 저 기억너머의 기억마저 순식간에 찾아다 내 눈앞에 가져다 준다.
무뚝뚝하지만 웃을 때는 누구보다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웃던, 만화책 읽어 주던 그 아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어제는, 인생의 시간이 원래의 시간보다 길게 늘어진 듯 필요이상으로 흘러넘친 듯 부담스런 느낌이었는데 오늘 이 책으로 인해 제 시간을 찾은 듯하다. 책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