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측하다.. 속이 울렁거린다. 맞선을 보게 될 줄이야.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이모의 끈질긴 설득에 넘어간 탓인데 이걸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퉁퉁 부은 얼굴을 그다지 진정시킬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느릿느릿 단장에 나섰다. 1분 1초마다 후회막심이었지만 울상을 해봐도 대신 책임져줄 사람은 없는 터였다.
힘겹게 몸을 움직였지만 메이크업은 공들여하고 있는 나 자신이 보였다. 우습게도 퇴짜는 맞기 싫었던 모양이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다시 주저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싱글 라이프를 충분히 행복하게 즐기고 있다고 자부했건만, 이게 불효라고 여겨질 줄은 몰랐다. 아이만 보면 눈가가 촉촉해지는 부모님을 보며 마음이 흔들렸다. 딸이 화를 낼까 싶어 조심스럽게 그 단어를 언급하는 두분에 대한 애잔함도 섞였다.
'진짜 만나기만 한다'고 선언했지만 그 누구도 기대감을 버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상대가 누구든 가야만 하는 분위기다. 요즘에도 그런 집이 있나 했더니 그게 여기 있었네.
카페에서 처음 만난 상대는 나이가 많았고, 소탈했고, 편안했다. 특히 결혼을 정말 원하고 시급한 것으로 보였다. 문득 궁금해졌다. 대체 왜 가정을 꾸리고 싶은지. 심드렁한 내 질문에도 최선을 다해 답변하는 그, 취미를 함께하고 싶고 도란도란하게 지내고 싶단다.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 말이 혼란스러운 내게 답을 줬다. 난 아직 내 것을 누군가와 공유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 내가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썩 외롭지 않았구나 하는 사실.
원하지도 않은 그 자리에 나간 것은 내 마음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결혼 적령기는 지나고 있고, 이대로 내 생활을 즐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또 후회할 날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무엇을 택하든 분명히 후회는 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환상이 있기 마련이니까.
애프터를 거절하고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하필 근처에 예식장이 있었던 탓인지 대뜸 '결혼식에 다녀왔어요?'라는 질문이 훅 치고 들어왔다. '선 봤네요' 예상 밖 대답에 택시기사 아저씨가 빵 터졌다. '내 아들도 노총각인데..'
잘못 걸렸다. 20분간 기사 아저씨의 아들 장가 걱정을 듣느라 기운을 쏙 뺐다. 결국 기사 아저씨 아들이 운영한다는 카페에 꼭 방문한다는 약속을 하고 하차했다.
참 이상하고 묘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