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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경 Dec 07. 2022

마음 약한 상사는 꼭 피해라

만만히 봤다간 큰 코 다친다


지역의 한 신문사에서 한 달여간 인턴으로 근무했다. 3년간의 재택업무에 지친 나를 위해 선택한 일이었다. 상사이자 대표 격인 A는 내 경력을 후려치다 못해 최저시급인 인턴으로 채용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는데 나도 모르게 수락했다. 면접 내내 월급도 못 주는 어려운 지역 신문사가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며 세뇌시키던 A의 말에 '그렇다면야'라는 생각으로 덤빈 것이 화근이 됐다. 결과적으로 나는 한 달 만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쳐나왔다.


여러 직종에 몸담으면서 각종 인간군상을 경험했다. '또라이 질량 법칙'이라고 했던가. 어디에든 빌런들은 존재했고, 그들에게 당할 때마다 심장이 단단해졌다고 스스로 자부했건만, 새로운 유형의 상사에 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통제 지옥

A는 가장 먼저 기강 잡기를 시전 했다. 일단 출근해 A에게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단톡방에 아침 인사를 올려야 했다. 앞서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입사한 새내기들이 일주일 만에 달아났단다. 마치 Z세대가 사회 부적응자인 양 비난하는 A의 말에 차마 동의하지 못했다. 어린 나이가 아닌 내게도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A가 내세운 명목은 소통과 친목 도모였는데, 프리랜서를 하며 극도의 효율성에 미친 단톡방에 익숙해져 있던 내겐 여간 낯선 업무가 아닐 수 없었다.


정말 힘들었던 것은 A의 강한 통제였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지시 사항을 각색해 우기는 건 애교다. 여기에 통제까지 곁들이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A는 아침 문안 인사도 모자라 틈틈이 전활 걸어 업무 동태를 파악했다. 퇴근길에도 자신의 전화는 꼭 받아야 한다고 강요했는데, 언제 어디서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는 이유였다. 이해는 된다. 하지만 내가 초보운전에 야맹증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고도 강요한 A의 생각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매일 1~2시간씩 A의 전화를 받았지만 90%는 기자 B에 대한 험담이나 시시콜콜한 본인 자랑뿐인 실속 없는 사담이었다.


정(情) 없이 왜 이래?


A는 매번 자신이 정이 많고 마음이 약하다고 호소했다. 알고 싶지 않은 사생활도 술술 털어놓았고, 모두를 미워했다. 자신이 가장 열심히 일하며, 또 가장 힘들다고 했다. 자신의 이런 어려움을 사람들이 모른다며 말하지 않고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랬다.


그런 A는 부하직원 B가 소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탐탁지 않게 여겼다. 내게 B가 인수인계한 모든 내용을 보고하게 하고 B의 행동을 나노 단위로 분석해 비판했다. B와 단둘이 식사라도 하면 대화 내용을 묻거나 자신이 B에게 하고 싶은 지적을 후임인 나보고 대신 하라는 얼토당토 않은 주문을 하기도 했다. 


B는 말수가 적고 융통성이 없지만 성실하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 모두가 장단점을 갖고 있는 것처럼 B 역시 마찬가지였다. A는 B에게 답답하거나 화가 나면 이유도 없이 내게 화를 냈다. B 역시 내 실수 대신 혼이 났고, 온전히 뒤집어쓰는 일도 있었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A의 감정적인 리더십에 나와 B는 심하게 동요했다. 서로가 동지인 동시에 원수이기도 했다. '도대체 왜?'라는 생각이 일하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균열

강하게 단련된 내 심장에도 균열은 갔다. A에게 맞추려 최선을 다했고, 그도 날 신뢰했다. 하지만 매일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의 본색은 퇴사를 통보한 순간 드러났다. 그는 수십 통의 카톡 메시지에서 분노, 슬픔, 호소, 질책 등 온갖 감정을 쏟아냈다. 뿐만 아니라 퇴사 이후로도 수십 통의 전화를 해댔다. 역시나 B의 험담였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카톡 메시지를 남겼다. 부재중 전화에 A의 이름만 떠도 진절머리가 났다.


그의 이름을 차단한 이후에야 나는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악몽도 꾸지 않았고, 무기력한 감정도 사라졌다. 이번 경험으로 나는 뼈져리게 깨달았다. "마음 약한 상사는 피해라, 휘둘릴 바엔 도망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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