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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절연가족 05화

할머니의 저주

언제쯤 빠져나갈 수 있을까?

by 퍼플슈룹

서울깍쟁이 울 엄마와 무뚝뚝한 마산 사나이 울 아빠는 결혼을 허락을 받기 위해 마산으로 내려갔다. 할아버지는 반갑게 맞아주셨지만 할머니는 울 엄마를 못마땅하게 보셨고, 반대를 심하게 하셨다고 한다. 그럼에도 결혼에 골인한 울 부모님, 엄마를 기다리는 건 매서운 시집살이였다. 할머니의 혹독한 시집살이로도 숨이 넘어가는데, 삼촌과 고모들까지 울 엄마를 괴롭히기까지 했다. 깨를 볶아도 모자랄 신혼생활이 평탄할 리가 없었던 부모님은 결국 마산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우여곡절 끝에 인천에서 자리 잡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내셨다.


껄끄러운 시댁이지만 6남매 맏며느리인 엄마는 명절 때마다 내려가는 등 며느리로서 도리를 다했다. 그러던 중 내가 20대 후반 때쯤 사달이 벌어졌다. 마산에서 우리 집으로 올라와 지내던 할머니와 엄마가 말싸움을 하게 됐다. 결국 자리를 박차고 마산으로 내려가겠다던 할머니는 돌이킬 수 없는 말을 뱉고 말았다.


"내가 죽어서도 너희들 잘 되게 하나 봐라!"


표독한 표정과 날카로운 할머니의 목소리를 거실에 앉아서 정면으로 보게 된 나는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자신의 큰아들과 큰며느리, 손녀에게 저주를 퍼부은 할머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 뒤로 전화가 몇 번 오갔지만, 그렇게 인연은 끝났다. 손주들을 끔찍하게 아끼시던 할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냉랭한 할머니를 향한 정이 없었던 나에게 큰 타격은 없었다. 그러나 부모님이 걱정됐다. 하지만 묻지 못했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난 아빠의 마음을 모른다. 도저히 건들 수 없는 영역이라 묻지 못하지만, 엄마는 다르다.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아빠에게 지금까지도 많이 미안해 한다. 아빠는 그런거 아니라고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10년 전부터 아프기 시작한 엄마는 할머니의 저주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할머니가 그런 말을 했기 때문에 내가 더 아픈거야. 자식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하니" 문득문득 이런 말을 꺼내며 슬퍼하는 엄마에게 이런 위로를 건네고 싶다.


"엄마!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외할머니가 하늘에서 엄마를 지켜주고 있으니 걱정 그만하세요. 그리고 내가 있잖아. 내가 다 막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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