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살에 출산한 동생 덕분에 나는 이모가 됐다.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럽든지...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외조카를 맞이했던 나와 달리, 엄마는 불편한 마음을 표현했다.
외손자를 마주했던 그해, 우리 엄마 나이 예순... 할머니가 되고도 남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엄마는 지역에서 꽤 유명한 분이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셨으며, 자신의 자리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했고 주변에서 꽤 인정받으셨다. 언제나 멋있게 옷도 입고, 예쁘게 화장하고, 한껏 에너지를 뽐내고 다녔던 엄마는 누가 봐도 할머니 같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난 이 나이에 할머니가 되고 싶지 않다"
엄마의 말을 듣고 나와 여동생은 놀랐지만, '어쩔 수 있나?' 이미 할머니가 된 것을... 더군다나 같은 해 남동생마저 딸을 낳았으니, 말 그대로
"빼박!"
그럼에도 큰 변화 없던 엄마는 옹알이하는 조카에게,
할머니 말고,
이모라고 불러
'이모'라고 부르라고 연습시키는 엄마를 보며, 장난인 건 알고 있었지만 웃겼고 기가 막혔다. 한편으로 갑작스럽게 할머니가 됐던 엄마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할머니가 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던 엄마가 자식을 대할 때와 달리 손자녀에게 비교적 허용적이고 푸짐하게 사랑을 퍼주는 모습이 영락없는 할머니였다. 원래 애정 표현을 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서툴긴 했지만 그런 모습이 신기했다.
언제나 당당하고, 활기찼던 울 엄마가 지금은 희귀병으로 10년 가까이 고생하고 있다. 자식 다 키우고 손자 재롱 보면서 아버지랑 여생을 보내시기만 하면 되는데..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기운 빠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차라리 호령하고 다니던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