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진심이었다.
삼 남매 중 장녀인 내게는 남동생, 그리고 여동생이 있다. 서른 살이 넘어가면서 남동생의 결혼이 은근 걱정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위아래로 시누이들이 있으니, 여자들이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하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오지랖일 수 있지만 같은 여자 입장에서 선호하는 조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늘 다짐했다.
'올케가 들어오면 무조건 잘해줘야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가 왔다. 남동생이 결혼한다고 여자를 집에 데리고 온 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인사하고 결혼까지 시간이 후루룩 흐른 어느 날, 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다.
명절이라 동생들이 모두 집에 왔다. 제사 지내고 각자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난 거실에서 TV를 보다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생리대가 벗겨져 있는 걸 발견하는 순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올케를 의심했다. 씩씩대며 올케에게 말했다.
"올케가 이렇게 해 놨어?"
올케가 답했다.
"언니! 저 임신 중이잖아요."
'아! 진짜 미쳤나 봐!'
그렇다. 올케는 임신 중이었다. 그렇게 잘해주겠노라 다짐했는데,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내가 미쳤구나! 하며 자책했다.
"그거 내가 그랬어."
내 말에 달려온 동생이 미워도 너무 미웠다. 어쩌면 책임을 미루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동생을 타박하는 걸로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사과를 안 할 수 없었다.
"미안해."
화장실 앞에서 작은 목소리로 올케에게 사과했다. 올케는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지독한 시집살이를 한 엄마는 올케가 오는 날이면 나와 여동생을 꼭 불렀다. 시댁에서 '며느리'란 자리가 얼마나 외로운지 알기에 엄마가 부르지 않아도 나와 여동생은 알아서 움직였다. 주방에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고, 여동생이나 올케는 일하랴, 살림하랴 힘들 테니 미혼인 내가 앞장섰다. 진심으로 동생들을 아껴서 한 행동들이었는데..
결국,
나도 어쩔 수 없는 시댁 식구였다.
결혼 준비하는 동안 남동생에게 올케는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우리 누나는 너한테 잘해 줄 거야. 진짜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 다짐도, 남동생의 신뢰도 처참하게 무너졌던 날이었다. 지금 이 순간도 민망하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다시 한번 사과할게.
"정말 미안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