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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절연가족 10화

부모님에게 현관 비번 공유?

가족끼리 지켜야 할 선

by 퍼플슈룹

오랜만에 부모님 집에 들른 난 엄마와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수다라기보다 엄마 이야기를 듣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말없는 남편과 평생을 산 엄마의 마음을 아니까.


수많은 이야기 끝에 엄마는 지인 야기를 꺼냈다.


딸이 독립해서 살고 있는데, 현관 비밀번호를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이해하고 넘어가는데, 간혹 딸이 집을 비우거나 일이 늦게 끝나면 반려동물에게 밥을 주라고 비밀번호를 알려준다는 것. 여기까지도 뭐.. 오케이!


그런데 엄마가 다녀간 뒤, 딸은 비밀번호를 바로 바꿔버리는 것이었다. 사실을 알게 된 엄마 지인은 딸이지만 너무 얄밉고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딸이 이해 가냐는 엄마의 질문.


"흠..."


두 사람의 마음이 백번 이해됐지만, '딸이 좀 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내가 독립했을 때 부모님에게 현관 키를 드릴지 말지 고민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이런 고민조차 야박한 것 같아서 현관 키를 드리면서 신신당부를 했다.


"나 없을 때 집에 절대 오지 마세요. 혹시 올 일이 생기더라도 나한테 꼭! 미리 말하셔야 해요."


예상대로 엄마는 말없이 다녀가길 여러 차례.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졌다. 온라인 교육이 있어서 출근을 하지 않은 날, 교육 준비하느라 바쁜 와중 갑자기 현관문이 띠리리~ 하고 열렸다. 깜짝 놀라 나가보니 부모님이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들고 오신 것.


나와 마주한 두 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일 안 갔어?"

"온단 얘기도 없이 왜 오셨어요? 말하고 오기로 했잖아요!"


사실 화가 많이 났지만, 꾹꾹 눌러 담고 말했다. 눈도 못 맞추고 짐을 내려놓는 엄마, 빨리 가자고 엄마를 다그치는 아빠. 이날 이후로 부모님의 방문은 더 없었다.(오시더라도 이야기를 꼭 하고 오셨다)


"엄마가 집 청소도 하고, 반찬 갖다 놔주면 좋지 않아?"

"좋긴 뭐가 좋아! 내가 없는 사이 물건 위치가 바뀌어 있고, 필요이상으로 물건을 갖다 주시는 것도 싫어요. 아무리 부모님이라도 말없이 다녀가는 건 싫어!"


수고로움을 덜어주니 좋지 않냐는 엄마의 주장, 독립했으니 각자의 실림을 인정하자는 딸의 토로.. 두 사람의 의견은 팽팽했다.


자신보다 더 아끼며 귀하게 키운 자식을 마음에서 떠나보내고, 몸에서 멀어지는 연습이 필요한 부모님. 자신만의 공간에서 홀로 개척하며 성인으로서 성장할 기회가 필요한 나.


분명한 건 부모와 자식 간 적당한 거리와 서로의 공간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는 자식의 등대로서 자리를 지키고, 자식은 씩씩하게 인생을 개척해 나가며 잘 살고 있음을 부모님에게 보여주는 시간을 꼭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런 노력이 더해지면 건강한 부모 자녀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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