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0시, 걸음을 시작하려 나오자 끝없는 은하수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로그로뇨 ------> 산토 도밍고
Logrono -----> Santo Domingo
Back to the Camino!
팜플로나에서의 산 페르민 축제를 뒤로하고 다시 순례길로 돌아왔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로그로뇨로 돌아와 대도시의 오후 풍경을 맞이하였다. 와서 산뜻하게 만나는 젤라토(하트) �
새롭게 만나게 된 누나와 다른 일행들이 모여 수다를 떨던 중, 오늘은 야간행군을 급 결정하였다. 순례길 위에서 해볼 수 있는 모든 경험을 도전해보기로 했으니 야간행군 또한 하나의 경험이 아닐까?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에 바로 콜! 을 외쳤다.
우선 전날의 노숙과, 로그로뇨로의 이동으로 피로가 누적돼서 하루 휴식하려던 차에 야간 행군을 하기란 아주 좋은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로그로뇨의 향기를 맡으며 햇빛을 받았다. 젤라토와 점심을 취하고 알베르게에 자리를 잡았다. 노숙의 피로를 어서 풀어주어야 오늘 밤에 야간행군을 힘! 차! 게! 할 수 있을 테니까! 로그로뇨는 큼직큼직한 도시인만큼 온갖 편의시설이 모여있다. 여러 장비나 유심카드 등 재정비가 필요하다면 이곳에서 한번 정비 후 다시 걸음을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렇게 오후에 꿀잠으로 체력을 보충해야 했다. 역시 전날의 노숙 피로+불침번은 상당했던 듯... 머리를 대자마자 잠에 들어 오후와 저녁 그 사이에 눈을 떴다. 눈을 떴다기보단, 배가 고파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힝. 오후 1시부터 입장을 받기 시작하는 알베르게는 우리가 눈을 떴을 때 이미 사람들로 가득해졌다. 그리고 다른 순례객들은 하루를 빨래, 일기 쓰기, 다른 순례객들과 수다 등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을 때, 우리 일행은 하나 둘 짐을 꾸리며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얘들이 이 시간에 뭐 하는 거지? 하는 요상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는 다른 친구들에게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나이트 워킹'을 하려 한다고 했다.
야간 행군
군 시절에 했던 그 야간 행군은 기억에 남을 정도로 끔찍했다. 새벽 갑작스레 울린 싸이렌과 완전 군장 그리고 새벽 내 이어진 산악행군. 그렇지만 오늘의 야간 행군은 내가 원해서 , 자진해서 하는 걸음이다. 800km의 스페인 순례길에서 어느 하루 밤 10시부터 걸음을 시작하는 이 날, 아주 특별한 날이 되었다.
순례길이 아닌 어디서든, 언제 한번 밤 길을 밤새 걸어본 적 있나요 여러분~ 해가 뜰 때까지 그냥 계속 걷는 거야. 어둠 컴컴한 길은 후레시를 들고 길을 밝히며 걷고, 너무 어두워 무서울 때는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며 걷고, 인적 없는 어느 버스정류장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까지. 그 어둠을 밝히며 걷던 시간이 이젠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안전제일 , 무조건 안전하게 걷자!
밤에 걷는 길인 만큼 안전한 길이 되도록 가장 주의하였다. 차도 옆을 걸을 때는 주변에 주의하고, 비 포장길을 걸을 때는 각자의 후레시를 몇 명은 바닥을, 몇 명은 전방을 밝혀 시야를 확보했다. 혹시나 있을 돌부리나 웅덩이로 다치면 안 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중간에 낮은 산을 넘을 때가 가장 무서웠다. 정말 칠흑 같은 어둠이란 걸 피부로 체험할 수 있다. 당장 눈 앞은 커녕 한 발자국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인데 고요하게 들려오는 바람소리와 귀뚜라미 같은 벌레소리는 더 큰 공포감을 만들어주었다.
오후 10시가 11시를 향해가자 저 멀리 작별을 고하는 태양이 보였다. 어둠이 찾아오면서 편안한 포장도로도 끝이나 간다. 어느 새부터 사람 한 명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철저히 구글맵과 까미노 앱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모두들 보조배터리를 든든히 챙겨 왔다.
그러나
갑자기 보슬보슬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으악! 밤의 운치를 즐겨야 하는데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천둥 번개가 우르르 쾅쾅! 찾아온다. 아니 왜 이러는 거야 오밤중에... 가벼운 보슬비라 무시하고 걸음을 걷지만 번쩍 번쩍이는 번개와 쾅쾅거리는 천둥소리가 신경 쓰인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한참을 걸어가는데,
따란
거리에 토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야생 토끼겠지? 깡충깡충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사람들이 나타나도 멀리 피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 그런데 요 귀여운 놈들이 언제부터인가 바닥에 누워서 자고(?) 있다. 엥?? 왜 저러고 있지 하면서 계속 걸어갔는데
친구들에게 들어보니 천둥번개가 칠 때 토끼들은 놀라서 기절한다고 한다. 요게 사실인진 모르겠지만은 정말 그래서인지 토깽이들이 여기저기 누워있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 걸어가던 중 토끼 한 마리가 버스정류장 벤치 쪽에서 누워있었다. 요놈은 왜 친구들이랑 있질 않고 나와있어... 하고 다가갔는데 헐 이런!
숨을 안 쉬고 있다.
다들 관심 있게 모여 요 토끼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있는데, 태권브이 친구가 먼저 나서 심장을 살살 어루만져주면서 물을 적셔 조금씩 입에 넣어주었다. 살살 만져주니 신기하게 다시 심장이 뛰고 물을 스스로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오오오 신기방기 동방신기.
옆에서 신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토끼가 다시 생명을 찾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걸어 나갔다. 기절해 있는 토끼도 살렸고, 우린 다시 하늘의 별을 따라 걸음을 걸어가면 된다. 그동안 살아오며 이렇게 새벽 내내 걸어가는 시간이 있었을까? 그리고 쏟아져 내리는 은하수 아래를 걸어본 적은? 아무리 걷고 걸어도 하늘의 별들이 끝없이 펼쳐져있다. 그 모든 광경은 기억의 한편에 아주 깊숙이 남아있다.
몇 개의 마을을 지나고 언덕을 넘고 다시 또 마을을 지나고. 오밤중에 걷다 보니 한 가지 아주 치명적인 단점을 발견했다. 중간에 간식을 먹을 카페가 없다는 것!! 있을 수가 없다는 것! 아래 사진처럼 이미 문 닫은 카페를 지나며 아쉬워만 할 뿐, 어디 한 곳 갈 수 없다. 이건 정말 치명적인 단점이다.
반면 야간 행군의 정말 큰 장점!!
도시를 살짝 벗어나 외진 곳을 걷다 보면 하늘에 온통 별이 가득하다. 별과 달이 비추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또 새로운 별이 앞길에 펼쳐져있다. 정말 정말 끝없이 펼쳐진 은하수 같은 모습을 따라 걸으며 그 낭만에 젖어든다.
웃고 즐기고 떠들며 별빛 아래 즐겁게 걸었다. 카페에서 에너지를 취하지 못했지만 흐르는 밤길을 따라 여운을 즐겼고 서늘한 밤공기와 함께 산뜻한 공기를 마셨다. 마을 구경과 걷는 주변 풍경을 볼 수는 없었지만 중간중간 멈춰 우리의 모습들을 담았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오늘의 걸음들 , 그래서 더 특별한 걸음이다.
나헤라 마을에 도착, 오전 6시 그리고 떡실신
우우우우우......
어느덧 나헤라 마을에 도착했다.
동이 틀 무렵이 되었다. 애석하게도 밤 10시 이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탓에 에너지가 고갈되어버렸다. 챙겨 온 것은 오직 물뿐이었는데 바보같이 에너지를 채울 식량을 전혀 챙겨 오지 않았다.
2박 3일간 산 페르민 축제를 즐기며 마지막 날엔 노숙까지 강행. 그리고 로그로뇨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지만 그 피로는 여전히 남아있었나 보다. 밤에 출발한 야간 행군은 중간에 내리는 비와 천둥번개를 피할 길이 없었고, 잠시 몸에 휴식을 취할 카페를 찾기도 불가능했다. 더욱이 미련하게 미리 간식을 준비하지 않은 탓에 에너지를 보충할 방법도 없었다. 이 여파가 누적되어 오전 6시에 다다르며 일행 모두가 지치기 시작했다. 슬프게도 나헤라 마을에 도착해서 쉴만한 곳을 찾아보았지만 그 역시 불가능. 어느 공터에 모여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걸음을 이어가자 하는 마음으로 주저앉았다. 약 한 시간 노숙 아닌 노숙 휴식을 취하고 가게 문을 열어둔 아무 카페에 들어가 카페인과 당 충전을 해야만 했다.
길바닥에서 휴식을 취하고 근처에 문을 열고 있는 아무 카페에 들어가 간단한 빵과 카페인 섭취를 시작했다. 이렇게 몸을 녹이고 당 섭취를 하며 우리 일행은 유혹과 고민에 빠졌다. 야간 행군은 이제 끝이 났고 동이 터오며 다른 순례객들은 그들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하나 둘 산뜻하고 뽀송하게 나와 배낭을 메고 출발 전 간단한 식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처럼 계속해서 오늘의 일정을 치를 것인가?
아니면 어디선가에 멈추어 오늘의 일정을 마칠 것인가?
계속해서 걸음을 가기엔 에너지가 부족했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걸음을 멈추기에 알베르게는 보통 오후 1시부터 오픈하고 순례객들을 받아준다. 즉, 지금 어디 들어가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다는 결론이다. 너무 갑작스레 시작한 야간 행군이었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걸음을 마치는 시점과 이후 방안에 대해 고민하지 못했었다. 아이고 이런 바보들~
우리의 결론은 다음으로 나왔다.
1. 이곳에 걸음을 멈추고 알베르게가 열 때까지 '어딘가'에서 쉰다.
2. 알베르게가 문 여는 시간까지 계속 걸어 나간다.
3. 마을 구경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버스를 타고 적절한 시점의 마을로 이동한다.
여러 고민 끝에 3번으로 결정하고 나헤라 마을을 둘러보았다. 일행의 일부는 카페에 남아 테이블에 기대어 눈을 붙였고 나는 마을 구경을 나왔다. 아무 정보 없이 걷다 피곤한 시기에 맞추어 멈춘 마을은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은 마을이었다.
무엇보다 기분이 묘했던 부분은,
모든 이들이 걸음을 시작하려 나서는 이 시간에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그들과는 다르게 잔뜩 찌들어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시작이 우리에겐 하루의 마무리였다. 그들의 눈으로 보기엔 우리가 참 어색하고 이상한 그룹으로 보였으리라, 이제 시작인데 오애 저렇게 지쳐 보이고 찌들어있을까? 왜 카페에서 저렇게 쳐져있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내가 봐도 우리의 모습은 시간과 참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헤라 마을은 색감이 다양한 마을이었다. 뜬금없이 갈색 절벽이 등장해 마을의 가운데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그 색이 참 아름다워 이질적이지 않았다. 갈색 절벽은 마을의 배경이 되어주었고 흐르는 강물은 배경음악이 되어 마을을 채워준다. 조금 낡은듯한 도시의 건물들은 운치를 더해준다. 이렇게 준비된 것들이 한데 섞여 나헤라라는 마을을 만들었다.
오늘 야간 행군 때 우리의 모습이 그러했다. 노래 부르길 좋아하는 친구는 우리가 힘이 빠지거나 고요함 속에 갇혀 있을 때 한 번씩 주변의 사운드를 채워주었고 가방 무겁게 잔뜩 채워온 친구는 낚시터용 후레시를 통해 우리의 가로등이 되어주었다. 또 보조배터리를 두 개씩이나 가져와 모두에게 든든한 지도가 되어주었다.
색다른 경험을 했던 야간 까미노
끝없이 펼쳐진 별빛 아래를 걸으며 하늘에 압도되는 기분도 느꼈고
동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만들어낸 든든함에 감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OPEN 사진을 문 앞에 걸어둔 가게가 이토록 반가운 적이 없었다.
10시간 만에 만난 불 켜진 마을에서 우리는 걸음을 마무리했다.
마을에서 버스를 찾아 까미노 루트 중 가장 근접한 마을 [산토 도밍고]로 이동을 했고 시간 맞춰 알베르게에 들어갔다. 큰 사고 없이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 오늘 하루
참 감사하고 행복하고 또 즐거운 야간 까미노 걸음이다.
부엔 까미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8
⭐️⭐️⭐️⭐️⭐️ 기회를 만들어 야간 행군을 강력 추천. 남들과는 다른 시간에 걸어간다는 기분은 조금 더 차분하고 고요한 시간을 선물해준다. 또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대신 안전제일! 음식 준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7
⭐️⭐️⭐️6,7월 스페인은 정말 미친 듯이 덥고
특히 로스 아르코스 -> 산솔 코스는 자갈길에 그늘 한점 찾기 힘들다. 유의해야 할 코스!! 물 미리 챙기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6
⭐️⭐️⭐️ 반드시 아침 일찍 걷기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급함도 금물, 남과 비교도 금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5
⭐️⭐️⭐️⭐️⭐️ 장 볼 때 필요한 식재료 단어, 수량을 공부해가자! 식탁의 퀄리티가 올라간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4
⭐️⭐️⭐️ 일과 후 에너지가 된다면 알베르게에서 나와 마을을 둘러보자! 어떤 재밌는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설레는 마음으로,, ( 단, 무리하지 말기)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3
⭐️⭐️⭐️⭐️ 허기보다 당이 문제. 캔디류를 챙겨나가길 추천 (청포도 캔디 강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2
⭐️⭐️⭐️⭐️⭐️ 등산화는 등산을 위하기보다, 부상을 피하기 위해서 더 중요하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1
⭐️⭐️⭐️⭐️⭐️발에 열이 찬다~ 느껴지면 한 번씩 멈춰서 신발, 양말 다 벗고 열을 식혀주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발가락 사이에 밴드로 마찰을 줄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