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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Jan 17. 2022

운동의 배신

2022년 새해 다짐

매일 회사에 출근하지 않더라도 월요병이 부담스러운 일요일 저녁. 넷플릭스 드라마도 참고 일찌감치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건만,


‘달그락달그락’


몇 시간쯤 지났을까. 저절로 눈이 떠졌다. 어두컴컴한 하늘을 보니 새벽 한두 시 정도 되었으려나. 꼼짝도 하기 싫어 시간 확인도 안 하고 떴던 눈을 그대로 다시 감았다.


 순간,  하고 들어오던 라면 냄새.


라면 냄새가 코를 찔러 왔다. 남편이 또 라면을 끓인 것이다. 오늘은 라면에 뭘 넣을 게 없었는지 달걀 대신 부추를 넣은 듯하다. 라면은 마지막으로 하나 남아 있던 신라면. 필요 이상으로 후각에 예민한 편이다.


어쩐지 저녁 식사 후 평소에 하지도 않는 운동을 하겠다고 밖에 나가더니 기어이 한밤중에 라면을 끓이고 만 남편. 이럴 거면 대체 운동을 왜 했나 싶다. 두 달에 겨우 한번 운동하고 새벽에 라면 폭식이라니!


남편은 어릴 때부터 운동을 퍽 잘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는 야구부로 활동했으며 100미터를 13초 안에 들어올 만큼 빨랐고 축구 등 다른 구기 종목에서도 월등했다고.


반면 난 몸으로 하는 건 다 자신 없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앞구르기만 했다 하면 매트에서 벗어나 버리고 뜀틀은 늘 도움닫기에서 멈춰 서곤 했던 체육 지진아.


그래도 오래 걷는  하나는 자신 있었다. 아이 돌잔치 준비하면서 새벽 운동하는 아빠 따라서 매일 한강까지  시간씩 걸었다. 그랬더니 어느새 가벼워지던 . 그때의  기분 좋은 경험 덕분에 운동의 ‘자도 모르던 나도 운동이란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수영, 요가, 헬스, 줌바, 필라테스 그리고 발레까지. 뭐든 다 건드려는 봤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한 시간 수영하고 아이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출근하곤 했다.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땐 했다. 운동마저 놓아 버리면 일상의 체력도 무너져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년째 운동을 했더니 제법 근육도 붙었다. 다만 마르고 탄탄하게 붙지 못하고 덕지덕지 튼실하게 붙었다.


그런 나의 허벅지를 볼 때마다 민망할 정도로 깜짝 놀라 하는 남편. 그냥 놀라기만 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본인의 앙상한 새 다리를 굳이 내 허벅지 옆으로 갖다 댄다. 언제 이렇게 두꺼워졌냐고 진심 반 농담 반으로 운동 이제 그만하라고 한다.


그러게. 나도 몰랐다. 운동하면 살이 빠질 줄만 알았지 도리어 근육이 붙어' 떡대'가 될 줄은. 안 되는 자세 억지로 하다 보니 커진 승모근에다 근육인지 살인지 이젠 구분도 되지 않는 팔 근육. 허벅지는 당장 올림픽 출전하는 선수 못지않다.


수년간의 식이 없는 운동 덕분에 어느새 나는 건강한 근육 돼지가 되어 있었다. 스쾃 200개, 버피 100개쯤은 거뜬하다. 확실히 체력은 근육에서 나오나 보다.


반대로   사이 남편은 얇은 팔다리에 배만 불뚝 솟은 난민형 체형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왕년의 체력과 운동 실력을 믿고 아직도 까부는 중이다. 그러다 오늘처럼 어쩌다 한번 운동 나가는 날이면 허리가 다쳐 오던지 혹은 폭발하는 식욕,  한밤중의 야식으로 끝나는 새드엔딩.  떼려다  붙이기. 운동의 의미가 무색해진다.


그러나 꾸준히 운동해  나도 불만족스럽긴 마찬가지다. 가끔은 아예 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조금은 날씬해 보이지 않았을까, 운동을 중단하면 금세 찾아오는 요요는 적어도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곤 한다.


물론 그간의 운동 덕분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해 갔을 질병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뭐 그렇다고 믿을 수밖에. 그래도 왠지 좀 억울한 기분이다. 평생에 한 번쯤은 여리여리한 몸매를 가져보고 싶었고 운동만으로 언젠간 가능할 줄 알았는데!


운동은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인 듯싶다. 내 경우엔 이미 시작했으니 평생 함께 가야 할 것이다. 튀어나온 아랫배 그림자로 살짝 보이는 양옆의 십일자를 복근이라고 우겨본다. 또 부디 이 튼실한  허벅지가 미래의 나를 당뇨병에서 구해내길 간절히 바라본다.  


@이백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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