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나에게 선물한 겨울
10년 후의 자기 자신한테 편지 쓰는 거다.
여느 때처럼 시시껄렁한 수다를 한창 늘어놓고 있던 우리들에게 해롱이가 말했다. 언제 다녀왔는지 편지지까지 사 왔다. 펜도 야무지게 여러 개나 챙겨 왔다. 10년 후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고 그 편지를 제비뽑기 해서 나눠 갖자고 했다. 그리고선 10년 후 함께 모여 편지를 열어 보자고. 과연 해롱이 다운 발상이었다.
그날은 해롱이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다 같이 보는 마지막 날이었다. 중학교 친구들이 네댓 명쯤 모였다. 작고 귀여운 새들이 연두색 둥근 새장에서 끊임없이 지저귀고 푸른 기와지붕이 멋스러웠던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였다.
그냥 이야기나 하고 놀지, 뭘 이런 걸 해!
나름 기획하고 열심히 준비해 온 친구에게 내뱉은 나의 첫마디는 이러했다. 10년 후를 상상하는 것도 충분히 귀찮은데 손으로 글씨까지 써야 한다니.
눈 뜨면 회사 가고 밤 되면 퇴근하는 지루한 사회 초년생의 일상 속에서 “미래”, “꿈”, “가치” 같은 단어는 이미 지운 지 오래였다. 적당히 일하고 돈 벌면서 또 적당히 그럭저럭 사는 게 제일이 아닐까 하던 스물 중반의 나에게 금쪽같은 주말까지 뭔가를 생각하게 하고 쓰게 하다니 짜증부터 밀려왔던 것 같다.
그러나 다들 사뭇 진지한 분위기. 결국 나도 마지못해 펜을 들었다. 막상 쓰기 시작하니 아주 어렵진 않았다. 게다가 학창 시절 꿈을 떠올리다 보니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기까지.
그때의 10년 후는 한없이 머나먼 미래 같았다. 그래서 꽤나 대범해졌다. 기왕 쓰는 거, 꿈으로만 꿨던 꿈을 이루고 사는 멋진 내 모습으로 편지를 가득 채웠다. 거의 판타지나 다름없었다.
시간이 훌쩍 흘러 약속의 십 년을 오 년 앞둔 어느 날, 난 퇴사를 했다. 한겨울 칼바람 뚫고 시험 치러 갔다가 비데도 없고 찬물만 나오던 대학원 화장실에서 이게 과연 맞는 걸까 잠깐 후회하긴 했다. 그해 특히 더 좋았던 팀 동료들과 헤어지기도 쉽지는 않았다.
뭐 얼마나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 나이에 다시 공부를 해야 하나 수십 번도 넘게 망설였지만 끝내 지고 말았다. 그때 그 십 년 후 나에게 썼던 편지에게.
말이 씨가 된다더니 글자는 그보다 더했다. 편지에 적었던 글자는 마음속에서 몇 번이나 되살아나더니 잎을 틔우고 가지를 쳤다. 굼뜨디 굼뜬 나 같은 인간도 도전이란 걸 하게 하던 편지의 힘.
공교롭게도 해롱이 편지는 내가, 나의 편지는 해롱이가 가지고 있다. 사는 건 생각보다 바빴고 우린 여전히 다 같이 모이지 못했다. 그러나 잦은 이사에서도 해롱이의 편지만큼은 고이 잘 보관 중이다. 해롱이는 거기다가 뭐라고 적었을까?
난 동시통역사라고 적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동시통역사. 제일 잘 나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으니 반쪽만 이룬 셈이다.
누군가 그랬다. 신앙은 이해가 아닌 체험이라고. 인생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머리론 이해가 어려운 일도 한번 경험하고 체험하고 나면 고통도 기쁨일 수 있다. 오르기 전엔 높고 험한 산을 굳이 오르려는 마음을 이해할 수 없지만 오르고 난 후엔 등산의 즐거움을 체험하고 오르막 비탈길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나에게 쓰는 편지도 그랬다. 이해보단 체험이었다. 이번 주말엔 이 좋은 걸 가족과 함께 해볼 작정이다. 남편의 반응이 뻔하게 예상되지만 그때의 해롱이처럼 나도 단호해질 테다. 편지지 사러 나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이백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