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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Apr 19. 2021

정말 이상한 언니야!

직업 군인이셨던 아빠를 따라 자주 전학 다니곤 던 유년시절. 주로  자녀들이 모여 있는 학교를 다녔던 터라 나뿐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전학은 일상이었다.


늘 새로운 곳이 좋았다. 같은 곳에서 3년 이상 살게 되면 부모님을 닦달하곤 했다. 왜 우린 이사 안 가냐고. 어떤 학교에서는 겨우 두 달 다니다 다시 전학 간 적도 있었다.


그래서 가끔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사진상의 기억만 있는 강원도 전방의 어디쯤일까, 아니면 유년시절을 그나마 제일 오래 보낸 계룡대일까.


90년대 초반 육해공 3군 본부는 용산에 국방부만 남기고 서울에서 내려와 충남 계룡산 근처에 터를 잡았다. 부대 주변을 싹 밀고 도로와 군인 아파트 그리고 학교를 짓기 시작했다.


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의 부모들은 모두 군인이었다. 친구들끼리 모이면 종종 나라별 국방력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우리나라 군사력은 공군이 제일이다, 해군이 우세하다 등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렇게 학교 운동장을 연병장이라고 서슴없이 부르는 친구들과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을 보냈다.


@artemkniaz / unsplash.com


당시 흉흉하게 떠도는 소문이 하나 있었다. 원래 계룡산 근처엔 무당들이 많이 살았는데 군부대가 들어서면서 이들을 모두 강제로 내쫓았다고.


그래서 그런가. 안 좋은 일이 해마다 일어났다. 4학년 때는 같은 반 친구가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갔고 5학년 때는 주말에 딸기농장 놀러 가던 옆 반 친구 일가가 큰 사고를 당해 부모님을 모두 잃었다.


6학년  서해 페리호 사건으로 이제  미국 유학을 마치고  같은  친구 아빠가 돌아가셨다.


죽음이 그렇게 가까웠던 게 처음이라 무서웠다. 다음엔 또 누구 차례일까 두려웠다. 그 모든 게 계룡산 신을 모시던 사람들의 저주 때문이었을까.


@robertcollins / unsplash.com


초여름에  접어들기 시작하던 어느 오후, 아파트 바로  잔디밭에서 또래들과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다. 한참 놀던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었다. 흐름을 끊기 아쉬워 조금  참아야지, 이것만 끝내고 가야지 했다.


그러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아이들에게 서둘러 말했다. 집에 가야겠다고. 당연히 모두들 짜증이 났을 . 하지만 내겐 대꾸할 시간도 없었다. 어서 집에 올라가야 했다.


집으로 엉거주춤 걸어가는 그 순간,

등 뒤로 들려오던 한 아이의 앙칼진 목소리.




정말 이상한 언니야!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나보다 한두  어린 친구였을 거다.   그렇게 기분이 나빴을까. 계단을 오르면서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  일을 보면서도 자꾸 곱씹게 되던 “이상한 사람”.


아무 대꾸도  하고 그냥 올라온  분했고 나보다 어린애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니 자존심이 상했다. 그날  잠자리에 들면서도 마음의 분은 풀리지 않았다.  


같은 아파트에서 같은 직장을 둔 부모님들과 같은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 요즘 누가 반에서 일등 하는지 누가 사고를  치고 다니는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숨 막히는 폐쇄성 짙은 지역사회였다.


그런 곳에서 내가 이상한 사람 되어 버리다니. 비슷한 사람들 속에서는 최대한 비슷하게 보이는  중간은 가는 건데!


그때의  말은 주술처럼 평생의 트라우마로 따라다녔다. 그러다 어느새 보니  정말 남들이 보기에 “이상한  좋아하는 “이상한  되어 있었다.


그때  아이가  말은 사실 욕이었을 거다.  대신할  있었던 최고로 나쁜 말이었을 거다. 다행히 지금은  “이상한  나쁘지 않다. 가끔은 “이상해서 좋기도.


기억  봄을 추억할  있는 장소를 더듬다 보니 그때의  아이가 떠올랐다. 뭐든 좋은 말보다는 좋지 않은 말이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애는 그때 이미 알았을까,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이백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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