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책임자 승진
오전 8시 아침 회의를 하면서 거래처 방문 일정을 잡았다. 책임자가 되면 거래처 방문이 익숙해져야 하기에 담당 책임자께서 동행하자고 하셨다. 책임자와 거래처에 갈 때면 나는 늘 마음속으로 갈등을 일으켰다. 유니폼을 벗고 사복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당시에는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유니폼 위에 재킷을 걸치고 동행했다. 거래처 방문이 늘어나면서 하루라도 빨리 책임자가 되고 싶었다. 거래처를 방문할 때면 대부분 남자여서 혼자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이 왠지 아래 직원처럼 보여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때 내가 읽고 있던 책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성공하려면 지금보다 한 단계 앞서 생각하라’
책임자 고시는 이미 패스한 상태였기에 나는 승진했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서실에서 같이 근무했던 A는 모시던 임원이 G 회사로 옮기실 때 함께 퇴사했다. G 회사에 부임하신 회장님께서 여직원들의 유니폼을 없애고 모두 사복을 입도록 회사 방침을 바꾸셨다. 하지만, 처음 사복을 입게 된 직원들이 청바지에 라운드 셔츠를 입고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 전 직원에게 옷차림과 매너 교육을 시행하고 사복 근무에 따른 피복비도 제공했다. 친구 역시 사무실에서 격식에 맞는 옷차림을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정장을 구입했다. 남자 직원의 경우 직장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구입하는 것이 양복과 구두였다. 하지만 여자 직원의 경우 회사에서 유니폼을 제공하다 보니 격식에 맞는 옷차림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다.
IMF로 승진이 막혀 있던 시절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승진 인사가 현저하게 축소된 상황에서 나는 매번 승진자 명단에서 누락되었다. 당시 지점의 책임자 승진 대상자는 남자 셋, 여자 하나였다. 세 명의 남자 직원들의 명단은 매번 들어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내 이름은 없었다. 나는 속으로는 불편했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못했다. 어느 날, 후배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아무래도 인사카드가 다른 곳으로 빠졌나 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선배님 이름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수신실적을 이렇게 많이 올리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 시점에 타 지점에서 연락이 왔다. 내 인사카드가 다른 지점 인사카드 명단에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전산이 잘못되었다는 건가?
“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농담이 진담이 되었네요.”
IMF로 은행 통폐합 과정에서 전산오류가 발생한 것은 아닌지 모두 놀라워했다.
그해 7월, 미국에 계신 시누이의 초청으로 10일 동안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가족 간의 휴가였다. 상황도 어렵고 남편이 인사부에 있어서 우리는 제대로 된 휴가를 그동안 가보지 못했다. 당시 남편은 IMF로 은행의 여러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많이 고민하고 있었다. 미국에 가게 된 것도 미국에 있는 누나가 여러 상황을 고려하라는 의미로 초청한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미국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반듯한 직장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여 우리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잘 버티기로 했다.
미국을 다녀와서 얼마 안 되어서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10일간의 휴가를 다녀오고 또다시 상중이라 휴가를 쓸 수밖에 없었다. 무사히 장례를 마치고 복귀하며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하반기 승진 인사가 시작될 텐데 이렇게 자리를 많이 비워서 이번에는 어렵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전화벨이 울렸다. 지점장님을 찾는 전화였다. 거래처 약속으로 늦으신다고 했더니. 인사부 직원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축하드립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귀를 의심하며
“네. 지금 뭐라고 하신 건가요?”
“OOO 계장 아니신가요?”
“네. 맞습니다.”
“내일 본점 강당에서 사령식이 있으니 8시까지 오시기 바랍니다. 두발과 복장을 단정히 하고 오세요. 안내 문자는 다시 보내 드리겠습니다.”
“개별로 연락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지점장님께 사전 보고 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해당 지점은 대상자가 OOO 계장 한 명뿐입니다.”
나는 전화를 받고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우리 지점에는 관리자(부지점장)와 책임자 승진 대상자들이 수두룩하여 모두 이번 승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승진자는 나 한 사람밖에 없었다. 더욱이 담당 책임자는 오래전부터 관리자 승진을 기다리고 계셨기에 이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조심스러웠다.
지점장님께서 지점으로 들어오면서 인사부에서 연락을 받았다며 나를 찾으셨다.
“승진 축하한다. 지금 은행이 어려운 시기인데 잘 되었구나. 이번에 은행에서 승진대상자를 많이 축소해서 우리 지점에 대상자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자네만 승진했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서 우리 기쁜 것은 조금 아껴 두자.”
하시며 당부하셨다. 나는 먼저 남편과 엄마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업무 마감을 한 후 동료들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았다. 감사하다고 인사는 했지만, 사무실에서는 기쁨을 표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더욱 자세를 낮추어 처신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든다. 은행에서 가장 기쁜 승진은 바로 책임자(당시 대리) 승진임에도 불구하고 드러내 놓고 기뻐하지 못했다. 또 그 당시에는 작은 것도 아껴야 한다며 사령장을 만들지 않고 은행장님과 악수하는 것으로 끝나 책임자 승진 사령장이 없다.
영업점에서는 책임자가 되면 제일 먼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자기앞수표를 발행했다. 지금은 영업점마다 지점장 명의로 자기앞수표를 발행하지만, 그때만 해도 책임자 명의로 자기앞수표가 발행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딸이 은행에 들어간 후 은행에 가실 때마다 책임자 명패가 있는 자리를 보시며 ‘내 딸도 저곳에 앉아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바라셨던 승진을 하고 나니 나보다도 더 기뻐하셨던 부모님을 보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내 이름이 새겨진 십만 원권 자기앞수표 2매를 발행했다. 부모님 눈으로 딸이 책임자가 됐다는 사실을 확인하실 수 있도록 각각의 봉투에 명함과 함께 수표를 담아 선물로 드렸다. 수표를 받으신 아버지께서는 오랫동안 그 수표를 사용하지 못하셨다. 딸의 첫 승진으로 이름이 새겨진 자기앞수표였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나는 상을 받거나 승진이 있을 때마다 제일 먼저 부모님께 나의 승진 소식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