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로 은행 구조조정과 명예퇴직
당좌 업무를 맡고 있을 때였다. 기업들의 자금 결제 업무를 담당하다 보면 자금이 좋을 때는 일찍 업무가 끝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은행 마감 시간을 훌쩍 넘긴 뒤에야 비로소 자금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당좌계는 언제나 제일 늦게까지 지점에 남아 업무를 마감했다. 그날도 우리는 기업의 자금 흐름을 좇아서 언제 입금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전화통을 붙잡고 입씨름하고 있었다. 그런데 점점 자금 결제 시간이 늦어지고 9시가 넘어서 끝나는 일이 잦아졌다. 자금 결제가 늦어지는 기업들이 점점 늘어나더니 결국에는 하나둘씩 부도 기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정부에서는 경제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면서 IMF로부터 여러 가지 제재가 시작되었고 자본시장의 전면 개방이 요구됐다. 그로 인해 부실 종합금융회사들의 영업정지가 발생하고 국제결제은행(BIS)이 정한 자기자본비율(8%)을 충족하지 못한 은행들에 대해서는 폐쇄 조처를 하도록 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은행들이 하나씩 퇴출되면서 정부에 의해 은행들의 합병이 시작되었다. 연쇄적인 기업들의 부도가 이어지면서 기업 거래가 많았던 H 은행과 S 은행은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고 첫 합병은행이 되었으며 국내은행 중에서 세계 100대 은행에 속하는 대형은행으로 탄생했다. 두 은행의 합병을 시작으로 은행들의 합병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각 은행들마다 합병 대상들을 찾아 나서며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는 무엇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은행 합병에 따른 조치로 지점 통폐합과 인력 축소가 선행되었다. 지역별로 중복되는 지점들을 통합하고 손익이 저조한 지점은 폐쇄하여 지점 수를 축소해 나갔으며 불필요한 건물들은 매각하여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더불어 합병으로 인하여 불어난 인력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다. 각 은행은 인사부를 통해 직원들의 명예퇴직을 유도했다. 특히 부부가 같이 다니는 경우 한 사람은 사표를 내도록 권유하기도 했다. 또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기 위해서는 그만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기존에 받았던 퇴직금에 플러스알파의 웃돈을 얹어서 주는 조건으로 퇴직을 종용했다.
처음으로 발생한 사건이라 동료 직원들은 물론 나도 마음이 흔들렸다. 남편과 나는 서로 다른 은행이었지만 과연 은행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은행보다 더 나은 조건의 직장을 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그만두었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도 막막하였기에 우리는 계속 버티기로 했다. 남편은 지금까지 동료들보다 4~5단계 앞서 있는 위치여서 나는 은행이 망하지 않는 이상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믿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불안한 가운데 동료 직원들은 한 명, 두 명 사표를 제출했다. 더욱이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직원들은 아이가 한참 엄마를 필요로 하는 시기여서 시댁이나 친정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퇴직을 결심하는 경우가 많았다. 동료직원 중 한 명은 결혼한 지 오래되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 남편도 같은 은행에 다니고 있어서 두 사람 모두 버티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하여 이번 기회에 퇴직해서 아이를 갖기로 했다며 사표를 냈다. 일 잘하기로 소문난 그녀는 고객이나 동료 모두가 사랑하는 직원이었기에 그녀의 사표는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근무하고 싶어 하는 곳, 바로 명동지점이다. 지점장들이 임원으로 승진하는 길목이기도 한 이곳에서, 지점장님도 결국 IMF라는 거대한 산을 넘지 못하고 사표를 내셨다. 직원들을 아껴 주시고 정도 많았던 분이었기에 직원들 모두 아쉬운 마음이 컸다. 떠나는 분들을 위해 남아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돈을 모았다. 직급별로 매월 거두고 있던 회비까지 합하여 멋진 우리만의 송별회를 하기로 했다. 사모님도 초청하여 마지막 퇴임을 함께 하기로 했다. 우리는 다른 때보다 조금 일찍 업무를 마치고 전문 사진사에게 부탁하여 단체 사진을 찍었다. 함께 했던 추억들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출장 뷔페도 불러 지점 객장에 음식을 차리고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더는 함께할 수 없다는 아쉬움 속에서, 오랫동안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우리의 마지막 뜻깊은 저녁 시간을 보냈다.
이제 아쉬운 작별을 나누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떠나는 이들을 위해 꽃다발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선물을 준비했다. 보내는 이도 떠나는 이도 모두가 눈물바다가 되었다. 비록 사표를 냈지만, 떠나고 싶어 떠나는 것이 아니었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았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기에 발길을 쉽게 돌리지 못했다. 떠나는 자들을 위로하며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랬지만 그 후에도 구조조정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