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비애

아이의 수술

by 민앤박

복직 후 어느 정도 업무가 익숙해져 갈 즈음이었다. 은행 창구에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고객을 볼 때마다 집에 있는 아이가 생각났다. 한창 예쁠 나이에 그 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과 아이 곁에서 함께 놀아주지 못한다는 것이 가끔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있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어린아이를 둔 여직원의 경우 점심시간을 이용해 아이의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집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할 것 같다는 전화였다. 아침에 아이가 체했는지 밥을 먹지 못하고 토해내기 일쑤였고 열이 나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두 번의 유산 뒤에 낳은 아이였기에 혹시라도 잘못될까 하는 염려에 책임자께 말씀드렸다. 담당 책임자께서는 급하니, 얼른 가보라고 하셨다. 나는 급한 마음에 시재를 빨리 넘기고 서랍 문을 닫은 후 퇴근하려고 하는데 옆에 있던 여자 책임자 N이 나를 불러 세웠다. 마음이 급했지만, 책임자께서 부르시니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분은 나를 세워놓고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집에 일이 있다고 그렇게 쪼르르 달려가고 하면 어떻게 일하니? 그러니까 여자들이 욕을 얻어먹는 거야.”

하시며 야단을 치셨다. 나는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아니 직장도 사람 살자고 다니는 거 아닌가? 아무리 일이 급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지 않나? 사람이 아파서 죽어가게 생겼는데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이야기가 끝나가는가 보다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혀를 끌끌 차면서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셨다. 더 이상 말씀이 없으신 듯하여 나는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향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자신도 여자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매몰차게 몰아붙일 수가 있지? 오히려 후배인 우리 사정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감싸줄 수는 없는 것인가?’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면서도

‘은행 일은 내일 생각하자. 지금은 아이가 더 급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에 머리를 흔들었다. 집에 도착하여 아이를 데리고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는 조금 더 큰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저녁에 남편이 퇴근한 후 이야기를 나누고 지인들에게 물어 서울에 있는 소화아동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소화아동병원은 청파동에 있어서 출근길에 병원에서 아이 상태를 체크하기로 했다. 전날 휴가를 신청하지 못했기에 아침 일찍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서무계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휴가 허락을 받았다.


병원은 9시부터 진료가 시작되었고 다행히 아이는 내 품에서 잠이 들었다. 남편은 출근하고 나는 병원 긴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아직 8시도 되지 않은 시각인데 병원은 사람들로 붐볐다. 우리처럼 멀리서 오는 환자들이 많아 진료가 시작되기 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아침 9시가 되자 아이 이름을 부르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의사 선생님께서 아이를 진찰하신 후 장이 꼬여서 수술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면서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장이 꼬여서 수술해야 한대요. 아니 저 조그마한 아이에게 수술이라니.”

불안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지만 당장 하지 않으면 더 위험하다는 말에 나는 아이를 수술실에 집어넣었다. 아이가 수술실에 들어간 후 나는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기도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불안한 마음은 떠나지 않았고 나는 안절부절못하면서 서성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담당 의사 선생님이 나왔다.

"어머니, 수술은 잘 되었고 괜찮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요즘 아이 중에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만, 아이가 너무 어려서 2~3일은 경과를 지켜보겠습니다."

수술 결과를 말한 후, 다시 수술실로 들어가셨다. 그제야 나는 조금 마음이 놓여서 긴장이 풀어졌다. 혹시나 아이가 잘못될까 하는 마음에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지 수술시간 내내 서있느라 다리가 아팠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아이가 누워 있는 이동 침대가 수술실에서 나와 입원실로 옮겨졌다. 아이는 다행히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마침 토요일이라 남편은 업무를 일찍 마치고 병원으로 왔다. 입원할 생각을 못 했기에 남편은 집으로 가서 병원에서 사용할 물건들을 챙겨 왔다. 가뜩이나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많이 먹지 않는데 장까지 꼬여서 수술하다 보니 여간 안쓰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아이는 건강하게 퇴원했다.


휴가를 마치고 출근했더니 모두

“아이는 좀 어때? 수술은 잘 되었어?”

걱정하시며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지점장님께 배려해 주셔서 수술을 잘 마쳤다고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 앉았다. 여자 책임자 N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수술이 잘 되어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얼굴을 마주 볼까 고민했는데 먼저 말을 걸어주어 감사했다. 당시 지점에는 여자 책임자가 드물었다. 은행 전체적으로도 여성 책임자의 숫자는 10~15%로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나마도 대부분 미혼인 경우가 많았다. 여직원들의 경우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기에 직장을 그만두는 사례가 많았다. 더욱이 IMF가 발생하면서 여직원들의 퇴사가 줄을 이었다. 특히 부부가 한 은행에 다니는 경우 인사부에서 노골적으로 여성의 퇴직을 종용하기도 했다.


인사이동으로 책임자 N은 다른 지점으로 발령 났고 나는 이때 일을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그 후 이 일은 내가 책임자가 되면서 함께 일하는 여자 직원들을 어떻게 배려하고 남자 직원들과 일하는 관계에서 불편하지 않게 일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하는 사건이 되었다. 지점장이 되었을 때는 실질적으로 지점 전체 직원들이 업무 진행에 있어 서로에 대한 배려와 협력관계 그리고 자신과 가정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방안 등을 마련하여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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