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이런 경험은 처음이야

현금 20억 원 만져 봤니?

by 민앤박

1997년, 1년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했다. 아직 돌이 되지 않은 아이를 놓고 복직을 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당시 1년이라는 육아휴직은 다른 직장에 비해 많은 혜택을 누리는 것이기에 나는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마다 아이와 헤어져 출근할 때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제 엄마 얼굴을 알아보고 본능적으로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를 놔두고 매일 집을 나서야 하는 나의 마음은 '이대로 그만두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열두 번도 더했다. 남편은 회사 출근 시간이 늦어진다고 재촉하지만 우는 아이를 그냥 모른 척하고 출근할 수는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아이의 마음을 어느 정도 달래 놓고 집을 나서고 싶었다. 다행히 친정어머니께서 돌봐 주고 계셨기에 안심하고 집을 나섰다.


육아휴직 후 복직한 지점은 땅값이 가장 비싸다고 하는 명동 한복판이었다.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지점에 도착했다. 남편 직장도 근처에 있어 우리는 출퇴근을 같이 할 수 있었고 심리적으로도 안정되었다. 처음 맡은 업무는 출납 계장이었다. 명동지점에서 여직원이 출납 계장을 맡는 일은 처음이었다. 복직 신고를 하기 위해 지점에 갔을 때 지점장님께서 물으셨다. 지점 생활을 한 지 오래되어 어떤 업무를 맡으면 좋을지 고민했다고 하시며 외환계와 출납 업무 중에서 어떤 업무가 맞는지 생각해 보라 배려해 주셨다. 나는 외환계로 바로 갈 경우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 출납 계장을 맡겠다고 말씀드렸다. 대부분 출납 계장은 현금을 만지는 일이라 남자 계장들이 주로 담당했지만 나는 업무에서 여자와 남자를 굳이 구분하고 싶지 않았기에 모두가 선호하는 외환계를 마다하고 궂은일을 자처했다.


명동지점은 다른 지점에 비해 현금 보유량이 많은 지점 중 하나였다. 지점 특성에 따라 현금이 모이는 데가 있는가 하면 현금이 계속해서 나가는 지점이 있다. 명동지점은 현금이 나가는 영업점이었다. 내가 맡은 일과 중 대부분은 자금이동을 파악하고 현금이 부족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현금은 부족해도 안되지만 너무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도 리스크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적정량을 보유해야 한다. 나는 매일 오후 시간이 되면 각 팀의 현금을 파악하여 다음 날 사용할 현금 보유량을 계산하고 다른 지점으로부터 현금을 사고파는 업무를 시작했다. 명동은 금융의 메카답게 모든 금융기관의 지점들이 포진되어 있어 현금 이동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이었다. 지금은 현금을 깨끗하게 분류하고 관리하는 일을 집중화센터 출납 관리실에서 담당하지만, 당시에는 각 지점에서 정리했다. 출납계 직원들의 업무 중 하나는 비정기적이지만 시간 여유가 있을 때마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 원권 현금다발 10개(=일천만 원) 묶음을 풀어서 깨끗한 돈과 지저분한 돈으로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깨끗한 돈은 지점에서 보유하고 지저분하거나 찢어진 돈은 묶음 처리하여 본점 출납실로 보냈다. 이렇게 현금다발을 정리한 날은 목에 낀 때를 제거하기 위해 모두가 좋아하는 삼겹살 파티를 했다.


출납 계장으로 어느 정도 업무가 익숙해져 갈 즈음 예금계에서 연락이 왔다. 내일 현금 인출이 많이 발생할 예정이라며 현금을 준비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해 12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집중되었던 때였다. 당시만 해도 선거철이 다가오면 현금 사용이 많았다. 특히 명동은 사채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곳이라 현금 인출이 많이 발생했다. 출납 계장으로 매일 현금을 사는 것이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한 번에 이렇게 많은 현금을 요구하다니 하면서 나는 전화통을 붙잡고 여기저기 현금을 구하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10여 군데 지점으로부터 조금씩 현금을 사 모았다. 예금계에 현금 확보가 다 되었음을 알리고 가능한 오후 늦게 오시도록 조처했다. 다음 날 오전 은행 문이 열림과 동시에 10여 차례에 걸쳐 현금을 받고 점심을 먹었다. 현금의 입출금이 많은 날은 현금의 무게만큼 피로감이 쌓여 갔다.

오후 2시경 예약 손님이 창구에 도착했다. 예금계로부터 청구서를 받은 후 금고에 들어가서 현금을 꺼내 왔다. 그날 한 번에 인출한 현금 금액은 무려 20억이었다. 만 원권 10개 묶음(일천만 원)을 200개를 가지고 나왔다. 혹시라도 잘못 내어줄 경우 큰 낭패를 보기 때문에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묶음을 여러 번 확인하고 다시 묶음 별 개수가 맞는지 확인한 후에 지급했다. 현금을 찾으러 온 고객은 시커먼 이민 가방과 007 서류 가방에 나누어 현금을 챙겨 넣고 유유히 사라졌다. 고객이 떠난 후 혹시 하는 마음이 들어 얼른 금고로 들어가 시재가 맞는지 다시 확인하고서야 안심이 되었다. 모든 일이 무사히 끝났다는 생각에 다리에 힘이 쫙 풀렸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그렇게 많은 현금을 실제로 만져본 적은 처음이었다.


명동은 은행을 비롯하여 증권회사와 종합 금융사까지 모든 금융기관과 사채시장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곳이라서 자금 이동이 많고 다양했다. 하루에 발행하는 수표 금액만 보더라도 어마어마한 숫자의 자금이 움직이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 발생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자칫 부주의할 경우 언제 어떤 상황에 부닥칠지 알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실수 없이 그 일들을 해냈는지 아찔하기만 하다. 힘들고 고된 시간이었지만 이런 일들은 나의 경험으로 하나씩 축적되어 집중화센터 업무를 설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사고 없이 지나갈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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