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금융권의 주주총회가 한창이던 2월 말이었다. 나는 주총 행사장 안내요원으로 차출되었다. 오전에 주주총회 행사장에서 업무를 마치고 부서로 돌아왔다. 부서 분위기는 썰렁하니 찬 기운이 감돌았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부장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이번 주총이 끝나면 임원으로 승진하실 거라며 모두가 '따놓은 당상'이라고 말했는데 결과는 의외로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다. 그러다 보니 누구 한 사람도 부장님께 말을 붙이지 못하고 숨죽이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나는 큰 소리로 말씀드리고 차 한 잔을 가지고 부장실로 들어갔다. 서무담당 부부장님께서 내게 눈치도 없이 명랑하게 인사한다며 눈살을 찌푸리셨다. 하지만 나는 직원들 눈치 보느라 자리에만 앉아 계신 부장님의 모습이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부장님은 지병인 고혈압이 있어 말린 구기자를 끓여 냉장고에 두고 수시로 드렸다. 누구보다 오전 내내 힘든 마음으로 계셨던 부장님을 위해 따뜻하게 차를 데워 가지고 들어갔다.
"부장님! 많이 서운하시지요? 이번에는 조금 아프셔서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했구나 생각하세요. 오히려 더 좋은 일이 반드시 있으실 거예요."
"너의 말에 위로가 되는구나. 그래, 다시 힘을 내보자."
부장님께서도 다소 긴장을 푸시고 웃으셨다. 서로가 배려하느라 불편한 마음을 털어버리지 못하던 직원들도 부장실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니 그제야 바깥공기도 맑게 갰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매일 포스트잇에 성경 말씀을 적어 부장님의 다이어리에 붙여 놓았다. 불교 신자이셨던 부장님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셨지만, 차츰 매일 적어 놓은 말씀에 눈길을 두시고 의지하여 힘을 얻으시곤 하셨다. 그렇게 주총이 끝나고 6개월이 지나 정말 좋은 일이 생겼다. 당시 금융기관 직원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민포장(國民褒章) [1]을 받게 되셨다.
"모두가 네 덕분이다. 덕분에 좋은 일이 생겼다."
말씀하시며 부장님께서 기뻐하셨다. 그 후 주주총회에서 이사로 승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무로 또다시 승진하셨다. 임원실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비서로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먼저 비서실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 L의 권유와 같이 일하자고 하는 말에 따라나섰다.
비서실은 세밀하게 주의해야 할 사항들이 많이 있었다. 지금과 같이 일반부서에 임원실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별도 층으로 구분되어 있어 더욱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나와 동갑인 친구들이 함께 비서실에 입성하게 되어 의지가 되었고 기존의 친구들도 있어서 우리는 함께 새로운 모습의 비서실을 만들어 갔다. 임원들의 이사회가 있는 날이면 비서들도 따로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가능한 부서 직원들에게 욕먹지 않고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도록 업무 비서의 역할과 방법들을 찾아 나갔다. 예전에는 비서들의 경우 불필요한 오해의 대상이 되기도 하여 더욱 말과 행동에 주의를 기울였다. 매주 자체 회의 시간을 이용하여 비서가 지켜야 할 주의사항을 공유하고 갑자기 비서로 발탁되어 온 어린 직원들에게 멘토가 되어주며 서로의 일을 돕기도 했다. 고객 중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S 은행은 비서실 직원들이 모두 나이가 어리고 예쁘긴 한데 일을 못 하고, 이곳 직원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지만 한 가지 좋은 것은 업무를 잘한다."
하시며 칭찬하셨다. 지금이라면 성희롱에 가까운 말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당시에는 우리 직원들이 일을 잘한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신 것이었다.
1993년 8월 12일, 퇴근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비서실에서 긴급 이사회를 소집한다고 임원들께 빨리 연락을 취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얼마나 긴급한 상황이었는지 퇴근했던 임원들이 다시 은행으로 되돌아오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동안 금융권에서는 크고 작은 여러 사건이 있었다. 그중에서 1982년 발생한 이철희, 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은 사채시장의 큰손이었던 장영자 씨가 대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대신 어음을 발행하게 하여 7,000억 원이 넘는 피해를 준 사건이었다. 당시 대기업이었던 공영토건과 일신제강 등이 무너졌고 장 씨 부부는 차명거래가 보편화되었던 금융시장의 맹점을 이용해서 새 어음으로 돌려 막는 수법을 사용했다. 특히 이철희 씨는 전두환 대통령의 먼 친척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파장도 컸다. 이때 시장 큰손들의 매물이 쏟아지면서 종합주가지수가 폭락했으며 사채거래가 끊기고 금융기관에서 빠져나간 돈은 부동산으로 몰려들어 강남 아파트들이 갑자기 폭등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뒤를 이은 노태우 대통령도 실명제 실시를 공약했지만 1989년 후반부터 경제지표가 악화하면서 재계의 반대와 정부 및 정치세력의 총체적 위기론이 제기되어 연기되었다.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았던 금융실명제를 김영삼 대통령이 은밀하면서도 갑작스럽게 바로 그날 저녁 7시 45분, '대통령 긴급 재정경제 명령 16호'로 특별담화문을 발표했다.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그때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실명제 도입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특히 은행은 모든 업무를 진행하면서 신분증을 제시해야만 업무가 처리되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후속 조치 등 준비사항이 많았다. 임원들의 호출을 시작으로 전국 지점장들을 긴급 소집하고 금융실명제에 대비하는 일들이 속속 시작되었다. 이와 더불어 갑작스러운 금융실명제 실시로 실명제 위반 감독 책임을 물어 은행장들의 불명예 퇴진도 이어졌다.
천수를 누릴 것처럼 승승장구하던 사람들도 자리에 오르고 나서 얼마 안 되어 물러나야 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줄을 이어갔다. 그 후 노태우 정부 시절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던 은행들은 김영삼 정부 후반, IMF로 인해 은행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구조조정은 향후 은행들의 화학적 결합을 이루는 통폐합으로 진행되었고 은행 직원들의 무더기 명예퇴직으로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서도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IMF로 혼란스러웠던 과정에서 나는 더욱 나를 성장시키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1] 국민포장(國民褒章)은 대한민국의 훈장으로 상훈법 제21조 정치 · 경제 · 사회 · 교육 · 학술 분야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 또는 공익시설에 많은 금액의 재산을 기부하였거나 이를 경영한 사람, 그 밖에 공익사업에 종사하여 국민의 복리 증진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한다.(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