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전두환 정권의 군부독재에 맞서 전국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그날은 시청 앞과 광화문 거리를 중심으로 데모가 한창 진행되었으며 거리에는 시민들로 꽉 들어찼다. 지점 출입구에서부터 최루탄 가스 냄새가 들어오고 경찰들에 의해 은행 출구의 셔터가 강제로 내려졌다. 직원들은 긴급한 일들만 서둘러 처리하고 퇴근했다. 시내 곳곳에는 버스도 지하철도 다니지 않았다. 우리는 최루탄 가스에 대비하여 손수건과 휴지, 치약들을 챙겨서 퇴근했다. 집을 가는 길은 오직 걸어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최루탄 가스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대학 시절 점심을 먹고 학교 중앙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교내로 들이닥친 전경들의 군화 소리에 깜짝 놀라 창문 쪽으로 눈을 돌렸다. 나무 위로 올라간 학생을 잡으려고 무자비하게 최루탄 가스를 쏘고 있었다. 나무에서 잡혀 내려온 학생은 머리가 터져 피를 흘리며 전경들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갑자기 그때 일이 떠올라 속이 메슥거렸다. 동료들과 함께 서울역 쪽으로 걸어갔다. 최루탄 가스에 눈도 따갑고 숨을 편히 쉴 수가 없어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집에 도착했다.
그해 가을, 인사이동으로 본점 영업 1부로 발령받았다. 직원들은 본점으로 발령 났다며 모두 축하해 주었다. 함께 근무했던 지점장님께서 본점 영업 2 부장으로 가시면서 이번 인사이동에 기대하고 있으라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났다. 지점장님의 평가는 직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나와 친분이 있던 대다수 직원이 본부 부서로 인사이동되어 나도 막연히 본점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어느 부서로 가야 할지 몰라 매년 '가고 싶은 부서란'에 지점과 동일한 업무를 하는 본점 영업부를 적어 넣었다.
본점 영업 1부는 120명의 직원이 1, 2층과 지하 대여금고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많은 인원 중에서 내가 알고 있는 직원은 지난번 인사이동으로 서소문지점에서 본점 영업 1부로 온 K 계장이 전부였다. 나는 엄청난 규모에 눌려 기가 죽었다. 인사발령 후 첫 출근 날, 담당업무를 발령받고 보니 '아뿔싸, 이게 뭐람.' 나는 출납계 소속으로 신입 행원 때도 하지 않던 수납업무를 맡게 되었다. 게다가 직원 식당은 21층에 있었고 나는 함께 점심 먹을 사람이 없어서 식당 구경도 못 한 채 김밥으로 때우고 있었다. 며칠이 지난 후, 서소문지점에서 함께 근무했던 친구로부터 안부 전화가 왔다. 그녀는 본점 식당 밥은 맛있는지, 직원들은 잘해주는지,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아는 사람이 없어 며칠 동안 식당은 가지도 못하고 김밥으로 때우고 있다고 말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득달같이 달려와 자신의 단짝 친구인 L을 소개시켜 주었다. 다음 해 2월 L이 비서실로 이동하기 전까지 우리는 늘 붙어 다녔고 후에 나와 비서실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매일 아침 7시면 나는 어김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 시간은 조용히 혼자서 QT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내가 맡은 업무는 전국의 시공과금을 총괄 집계하여 공과금 총괄 은행으로 넘겨주는 것과 신입행원 A의 멘토 역할이었다. 내 자리는 부장실 바로 앞에 있었다. 그날도 출근하여 머리를 처박고 손바닥만 한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머리 위가 뜨겁게 느껴져서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더니 부장님께서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너 지금 뭐 하니? 그게 눈에 보이니? 도대체 몇 시에 출근하는 거야?"
"7시쯤 출근합니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나는 무슨 잘못이라도 한 사람처럼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큰 키에 매서운 눈초리를 가진 부장님을 직원 모두가 무서워했기 때문이었다. 부장님은 내가 전국의 시공과금을 총괄하고 있어 업무 미숙으로 일찍 출근해 전날 잘못 처리한 업무를 진행하는 것은 아닌지 오해하고 계셨다며 비서인 선배가 말해주었다.
주말에 책임자들의 산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서무계 직원들과 함께 나도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나는 속으로 '다른 직원들과 함께 가는 것도 아니고 서무계 직원도 아닌 내가 왜 참석해야 하는 걸까?' 하고 의문을 가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비서로 있던 선배가 결혼으로 퇴직하면서 후임을 물색하던 중에 때마침 매일 일찍 출근하는 나를 눈여겨보시고 참석하라 말씀하신 것이었다. 산행은 함께 일하기 위한 테스트 자리였다. 산행 이후 서무 차장님께서 비서 업무를 인수·인계받으라고 말씀하셨다.
매일 나는 1, 2층의 넓은 사무실을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녔다. 결재가 많은 당좌, 여신, 외환 업무를 총괄하는 파트장(부부장)을 부장님께서 찾으시면 전화로 말씀드리는 것이 조금 건방지다 생각이 들어 직접 모시러 갔다. 그렇게 하루 업무가 끝나고 나면 지쳐서 바로 퇴근할 수가 없었다. 부장님의 결재는 아침저녁으로 산더미처럼 쌓여갔고 두세 번을 거쳐야 겨우 끝날 수 있었다. 결재를 진행하다 보면 책임자 날인이 빠진 것에서부터 부연 설명이 필요한 경우까지 다양한 상황이 발생했다. 나는 가능한 책임자 날인이 빠진 서류는 사전에 점검하여 해당 파트 직원에게 돌려보내서 추가로 결재를 받곤 했다. 어느 날 부장님께서 외환업무 담당 책임자를 부르셨다. 담당 책임자인 H 차장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부장실로 들어갔다.
H 차장님은 '외환 서류 반송이 많아 부장님께서 한 말씀하시겠구나.' 생각하고 긴장하며 들어갔는데 오히려 칭찬을 듣고 나오면서 어리둥절하여 내게 물어보셨다.
"매일 결재서류의 네다섯 건은 반송이 있었는데 부장님께서 반송하신 것이 아닌가?"
"사전에 날인이 빠진 서류들은 부장님 결재 전에 미리 챙겨서 추가로 받아 부장님께 결재를 올렸습니다."
"그랬었군. 고마워. 덕분에 오늘 칭찬을 많이 들었네."
말씀하시며 기분 좋게 자리로 돌아가셨다.
처음 비서로 업무를 시작할 때는 많은 오해가 있었다. 부장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려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트리는 책임자도 있었고, 서류를 반송했을 때는 건방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많았다. 그러나 하나하나 모두 신경 쓰다 보면 나 자신의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 어떤 부분은 무신경하게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조금 더 세심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신경 써야 하는 부분도 생겨났다. 가능하면 직원들이 부장님을 대할 때 두렵거나 어렵게 대하지 않기를 바랐다. 부장님은 직원들에 대하여 일일이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서에서 발생한 일 가운데 부장님께서 꼭 알아야 하는 일이나 직원들과 관련된 사항은 메모하여 알려드리고 직원들을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대화하실 수 있도록 신경 썼다.
때로는 120명이라는 직원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비서라는 위치 때문에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었고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어 오해받을 때도 왕왕 있어 힘들 때가 많았다. 임금협상 시기에는 노조원이기에 직원들과 함께 일치된 행동을 보여야 하지만 비서로 있으면 은행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기에 따가운 눈총을 받거나 직원 식당을 이용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에는 타 부서 직원일지라도 비서로 있는 직원과 식사하거나 행동을 같이했다. 다행히 서소문에서 함께 근무했던 친구가 영업 2부에서 비서로 근무하여 서로 격려하고 힘든 일을 털어놓으며 마음을 위로하기도 했다. 부장님께서는 나의 이런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고 이해해 주셨다. 그 후 예전에는 어렵게만 느껴지고 모든 것을 맞추어야 하는 긴장된 자리였으나 조금씩 여유를 가지고 시야를 넓힐 수 있었으며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조금씩 나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