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

by 민앤박

주식시장이 마감되기 직전, 부서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직원들은 모두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세워져 있었다. 결혼과 함께 비서실에서 자금부로 자리를 옮겼다. 두세 달 전 결혼을 앞두고 자금부 부장님께서 영업점 업무는 언제든지 배울 수 있으니 본부에서 업무를 더 배워보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하셨다. 본부 인원 축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남직원과 여직원의 업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직원이 필요하다며 권하셨다. '두 사람 몫을 과연 잘해 낼 수 있을까?' 망설였지만 남편도 다른 은행 신탁부에서 근무하고 있어 어쩌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솔깃한 마음이 들었다.


자금부에 배치받고 나서 부속 부서인 증권운영실로 발령이 났다. 증권운영실은 주식운영팀과 채권운영팀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주식운영팀은 점심시간과 주식 마감 시간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사람들이 긴장감을 가지고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아차! 하는 순간의 실수로 주문이 잘못되었을 때 그 손실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업무시간에는 어지간히 긴급한 일이 아니고는 아무도 딜러들을 터치하지 않았다. 딜러들은 경력에 따라 운영하는 자금 규모가 다르고 금액이 큰 경우에는 담당 임원의 결재까지 필요했다. 실장님은 주식을 사고파는 데는 시간 싸움과 동물적 감각이 필요하다고 늘 말씀하시며 임원 승인까지 받는 사이 상황이 바뀔 때가 종종 있어 안타까워하셨다. 채권운영팀은 주식운영팀과 달리 시간에서는 자유로웠지만, 부서 사무실 한편에 커다란 금고가 설치되어 각종 채권 실물을 보관하고 있었다. 매월 말일이면 채권 실물 감사가 이루어지는데 한 번 감사하고 나면 진이 빠질 정도였다.


증권운영실은 특수업무를 취급하는 부서이기에 장기근무자가 많았다. 대부분이 책임자급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행원급은 나를 포함해서 4명이었다. 업무 인수인계를 받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업무를 인계해야 할 A 계장이 내가 비서실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대놓고 불만을 터트렸다.


"여기가 여직원들이 쉬었다 가는 곳인가? 왜 하필 인원도 없는데 이곳에 온 거야. 그렇게 대충 다닐 거면 은행을 다니지 말던가."


나에게 하는 말인가?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당황했다. 조금 지나서 가만히 듣고 있자니 민망할 정도로 툴툴거리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제 막 발령받은 부서에서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A 계장의 불만이 심해지자 담당 책임자(차장)는 더 이상 그냥 둘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를 불렀다.


"A 계장,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대놓고 이야기를 하나. 너라면 기분 좋겠어. 이유가 있으니까 부장님께서 불렀겠지. 앞으로 일해보면 알 거 아니야. 잔소리 말고 인수인계하고 빨리 적응하도록 해. 인원도 없어 힘든데 왜 감정을 먼저 앞세워서 사람을 불편하게 하나?"


담당 차장님은 A 계장을 나무라시며 인수인계를 빠르게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드디어 그와의 불편한 관계가 시작되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의 이러한 인식도 탓할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여직원의 처우가 급여를 비롯한 업무 배치나 대우 면에서 차별이 있었기에 전임자의 경우 사무실 상황과 관계없이 업무 종료와 동시에 칼퇴근했다고 한다. 더구나 인사이동으로 두 명의 직원이 가고 내가 왔으니 본인이 두 사람 몫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불만이 터져 나왔다. A 계장의 행동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는지 B 계장이 조용히 다가왔다. 그는 부서에서 5년 동안 일해서 누구보다 부서 업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내 앞에 빈 종이 한 장을 가져다 놓고 아침부터 저녁 마감 업무까지 해야 할 일과 주요 체크 사항을 적으며 알려주었다. 매월 작성해야 하는 보고서는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일일이 설명해주며 모르는 것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중간에 물어보라는 말도 남겼다. 그의 도움으로 나는 조금씩 업무에 적응해 나갔다. 내가 맡은 업무는 보고서 작성과 서무업무를 동시에 맡았다. 보고서는 매월 기간별로 한국은행에 발송해야 했다. 기간별 보고였기 때문에 일정을 맞추지 못하거나 보고서가 잘못되었을 때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요즘과 다르게 일일이 수작업으로 작성하여 월말이면 야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외 영업점에서 여신업무에 활용하는 <주식 대용가 표>를 만들어 배포했다. 수작업으로 일일이 만들어서 인쇄 후 영업점별로 발송해야 하는 <주식 대용가 표>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여기에 직원들과 관련된 서무업무까지 하다 보니 일이 많은 날에는 집으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부터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업무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에는 퇴근길에 차 안에서 당일 발생한 이야기들을 남편에게 털어놓으며 마음을 달랬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서 행원들끼리 저녁을 먹자고 A 계장이 제안했다. 그동안 쌓였던 회포도 풀 겸 해서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는 삼겹살을 앞에 두고 그간 불편했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A 계장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비서실 직원에 대한 특혜라는 인식과 함께 근무했던 여직원들이 대부분 뒷배경이 있었던 터라 피해의식과 선입견이 있었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까지 많은 여직원과 일했지만 일을 찾아서 하는 직원은 처음이라며 나와 함께 일하면서 여직원에 대한 인식도 바뀌게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A 계장의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함께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가시방석처럼 불편하고 힘들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그가 이제 나를 동료로 생각하는구나.' 느끼는 순간 나의 마음이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A와 나는 동년배였고 결혼도 하루 차이로 비슷한 시기에 했다. A는 성격이 급하기는 하지만 일 하나는 스마트하게 잘하는 친구였다. 이후 우리는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게 되면서 업무를 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개선해 나갔고 누구보다 호흡이 잘 맞는 파트너가 되었다. A 계장이 다른 부서로 인사이동되었을 때 나는 그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의 불만은 나를 더욱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을 대함에 있어 "나는 여자니까"라는 생각을 버리게 했으며 일할 때만큼은 누구보다도 주어진 일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려고 노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윗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인정받게 된 것이 더 뿌듯하고 기뻤다. 비서실에서 여직원들과 일할 때와 또 다른 분위기에서 성취감을 느끼며 나를 부정하는 사람과 어떻게 화합하며 일할 것인가를 배우는 좋은 기회였다.


부서에서 어느 정도 업무도 익숙해지고 자리를 잡아갈 즈음 나는 다시 임신했다. 처음 부서에 와서 익숙하지 않은 업무로 스트레스가 심했던지 임신 초기에 두 번의 유산이 있었다. 업무를 잘해서 인정도 받고 성과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몸에 무리가 되었던 것 같다. 나의 임신 소식에 부서 직원들 모두 기뻐해 주었다. 실장님께서는 업무도 안정되었으니 한 달간 일찍 퇴근하라고 하셨다. 나는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임신 초기인 일주일 정도만 일찍 퇴근하겠다고 말씀드리며 배려에 감사했다. 마음이 편안해지자 이번에는 입덧도 없이 잘 먹고 일에도 무리가 없었다.


"오늘은 뭐가 먹고 싶어? 엄마가 잘 먹어야 아기도 건강하게 자라는 거야."


실장님께서는 임신한 내가 저녁을 먹기까지 허기지지 않도록 주식시장이 마감되면 오늘 하루 장사를 잘했다고 하시며 직원들을 위해 간식을 사 주셨다. 아기는 예전과 다르게 건강하게 잘 자랐으며 업무를 하는데도 큰 무리가 없어 직원들은 복덩이라 불렀다. 출산을 두어 달 남기고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실장님과 직원들 모두 섭섭해하시며 육아휴직을 들어가는 내게 돈을 모아 커다란 아기 목욕통에 아기용품을 가득 담아 선물로 주셨다. 남편이 사무실로 와서 함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육아 휴직에 들어갔다. 출산예정일보다 일주일 늦게 출산하여 궁금하실 것 같아 건강하게 출산했다고 소식을 전했더니 병원에는 차마 가지 못하겠다고 하시며 건강하게 회복하라고 맛 좋은 기장 미역과 분유를 한아름 보내주셨다. 상주가 고향인 동료는 내가 곶감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집에서 가족들이 먹기 위해 만든 것이라며 일부러 남편의 사무실까지 찾아가 보내주었다.


처음 부서 발령을 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하고 두 번의 유산을 겪는 아픔도 있었지만, 그것을 새로운 관계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어 기억에 오래 남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서로가 모르는 상태이기에 오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지만 함께 일하면서 '다시는 저 사람과 일하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다시 한번 그 사람과 일하고 싶다.' 평가받는 것은 쉽지 않다. 내가 떠난 자리가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어서 감사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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