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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용 Jun 18. 2021

로즈마리가 크면 라벤더가 되나요?

주말주택, 작은 정원과 더 작은 텃밭 가꾸기



집은 작아도 마당은 컸으면 좋겠어요


입주 뒤 벌써 삼개월.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싶다.

짧고도 길었던 지난 삼개월의 이야기를 조금씩 해볼까 한다.

그 첫 번째는 우리 집 정원이자 텃밭인 마당 이야기다.


정원 조경을 계획하면서 파쇄석과 잔디 구간을 정할 수 있었는데 되도록 넓게 잔디를 깔기로 했다. 집보다 훨씬 큰 잔디밭이었다. 그러고 보면 집보다 땅 욕심이 있는 편이었을지도.


종종 옆집 애기랑 긴 호스로 물을 뿌리며 무지개를 만들며 놀았다. 잔디밭에 물이 닿으면 귀뚜라미, 방아깨비 친구들이 점프를 했다. 세상엔 이렇게 무섭지 않은 벌레도 있었다.


인부 아저씨들이 잠깐 두고 간 손수레마저 풍경이 된다.  



먹고, 보고, 즐길 수 있는 정원 가꾸기    


기본적인 조경은 돼있었지만, 몇 가지 허브와 나무를 더 심었으면 했다. 어린 라일락 나무 한 그루, 나즈막한 홍 매화도 한 켠에 자리 잡았다.    


종묘사에 들러 텃밭에 심을 모종과 로즈마리 두 화분을 샀다.

두 식구뿐이니 모종은 조금이면 되었다. 깻잎, 바질, 청상추, 적상추, 케일, 치커리, 오크.... (?)

야생화 꽃집에도 들러 귀하다는 흰 라벤더 둘과 보라 라벤더 둘, 총 네 팟을 샀다.


처음에 모종을 심었을 때는 작고 귀여웠다. 이래선 언제쯤 먹을 수 있을까 했었었다.




향도 좋고 맛도 좋고 잘 자라는 건 덤인 허브 가든  


의심 많은 오빠는 자꾸만 종묘사에서 산 로즈마리가 라벤더 같다고 했다. 기어코 꽃집 주인에게도 다시 한번 물었더니 얘는 '로즈마리'라고 확인시켜줬다.   

참, 향이 엄청 좋은 세이지 화분도 두 개 샀다. 적응력이 좋아서 금방 번진다는 녀석들이다. 돌아오는 길 차 안이 허브 냄새로 가득했다. 사람이 착해지는 향기였다.  


식물들의 자리를 고심하다 정원 끄트머리에 라벤더랑 로즈마리를 교차로 심었다. 이른 여름 햇살이 쏟아졌다. 동남아 여행 갈 때 쓴다고 산 챙 넓은 모자를 쓰고 땀을 뻘뻘 흘렸다. 그래도 대충 보면 프랑스 정원 같은 아주 엘레강스한 분위기였다.  

  

흰 라벤더, 보라 라벤더, 로즈마리(?)가 순서대로 자리했다. 계획적 정원 배치다.



맛잘알들이 부러 찾아오는 정원과 텃밭


벌들은 라벤더를 무척 좋아했다. 그 외의 벌레들은 텃밭을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향 나는 깻잎, 바질이 최애였다. 맛을 아는 작은 친구들이다.


처음에 모종을 심었을 때는 시름시름하고 잘 자라지 않더니

알 비료를 뿌려주고 세찬 비를 맞은 후 급속히 컸다.

물론 더운 날에도 목마르지 말라고 수동 급수기를 꽂아준 정성도 있었다. 아이가 자라는데 한 마을이 필요하듯 절로 자라는 생명은 없었다. (물론 잡초는 제외)


상추는 자라면 정글이 된다. 가장 잘 크는 건 케일이다. 요즘 유행한다는 파테크, 우리도 해봤다.



먹는 기쁨, 자랑의 맛, 나누는 재미


텃밭 채소는 야들야들하고 맛있다. 게다가 유기농 오크랑 상추 치고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이른 새벽 물기를 한 가득 머금고 있는 모습을 보면 유럽산 장미꽃 저리 가라다.  


잘 자란 채소 구경을 왔다는 이웃을 마주 하곤 마치 자식 자랑하는 엄마가 된 것 같았다.

(이웃님, 아무래도 채소 정글의 비결은 알 비료 같아요!)


그나저나 무럭무럭 자라는 채소를 두 식구가 소화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일요일에 도시로 출발하기 전에 큰 봉지 가득 텃밭 채소를 채웠다. 아파트 카페에 텃밭 채소를 나눔 한다고 올리고 집 앞 아이스박스에 넣어뒀다.

(코로나 시대를 고려한 비대면 문고리 나눔!)


나중에 아이스박스를 열어보니 빵도 있고 노오란 망고도 고맙다는 쪽지도 있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게 작은 집이 가져다준 행복이었다.


예쁜 우리 애들 좀 보세요. 고기에도 꿀리지 않는 텃밭 채소의 자태와 위엄.



그나저나 로즈마리가 자라면 라벤더가 되나요?  


자리까지 고심해서 심은 로즈마리와 라벤더는 똑 닮아 있었다. 일주일쯤 지나니 로즈마리에서도 보라색 꽃망울이 졌다. 그리고 또 한 주가 지나니 라벤더랑 같은 꽃이 피었다.

의심 많은 오빠가 이긴 순간이었다. 동시에 진 순간이었다.  

진짜 승리자는 이미 단단히 뿌리내린 아이들이었다.

라벤더로 가득한, 호박벌이 윙윙 거리는 봄과 여름 사이의 아름다운 정원이 완성되었다.


저무는 라벤더의 계절을 붙잡아 본다.


p.s

거진 한 달만에 다시 찾아간 종묘사에서는  

미안하다고 진짜 로즈마리 화분을 하나 주셨다!

이제 고기 먹을 때도 안심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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