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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백 Jun 11. 2022

금사봉金沙峰

                                                           

방문을 열면 산이 보였다. 어느 날은 텃밭 가까이 왔다 어떤 때는 바람에 쫓겨 가는 구름처럼 뒤로 쭉 물러나 있었다. 어른들은 날이 흐리면 가까워지고 맑으면 멀어진다 했지만 나는 산이 요술을 부리는 거라 믿었다. 동그스름한 봉우리에 작달막하게 서 있는 나무들은 산을 지키는 요정 같았다. 금사봉은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산이면서 가장 먼 이국 같은 곳이었다. 


예전에는 그곳에서 금을 캤다 했다. 아직도 땅속에 금이 묻혀 있지 않을까, 숟가락이랑 밥그릇이 모두 금이라면 얼마나 근사할까. 나는 그런 상상을 하며 해가 쨍쨍한 낮이나 한밤중에도 광채를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별빛 사이로 요정이 날아다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언젠가는 그 산에 꼭 가보고 싶었다. 

  

요정의 장난이었을까. 어느 날 산자락 아래 마을에서 아이가 사라졌다. 도시에서 부모를 따라 할아버지 제사에 왔던 네 살짜리였다. 골목을 따라 걸어 나간 이후 행방이 묘연했다. 근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목격자마저 나타나지 않았다. 저수지 둑에서 아이 이름을 부르는 엄마의 쉰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횃불을 밝히고 징을 두들기며 벌어진 굿판에서 무당은 금사봉을 가리켰다. 나흘 만에 아이는 산 중턱 커다란 바위 아래서 발견되었다. 그사이 비가 내렸지만 옷에 흙 하나 묻지 않은 말짱한 모습이었다. 하얀 옷을 입은 할아버지와 함께 있었다는데 사람들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두고 귀신이 한 짓이라 했다. 영험한 기운이 감도는 산은 더 이상 내 상상의 근원지가 되지 못했다. 


그 산에 오르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었다. 졸업 후 취업을 못하고 빈둥대고 있던 때였다. 늦가을 오전, 밤을 따러 가는 오빠들을 따라 뒷산으로 향했다. 다랑논을 지나 이어지는 나지막한 산길은 언제나 따뜻했다. 소나무와 낙엽송이 빼곡한 숲까지 들어가 보기는 처음이다. 한참을 걸어도 도통 밤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반나절을 더 걸었을까. 계곡을 따라 줄지어 서 있는 밤나무가 보였다. 우리는 모험을 떠나온 아이들처럼 환호했다. 나무 그림자가 드리운 물속에는 버들치와 쉬리들이 떼를 지어 다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밤송이들이 발에 차였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밤 줍기에 여념이 없는데 주변을 살피던 오빠가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길이 안 보이네. 

  

근방 산은 다 꿰고 있다더니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숲이 우거진 때문이라 했다. 오빠는 밤 줍기를 멈추고 부러진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풀밭을 더트며 독 오른 뱀을 조심하라면서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는 멀고 앞으로 계속 가면 금사봉이 나온다 했다. 그러니까 만날 보던 앞면이 아니고 뒤로 오른다는 말이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터널처럼 에워싼 나무뿐이다. 어디에서나 보이던 금사봉은 가도 가도 보이지 않고 가을 산에 어둠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이러다 산짐승이라도 만나면 어쩌나. 겁에 질려 어둑한 길을 뛰다시피 걷는데 돌연 우뚝한 산이 앞을 막아섰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털퍼덕 주저앉아 두 다리를 뻗고 꺽꺽거리고 울었다. 일행들은 우두커니 서서 나를 기다렸다. 한참 눈물바람을 하고 나니 물기 빠진 몸이 가벼워진 것도 같고, 마음이 가라앉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올라야 할 꼭대기는 희망 없는 내 청춘처럼 암담하기만 했다. 


산은 멀리서 보기와는 달랐다. 겉모습만 의연했지 속내는 근심 덩어리 같은 자잘한 돌멩이들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그렇더라도 품을 것은 다 품어내는지 짐승들의 배설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가파른 길을 네 다리로 기었다. 자갈에 미끄러지며 기를 쓰고 오르는데 산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고요하다. 나는 고개를 처박고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을 쳤다. 어느 순간 몸이 평지에 올라서 있었다. 꼭대기는 그저 산의 일부일 뿐이었다. 어른들은 이미 산의 속내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 어렸을 적 뜻도 모르고 불렀던 노랫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금사봉 꼭대기에 물캐똥을 싸놓고/오고 가는 시 파리에 애간장을 녹이네// 에헤야 가다 못    가면/에헤야, 쉬었다 가세.//호박 같이 둥근 세상/둥글둥글 삽시다.//      


꼭대기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점점이 불빛들이 반짝였다. 정작 노다지가 묻힌 곳은 내가 살던 저곳이었던가. 나는 자갈이 깔린 산을 타고 미끄러져 내렸다. 땅에 발이 닿자 온몸에 기운이 빠지고 허기가 몰려왔다. 골짜기 밭고랑 가에 달려있는 단감을 허겁지겁 깨물며 집으로 향하는데 멀리서 징소리가 들렸다. 마을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산의 이면을 본 그날 나는 진정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집에 와서 보니 배낭의 뚫린 구멍으로 밤이 줄줄이 새나가고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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