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친구를 만나러 간다 했다. 카멜색 짧은 스커트에 레이스 달린 아이보리색 블라우스를 받쳐 입은 모습이 산뜻했다. 아이는 거울 앞에서 앞뒤를 재더니 내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고는 사라졌다.
나는 정신과 전문의 김준기의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을 읽고 있었다. 비가 내려 맞춤한 날씨였다. 영화와 심리에 관한 설명이 곁들여 있어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스물네 편의 이야기 중 〈아들의 방〉이 유독 끌렸다.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항구 마을. 정신과 상담의사인 조반니는 사려 깊은 아내와 10대인 아들딸과 함께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 환자에게서 급한 연락을 받은 조반니는 아들과의 조깅 약속을 뒤로하고 환자를 찾아간다. 그 사이 친구들과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간 아들이 목숨을 잃게 되고… 평화로운 가정은 한순간 균형을 잃고 만다.
사실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고들을 매일 접하면서도 나와는 관계없는 듯 살아간다.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자식을 둔 부모라면 그 상실의 아픔이 얼마나 클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공감을 하면서도 직접 겪은 일이 아니기에 감정은 책 속에서만 머물렀다. 오히려 당신의 트라우마는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작가의 질문이 현실적으로 더 와닿았다.
트라우마(trauma)란 정신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격렬한 감정적 충격을 뜻한단다. 늦둥이로 태어나 나이 든 부모가 일찍 떠날까 불안했던 기억이나, 학업을 위해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며 느꼈던 허전함도 그 일종이라 해야 할까. 내 아이들에게는 절대 대물림하지 않겠다 다짐했다.(했는데,) 마흔 넘어 출산한 아이가 오늘 스무 번째 생일을 맞았다.
아침을 먹으며 남자 친구에 대해 조잘대는 소리를 묵묵히 듣던 남편이 걱정하는 눈빛을 내게 보냈다. 남자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성교육을 한답시고 조언을 할라치면 아이는 알고 있다 손사래를 쳐댔다. 대학생이 되어 친구들처럼 학교 가까이 방을 얻어 나간다 할 때도 아직은 때가 아니다 싶었다. 나보다 젊은 친구 엄마들은 망설임 없이 아이들을 내보냈다. 그들의 발 빠른 대응에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닌가 살짝 기가 눌렸다.
오후 들어 비가 거세게 퍼부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천둥 번개까지 내리쳤다. 저녁은 가족과 함께 먹는다더니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이에게 아무런 소식이 없다. 만날 시간과 장소를 보낸 문자도 보지 않았다. 제 오빠가 선물로 주문한 핸드백이 먼저 도착해 주인을 기다렸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별안간 책에서 만났던 갖가지 불행한 이야기들이 오버랩되었다. 유괴범에게 자식을 잃고 한 인간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밀양〉, 성폭행을 당한 후유증으로 무기력하게 변해버린 일상을 살아가는 〈여자, 정혜〉. 불길한 예감에 미친 듯 전화기 버튼을 눌러 댔다.
그때 카페에 가지 않았다면 이런 불안함이 없었을까. 살아가는 일이 누구에게나 매일 응급 상황이 아니냐고 점술가에게 반박했다면 괜찮았을까. 십 대를 보내고 스무 살이 된 오늘, 넌 어디에 있는 거니.
고양이가 그려진 아이의 민소매 잠옷에 얼굴을 묻었다. 달짝지근한 복숭아 향이 났다. 아무 일 없이 살아온 기적 같은 날들이 나를 지나쳐 갔다. 너를 다시 볼 수 없다면 살아 숨 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제발, 제발, 제발……. 후들거리는 손으로 다시 전화기를 드는데 벨이 울렸다.
“엄마, 진동이어서 이제야 봤어요. 무슨 일 있어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들의 방〉 앞에서 내 안에 도사리고 있던 죽음의 트라우마를 만났다. 한바탕 푸닥거리를 한 것처럼 온몸에 기운이 빠졌다. 영화 속 이야기는 단지 그들만의 아픔이 아니었다.
아들을 보낸 후 남은 가족들은 각자 감정의 극단을 경험하며 불안정한 상태로 방황한다. 자책과 절망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죽음을 받아들인다. 빈자리마저 삶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며 그들은 다시 삶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비가 그쳤다. 요동치던 마음도 잠잠해졌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간은 어김없이 오늘이라는 강을 건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