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마름질

by 동백

열 살 무렵이었던가. 흙 마당에 아지랑이가 연신 피어오르는 봄날이었다. 햇빛이 내리비쳐 텃밭 장다리꽃이 아른거렸다. 심심한 한낮을 보내던 아이는 기운을 빼앗아가는 햇빛과 두엄냄새에 취해 툇마루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바깥에서 들어온 봄기운이 내 안에 무엇과 만났던 것인지 가슴이 텅 빈 것 같았다.


그 감성 탓이었을까. 여고시절 고독해 보이던 국어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다. 아침마다 선생님 책상 위에 꽃을 몰래 꽂고는 도망치듯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눈치 채지 못하는 선생님이 이제나저제나 알아주기를 바라며 국어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선생님은 우리 반에 있는 서정주 시인의 손녀딸에게만 관심이 많았다. 그 애에게 할아버지의 근황을 물을 때면 작은 눈이 반짝였다. 가끔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국화 옆에서’를 낭송하기도 했다. 친구들은 키만 멀대같이 크고 재미도 없다며 흉을 보았지만 선생님을 향한 나의 마음은 나날이 커져갔다. 학업성적으로 관심을 받기 위해 애를 써도 좀처럼 국어 점수는 오르지 않고, 꽃으로 전하고 싶었던 내 마음도 가 닿지 않았다.


삼 학년 이 학기 무렵, 견디다 못해 진로 상담을 핑계 삼아 교무실을 찾았다. 선생님은 뚝뚝한 표정으로 무슨 용건이냐며 물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친구를 바라볼 때와는 사뭇 달랐다. 좋아한다는 말은 차마 못 하더라도 그동안 꽃을 꽂은 게 나였다고 밝히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서늘한 눈빛이 야속했다. 그 눈빛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에 무서리가 내리고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나는 방향을 바꿔 국문과가 아닌 의류학과에 입학했다. 화려한 변신을 하면 쳐다봐 주실까. 그러나 관심도 없었던 학과 공부는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었다. 패션잡지와 스케치북, 기다란 자, 바느질 가방을 둘러메고 동대문 원단 시장을 뛰어다녔다. 디자인은 말할 것도 없고 재료가 즐비한 시장을 돌며 색상이나 소품, 단추 하나를 고를 때도 무딘 내 감각을 확인해야만 했다.


더욱 힘든 것은 재봉질이었다. 디자인을 하고 패턴을 만들어 옷감에 본을 떠서 잘라내는 마름질 과정까지는 겨우 넘기더라도 마지막 재봉질에서 걸려 넘어졌다. 발틀을 밟는 순간 드르륵 질주하는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노루발에 눌린 천이 실크처럼 부드러우면 바늘땀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모직처럼 도톰한 천은 툭툭 튀어 올라 삐뚤빼뚤 선을 벗어났다. 거기다 북실은 엉겨 끊어지기 일쑤였다. 박고 뜯기를 수십 번, 기우고 때우듯 완성된 옷은 누더기처럼 모양새가 뒤틀리고 볼품이 없었다.


학교를 갈 때마다 언덕바지에 있는 강의실이 보이면 돌아서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동기생 때문이었다. 과대표를 맡은 그녀는 의류업계에서 일하다 늦깎이로 입학했는데 어느 과목이든 막힘이 없었다. 함께 다니는 그녀의 채근에 결석도 못하고 도망갈 수도 없었다. 언니라고 부르며 따랐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그녀 곁에서 내 존재는 더욱 초라했다. 그러는 사이 졸업작품발표회가 다가왔다. 마지막을 폼나게 장식할 욕심에 나는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를 만들기로 했다. 바느질이 어려운 얇고 신축성 있는 천을 고른 게 실수였다. 발표 날은 다가오는데 촉박한 시간을 바늘땀이 또 물고 늘어졌다. 엉성하게 박음질한 원피스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찰싹 달라붙은 옷에 실밥이라도 터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 연습한 워킹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밝은 조명이 쏟아지는 레드카펫에서 빨리 사라지고만 싶었다.


졸업 후 전공과 상관없는 직업을 택했다. 첫 직장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원이었다. 그것이 연이 되어 글쓰기 지도 자격증을 따게 되고 다양한 문학 작품을 접하며 글로 아이들을 만났다. 그럴 때마다 어릴 적 툇마루에 앉아 있던 아이가 자꾸 말을 걸어왔다. 아이에게 들판을 뛰어다니는 것 말고도 책 속은 또 다른 놀이터였다. 책을 읽고 일기장에 감상을 끄적거리던 것이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사춘기에 접어 들어서는 변화무쌍한 감정들을 하얀 백지 위에 낱낱이 쏟아냈다. 언제든 나를 숨 쉴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쓰는 행위였다.


뒤늦게 시작한 수필 쓰기는 바늘땀을 박는 것처럼 서툴고 더디다. 들쭉날쭉 고르지 않은 감정들을 박았다 뜯기를 반복하며 글자들의 미로에 빠져 허우적댄다. 어쩌다 뜯은 솔기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 하나가 툭 튀어나오거나 매끄러운 박음질처럼 머릿속 그림이 술술 풀려나올 때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그러다가도 조바심이 밀려온다. 시간을 물고 늘어지던 바느질처럼 넋두리만 늘어놓고 마는 것은 아닌지, 내 좁은 인식의 틀 안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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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쓴다. 쓴다는 것은 나라는 세상의 무대 위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서게 해주는 일이다. 국어 선생님을 향한 흠모는 문학에 대한 동경이 아니었을까. 오늘도 나는 마음이라는 원단을 놓고 고심 중이다. 그곳에 언어의 마름질을 하면 어른거리던 형상들이 곧 잡힐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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