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놈을 위하여

by 동백

이렇게 누워 보는 것이 얼마만인가. 어머니 옆으로 형제들이 나란히 누웠다. 부챗살 모양으로 다리를 모으고 함께 자던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오빠들과 언니들 방이 따로 있었는데 한방에서 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새벽녘이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에 잠이 깨곤 했었다. 오늘은 잠든 어머니 곁에서 형제들이 잠들지 못하고 있다.


여기는 강화도이다. 고향집에서만 만나던 형제들이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오기는 처음이다. 항상 궂은일에 앞장서던 막내 오빠가 오늘은 운전대도 놓고 뒷좌석에 어머니와 나란히 앉았다. 오빠는 가끔씩 고개를 뒤로 젖히고 양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는 막내아들에게 손을 내맡기고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을 아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 짐을 풀었다. 물 빠진 갯벌에 가을볕이 온통 내려앉아 반짝거렸다. 갯벌은 길고 깊어 보였다. 늪처럼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끈적임이 무섭기도 했다. 어머니와 오빠는 마당에 앉아 오래도록 해바라기를 했다.


어머니가 고향을 떠나 자식들 가까이로 오신 후 형제들은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특히 막내 오빠와 나는 어머니가 계신 곳 가까이에 살아 자주 만났다. 사이가 좋은 우리를 남편과 올케는 오누이가 만나면 눈빛이 달라진다며 시샘하듯 속닥였다. 누구든 형제를 만나면 같은 마음이 아닐까?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헤어지면 애틋한.


어느 작가가 중국의 소수민족인 ‘모소족’과 함께 생활한 후 쓴 책을 보며 모계사회인 그곳을 동경했다. 남자들은 아내라는 이름으로 여자를 소유하지 않으며 딸들은 자궁에 충만한 우주 에너지로 영원히 아들이며 연인이며 손님인 아들을 낳고, 그 아들에게 여자는 영원히 어머니이며 연인이며 누이라고 말한 그곳을.


오빠는 하마터면 태어나지 못할 뻔했다. 어머니 뱃속에 자리를 잡았을 때 이미 위로 형제가 다섯이나 있었다. 병원을 찾아가 방책을 썼지만 돌파리 의사 덕에 온전하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태중에서 모진 고난을 당하고도 성격이 유순하고 건강했다. 세 살 터울인 내게 한 번도 큰소리를 내거나 짓궂은 장난을 한 적이 없다. 오빠는 중학생이 될 때까지 이름 대신 ‘작은놈’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었다.


우리는 같은 시기에 부모와 헤어져 서울로 올라왔다. 실 끊어진 연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릴 때 서로를 의지했다. 위로 두 오빠들이 부모 대신으로 엄하게 할 때도 항상 내 편이 되어 감싸주었다. 생각이 깊으나 말이 없고, 상대방 얘기에 귀 기울이며 함부로 비판하지 않은 오빠가 나는 좋았다.


오빠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추석 무렵이었다. 몇 달 전부터 등과 배가 아파 병원을 다녔는데도 좀체 낫지 않는다 했다. 병원에 입원해 정밀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불길한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나는 틈만 나면 병원으로 달려갔다. 혼자서 오빠 곁을 지키던 날 결과를 들었다. 병이 진행이 많이 된 상태라 수술도 할 수 없고 통증이 갈수록 심해져 오래 버티기 힘들 거라 했다. 오빠 나이 오십 중반이었다.


힘든 고비가 있을 때도 내색 한번 않던 사람이다. 병실에 누워 이제 탄탄하게 자리 잡아 걱정 없다며 생전 안 하던 자랑을 했다. 앞으로 쉬엄쉬엄 산다 했는데…. 매주 어머니 손톱 발톱 자르며 살갑게 굴던 일을 다시 할 수 있을까. 둘이 냇가에서 늦도록 고기를 잡다 쫓겨났던 이야기를 웃으며 나눌 수 있을까. 생각이 얽히고 숨이 차올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기다리고 있을 오빠 생각에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병실에 들어서니 소처럼 커다란 눈을 껌벅거리며 바라보았다.

“오빠야, 암이란다.”하니 “그럴 것 같았다. 어머니한테 참 죄송하다.”며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그날부터 형제들은 복사한 결과지를 들고 병원을 찾아다녔다. 어디를 가나 대답은 한 가지여서 희망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애가 타고 가슴이 아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그저 지켜만 볼 뿐,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힘이 되어주자며 짜낸 방법이 가족여행이었다. 항암치료가 시작되면 그 기회마저 얻지 못할 것 같았다.


우리는 내색 않고 밤 따기를 즐기고 한적한 바닷가를 거닐었다. 그리고 빠져나간 바닷물이 들어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주인 남자가 밀물 때 망둥어 낚시를 가자고 해서만은 아니었다. 생명을 품고 기르는 물의 속성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해 질 녘에 들어온다는 물은 해가 넘어가는데도 밀려간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있다. 밤이 되어서야 고랑을 타고 서서히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갯벌을 적시는 번들거리는 물을 바라보며 우리는 말없이 기도했다. 자궁에 있을 때처럼 내 형제가 온전해 지기를, 태중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 것처럼 다시 한번 기적이 일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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