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싶은 집은 나오기 바쁘게 매매가 되었다. 이번에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고향 동네와 분위기가 닮아 보였다. 몇 해 전부터 발품을 팔고 현지 중개인과 여러 번 통화를 했지만 마땅한 집을 찾지 못했다. 인터넷 화면에 뜬 기와집 사진을 키워가며 몇 번을 보고 또 보았다. 조급증이 나서 집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우선 계약금부터 송금했다. 쫓기듯 일주일 만에 잔금을 치렀다. 우편으로 계약서를 받아 들고 서야 안달박달하던 때와는 달리 속아 산 건 아닌지, 성급한 결정에 불안이 엄습했다.
계약한 지 한 달 만에 길을 나섰다. 가는 내내 화면 속에서 보았던 몇 장의 사진에 상상력을 더해 집을 그려 보았다. 처음에는 일자형 초가집이었을 거야. 돌담이 둘러진 마당가에 채송화와 봉숭아가 피어 있겠지. 장독대는 어디쯤 있으려나. 머릿속으로 집을 짓느라 천리나 되는 길을 지루한 줄 모르고 달렸다. 어릴 적 친구들과 놀았던 강가에 이르렀다. 은어가 산다는 탐진강 물은 변함없이 흐르고 오래된 벚나무는 강둑을 지키고 서 있다. 중산이라는 지명이 나오기를 바라며 구부러진 길을 더 들어갔다. 한참 지나서야 동네 표지석이 보였다.
좁은 골목을 따라 걸어갔다. 나무에 가려진 집이 움푹하게 들어앉아 있다. 허물어진 돌담 사이로 무성하게 자란 풀들이 나를 맞았다. 뒤꼍 우람한 벚나무와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있는 무화과나무가 흙집의 나이를 말해 주고 있었다. 마당 한편 녹슨 화덕에는 금방 여름 팥죽이라도 끓여 먹은 것처럼 재가 수북이 쌓여 있다.
굳게 닫힌 문고리를 잡아 당겼다. 문턱을 넘어서다 하마터면 낮은 천장에 머리를 부딪칠 뻔 했다. 지난 시간을 겨우 받치고 있는 기와지붕은 틈이 벌어지고 그을음으로 뒤덮인 부엌 흙 천장은 허물어질 것만 같다. 빈집은 퀴퀴한 냄새로 가득했다. 비가 새었던지 벽에 걸린 달력이 축축하게 젖어 있다. 이곳에서 어떤 이들이 살다 갔을까. 도시에 살면서 늘 귀향을 꿈꿔온 나처럼 그들도 또다른 그리움을 찾아 떠났을까. 젖은 채 멈춰 있는 시간이 눅눅하게 스며들었다.
화면발에 감쪽같이 속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괜한 짓을 했나 마음이 흔들리던 차에 서까래가 눈에 들어왔다. 서까래만은 지조를 지키듯 올곧게 뻗어 있다. 붉은 황토 속에 반쯤 몸을 숨기고 있지만 반질한 자태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고향 집에도 봄이면 서까래와 맞닿은 처마에 제비가 둥지를 틀었다. 새끼를 치면 나는 어린것들을 보려고 토방에 동그란 의자를 놓고 발돋움을 했다. 머리를 들이밀면 새끼들은 먹이를 물고 온 어미인줄 알고 노란태가 선명하게 둘린 주둥이를 마름모꼴로 한껏 벌렸다. 어미는 위협하듯 내 머리 위를 빙빙 돌았다. 하루가 다르게 몸집이 커진 새끼들은 둥지 밖으로 나와 서툴게 날개짓을 했다. 첫 서리가 내리기 전 제비가족은 따뜻한 남쪽나라로 날아갔다. 봄이 되면 이 집에도 제비가 찾아올까.
도시에서 오래 머물렀던 내게 이곳은 현실이라는 무대의 뒤편 같다. 굳이 이 먼 곳까지 온 이유를 찾자면 제비의 귀소성 같은 것이라 해야 할까. 열두 살에 떠나온 고향은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태가 묻힌 집이 아니더라도 그 부근 어디라도 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살면서 조금씩 고쳐가자던 계획을 바꿔 전문가를 불렀다. 수리가 시작되었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과 지붕을 덮은 가지들을 잘라냈다. 햇빛과 바람 길이 트여 침침하던 집이 환해졌다. 뒤란을 막아놓은 슬레이트를 걷어내자 뒷산 푸르름이 집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햇빛을 끌어 들이는 것만으로도 집이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았다. 햇살은 마당에 서 있는 내 어깨 위에도 내려앉고, 대숲을 빠져나온 바람은 살갗을 간지럽혔다. 해질 무렵이면 어릴 적 저수지 둑에서 바라보던 노을이 변함없이 하늘을 물들였다. 이때쯤이면 어김없이 나를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열두 살 소녀가 되어 강둑을 내달렸다.
내 그리움의 성분은 엄마 품에 머물렀던 유년의 기억이 아닐까. 세월이 흐르고 강산이 변했다 해도 이곳에서라면 그리움의 공백이 메워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