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자리

어른 수업

by 위공

프롤로그

먼저 필자의 평소 생각하는 것부터 애기를 꺼낼까 합니다. 대한민국도 고령화 시대에 들어간 지 이미 오래되었으며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해결책을 다 함께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라 생각합니다. 이 사회에는 노인은 많아도 진정한 어른이 없다는 말을 절감해 봅니다. 청년은 룰을 잘 따르는 반면에, 기성세대는 경험을 믿고 현재 룰을 무시하는 경향이 많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인생사 희로애락을 다 경험하고 늙어가는 힘없는 노인이 아닌, 지혜와 사랑이 충만하여 최고의 인격을 완성하고 자신도 이러한 것에 대하여 행복한 삶이라고 여기며 젊은 세대들에게 진실과 지혜를 전수할 수 있는 그러한 어른이 진정한 어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른은 누구나 될 수는 있으나, 아무나 될 수도 없기도 하지요. 이 시대의 상황을 확실히 파악하고 시대를 따라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재미를 부여하고 기성세대에서는 의미를 더하면 자연히 시대를 따라갈 수 있다고 사료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주제는 제가 살아온 경험담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는데, 정년을 하고 나름대로 제2의 인생을 열면서 과연 바람직한 어른의 삶은 어떤 것일까 생각하면서, 반면에 아이들을 교육시키며 바르게 커라! 이쁜 짓만 하라고 하면서, 진작 어른들은 그에 걸맞은 행동을 했는지 등 이런 것들을 조명해 보았습니다.



어른 수업

늙었나? 요즈음 내가 자주 나 자신에게 반문하는 언어다. 또한 주위에서도 듣는 말인데, “아버님! 이렇게 해 주세요!”, “좀 조용히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 조용히는 하겠는데, 왜 아버님이람? 당신들 아버지도 아니고 내가 당신들을 낳지도 않았는데 기분이 별로 좋지 않네!라는 생각이 들었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치과에서나, 지하철에서나, 여기서도 아버님! 저기서도 아버님! 집에 오면 거울을 한 번 들여다보며 조금은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아직은 노인은 아냐라고 나 혼자서 중얼거린다. 그리고 우리 집 막내에게 물어본다. “막둥아! 아빠가 늙었어?” 그러자, “아빠는 아직 젊어!” 막내가 말을 받는다. 그럼 그렇지 나는 늙었지 않아, 다만 장년으로 가는 중이지. 이렇게 자화자찬을 하며 용기를 낸다. 그런데 막내가 다시 아빠를 보며 말을 건다. “아빠는 잘 들리지 않는지 목소리가 커요!”라고 말하며 나의 단점을 정확히 지적한다. “그래, 아빠가 목소리 낮추며 신경을 쓸게, 알았지?”하며 실제로 음식점이나, 직장에서 목소리 낮추라고 지적을 자주 받다. 늙으면 말을 하는 것보다는 듣는 것이 오히려 편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듣기가 잘 안 들리니, 자연히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 같다. 이러한 것을 빨리 느끼고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통화보다는 카톡으로 댓글 달고 글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가 취미가 되고 재미가 난다. 다만, 카톡에서 어려운 편집이나, 글은 우리 막내에게 배우고 터득하여 실전 상황을 전개한다. , 말보다는 글로 소통을 하려고 한다.


한 번은 우리 막내와 동물보호센터에 함께 봉사활동을 갔다. 막내는 센터 팀장인 30대 초반 여성이 지시하는 대로 일사천리로 일을 잘 처리해 나갔다. 그런 반면에 나는 수시로 팀장이 와서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하며 자주 간섭을 하였다. 느리고 엉성하며 별로 팀장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투덜댄다. 눈치가 이만저만 보이는 게 아니어서, 빨리 끝나고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도 막내딸이 열심히 하고 있어 퇴근시간까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일을 했었다. 4시간이 하루 종일처럼 지겨웠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퇴근시간이 되자, 막내와 센터에 나오며 세상에 수월한 게 하나도 없다고 막내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막내는 아빠가 처음이라 자주 가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아빠도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하며 막내에게 한 수 배워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동물을 기르며 좋아했던 것과 동물을 위한 봉사활동은 하는 것은 완전 차원이 다른 것을 확실히 배웠다. 그냥 막연한 생각은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도 절실히 느꼈다. 옛날과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했다. 옛날에는 애완동물로 키우고 길렀지만, 지금은 반려동물이라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동물들을 이해하면서 배운 것은 동물들이 참으로 순수하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의 감성이 순수하듯이, 사람과 짐승이 이러한 면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동물들을 겪은 일을 소개하며 이해를 도우리라 생각된다.

내가 학교 경비를 나가면서 알게 된 길고양이들에게 나름대로 느낀 감정들 이야기다. 처음 만난 것은 장마철 기간에 학교 뒤편 언덕 숲 속에서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 올라가 보았더니, 새끼 고양이 3마리가 겨우 눈을 뜨고 옹기종기 모여 울고 있었다. 어미는 먹이를 구하러 잠시 자리를 비웠고, 새끼는 배가 고파 젖을 달라고 냥냥 거렸다. 그래서 내가 조심스럽게 어미 먹이를 냥이 거처 근처에 갖다 두었다. 그리고 계속 유심히 지켜보니 어미는 멀리 가지 않고 내가 갖다 준 먹이를 잘 챙겨 먹고 있었다. 그렇게 지낸 지 두어 달이 다 되어 갈 때, 어느 날 어미가 학교 현관문 밖에 내려와 웅크리고 앉아, “ 배고파요! 밥 주세요.”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따로 어미 먹이를 챙겨주고, 다시 또 먹이를 새끼에게 갖다 주었다.

이제는 이름까지 내가 지어 주었다. 어미는 남산이, 새끼 쌍둥이들은 초동이 1,2,3, 그리고 식구가 늘었다. 이디서 왔는지, 말 그대로 이쁜 옷을 입은 이쁜이, 곧 새끼를 낳을 것 같이 배가 부른 장미, 그리고 수놈인 뭉치 등 식구가 이렇게 늘었다. 예전에는 몰랐었는데, 지금은 냥이들이 한 마리라도 안 보이면 궁금하고 견딜 수 없어, 큰소리고 부르곤 한다. 늘 부르면 즉시 달려오는 냥이들이 기특하다. 우리 집 딸들도 학교에 먹이도 가져오고 구경하며, 아빠가 엄청 냥이들을 잘 기른다고 칭찬을 한다. , 이렇게 젊은 세대와의 교감이 잘 이루어지는 것도 어떻게 보면 냥이들과의 이야기가, 세대 간 또 하나의 소통이 잘되게 하는 교량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개나 고양이는 아이들과 같이 천진난만하며, 사람들을 잘 따르고 즐거워한다. 동물들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거짓을 모른다. 그렇기에 순수하다는 것이다. 역시, 아이들도 동물들을 그냥 순수하게 좋아하고 사이좋게 친화력을 발휘한다. 이런 점을 보면서 어쩜 그리 빨리 친할 수 있는지, 순수한 동심의 세게로 돌아 가본다. 그리고 매일 밥 먹고 운동하며 일상적인 일처럼 냥이들 밥 주는 일이 또 하나의 내 인생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결국 동물들을 잘 알게 되면서 젊은 세대와도 이야기할 수 있는 자신감도 생겼다. 어른이라고 젊은 세대를 아래로 보지 말고 동등한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도 새삼 배웠다.


종신제를 찾아서

수년 전의 일이었다. 입사동기 모임 때였다. 동기라 해봤자, 처음엔 2명이서 만나고 했던 것을 지금은 4명으로 하고 있는데 그마저 나를 포함해 다들 퇴직을 했기에 모임 자체가 좀 맥 빠진 느낌이다. 나는 작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고 만 구는 기간제로 다시 옛날 직장에 다니고 있고, 남이는 일찍 명퇴했고, 창이는 놀고 있다.

만 구가 말했다. “진일이가 죽었대동기모임에서 만구 말에 모두 충격을 받았다. “아니, 어떻게 죽었어?” 다들 진일이 죽음에 대해 놀라워했다. 그동안 정년퇴직하고 기간제로 다시 근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갑자기 죽었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5급 사무관으로 퇴직했고 30년 넘게 근무로 연금 및 퇴직금이 만만치 않은데 죽어서 안타깝다는 표정이 동기들 대부분 어둡게 깔려있었다.

그러나 사람 목숨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명재천이라고 하늘만이 알 수가 있을까?’ 내가 그 말을 받았다. “죽음에 대한 얘기를 농담이나 장난조로 말하지 마라! 웅길이 형님이 말했잖아? 땡감이 먼저 떨어질지, 먹감이 먼저 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나 역시 죽기 싫고 생각하기도 싫은 거고, 죽음은 그래서 모두가 두려운 것 같다. ‘그러나 태어나는 것처럼 죽는 것도 너무나 분명하고 당연한 것인데, 태어났을 때 축복이고 생일 축하도 해주는데 왜, 죽는 것은 모두들 피하고 싶은 걸까. 60이 넘으면 염라대왕께 우리들 명단 빠짐없이 다 제출하고 부르면 피할 수 없이 가야지, 요즘은 어른이 없고 노인네들만 바글바글 한다는 말도 이런 연유일까’만 구가 늘 종신제라고 함부로 말을 내뱉는 데 결국 진일이는 종신제의 첫 희생 주자로 되었단 말인가, 자신도 말은 그렇게 해 놓고는 어느새 자신이 닮은꼴이다 주로, 생각하기 싫은 얘기를 늘어놓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한때 친하고 즐거웠던 사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말을 함부로 해서 그동안 스트레스받는 것이 다반사였지만, 그때마다 그러려니 하며 넘어간 게 불찰이고 불편한 진실을 안고 여태까지 오게 되었다. 문제는 늘 함부로 말하는 만구 언동이 문제였다. 정비창의 거친 환경에서 묻어 나온 전력이라 이해는 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 문제다 어쨌든 진일이는 전에 병력이 있었고 그 병이 심화되고 죽음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 어쩌면 종신제가 맞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새장에서 갇혀 죽으면 새장을 나올 수 있듯이, 정비창에 들어가서 일을 죽을 때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명퇴든, 정년퇴직이든 정비창에 일을 했던 사람들은 정비창에서 나오면 사회 적응을 못한다. 그래서 정년퇴직을 해도 기간제로 다시 정비창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평생 일하다가 죽어 버린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 허무하다. 물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또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정비창이나 군부대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장 속에 갇혀 사육당한다고 느끼며 자유를 찾아 바깥세상을 동경한다. 새장에서 안락하게 모이만 먹고 배부르면 자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그렇게 산다. 그래도 기간제로 들어가지 않고 사회로 진출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추진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지금 내가 몸소 체험하고 있는 작가의 일은 좋아서 하고 일종의 취미생활이지만, 기분이 좋은 종신제라고나 할까. 직업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어쨌든 평생 죽을 때까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기간제 마저 65세까지 제한하고 있어 들어가기도 만만찮다.

젊은 세대도 취직하기 힘든 이 시대의 상황에서 정년 이후 직장을 구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현실이다. 정년을 정한 이 사회가 왜 고령화가 급속히 이루어지는지 명확해진다.

농민이나 어민 같은 일을 하는 유형의 사람들은 천직이라고 생각되지만, 그것이 과연 좋아서 하는 일인지, 먹고살기 위해 죽도록 일을 해야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종신제라 할지라도 옛날에는 죽도록 일만 하는 개념이었지만, 요즘은 재미와 의미를 더하는 직업을 찾고, 또 그런 일을 하는 추세다.

같은 고기를 잡아도 어민은 의무지만, 낚시꾼은 취미다. , 좋아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싫증 나는 법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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