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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포레스트 Jun 29. 2023

우리의 마지막 겨울-2

이제는 네가 없어진 곳에서 남은 내가 할 수 있는 일

친구가 죽었다.

내가 간 첫 번째 장례식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을 공간의 흐름으로 느꼈다.

영정사진 너머로는 친구의 미소가 너무도 환하여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다.

너무 사진 같아서. 사진이 맞아서. 실제 친구는 옆에서 왔냐? 하고 물어볼 것 같았다.


바로 어제까지 연락을 나누던 친구였다. 걱정이 있다며 어떡하냐며 나에게 돈을 빌리던 친구. 

집안에 일이 생겼는데 급하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많은 금액도 아니고 단돈 7만 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행운의 숫자가 누군가에게는 가장 급한 숫자였나 보다. 

나 또한 돈이 없어서 5만 원만 보내줬다. 그래도 친구는 고맙다며 빠르게 사라졌고

다음 날 돈 5만 원이 아니라 죽음으로 돌아왔다.


친구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평소에 대인관계가 넓은 편은 아니라 내부를 꽉 메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있었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방문객의 신발 사이로 내 것도 하나 더했다. 

아직까지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친구가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조차 알지 못해서

사실은 이게 너무 생생한 꿈 한 편을 꾸는 것만 같아서 그랬다. 

사진 앞으로 조심스레 다가가 절을 하였다. 자꾸만 머릿속에서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족 일이긴 한데 조금 급해서.’라고 말하며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은 너였는데.

원인이 가족일까 싶어서 상주 쪽을 바라보았다. 어머님, 아버님이 허탈한 눈으로 공중을 쳐다보시고

누군가에게 맞은 듯 얼굴에 얼룩덜룩한 피멍으로 가득한 오빠가 서있었다.

마치 코난에 빙의하듯 범인이 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부터 친구의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사람같이 사는 인간이 아니라고 했다. 집안에 짐승이 한 마리 산다고 했다. 주변에서 초록색 병 하나를 손에 쥐었다. 눈이 동그래지는 어머님의 얼굴을 얼핏 보았지만 모르는 척했다. 손에서 병을 놓지 않고 싶어 꼭 쥐고는 천천히 다가갔다. 아주 천천히 한 걸음씩.

다가가 고름으로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는 듯한 오빠의 머리 위로 있는 힘껏 내리 쳤다.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조문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머리는 좌우로 구르다가 괴성을 지르며

펄떡이다 이내 잠잠해졌다. 바닥은 온통 피투성이다. 너의 사진 위에는 작은 핏자국이 튀었다.

119를 부르는 소리, 나를 그에게서 떼어내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손을 뿌리치고 친구의

영정사진 앞에 가 하아- 하는 바람으로 뿌예진 액정 위를 닦았다. 피와 함께 너의 걱정이 사라지라고.

검정 티 위에 빨간색을 닦았더니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이 핏자국처럼 너도 나에게 없는 사람이 될까, 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없는 사람이 될까 무서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멍해진 사람들의 표정을 보았다. 

친구의 사진을 그대로 내려두고 그녀의 부모님을 바라봤다. 얼빠진 표정을 하고 계셨다.

그들에게 다가가 한 마디를 건넸다. “이 지경까지, 애 혼자 해결하게 두신 거예요?”

말을 하곤 천천히 신발을 신고 나왔다. 친구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우리 부모님은 항상 방관자셨어.’. 나는 방관자가 참 싫다. 중립기어라는 말도 싫다.

내리막에 차를 세우고 중립으로 기어를 변경하면 굴러 내려간다. 그들도 그랬다. 중립기어를 박는다는 인간들은 죄다 가해자 편으로 굴러갔다. 방관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직접 나서지도 않고 멀리서 시늉만 하는 어른들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보았다. 그들의 시선이 우리를 말라가게 한다. 존재만 하기에 우리가 행동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면서 괴롭다고 말하는 우리에게 가해자 앞으로 가 시늉만 한다. 나쁜 소리를 하기 싫으면, 나쁜 사람이 되기 싫으면 그냥 아예 빠졌으면 좋겠는데 자꾸만 앞을 막고 뒤에서는 악마들과 손을 잡곤 하였다. 


장례식 밖을 나와 한참을 걸었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고개를 올렸을 때 작은 포장마차 하나가 있었다. 

추운 겨울날이면 꼭 어묵을 찾아서 3개씩 해치우던 너의 모습이 겹쳐졌다. 마치 당장이라도 저기로 달려가서 어묵을 먹자고 할 것 같은 네가 나의 기억 속에서 맴돌았다.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눈물을 닦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포장마차로 다가갔다. 우는 내 모습을 본 사장님은 조금 놀란 기색이셨지만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는 표정으로 덤덤하게 어묵꼬치를 쥐어줬다. 

성적에 대한 걱정으로 힘들어할 때 너도 종종 내 손에 꼬치를 들려주었는데. 하는 생각과 동시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괴성과 눈물로 거리를 채웠다. 네가 너무도 보고 싶었다. 너와 먹던 어묵이 그리웠다.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경찰들이 우리 집으로 달려왔다. 

다행히 집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문을 돌려서 나갔다. 경찰들은 다급히 내 손에 수갑을 채웠고

이동하자고 했다. 나는 잠시만 쪽지를 쓰고 싶다고 부탁했다. 손목에 수갑을 두른 채로 양 옆에 경찰을 끼고

수납장 앞에 섰다. 가장 아껴두었던 메모지를 꺼내서 한 마디 적었다.

‘엄마. 나 경찰서에 갈 거야. 조금은 놀라겠지만 그래도 잘 다녀올게.’

엄마가 들어오면 늘 가방을 내려두는 장소가 있다. 그곳에 잘 보이도록 메모지를 내려두고

경찰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경찰이 왜 때렸냐고 물었다. 괴물이라 때렸다고 말했다. 장난치지 말고 대답을 똑바로 하라 했다.

친구의 목숨을 가져간 새끼가 괴물이 아니면 뭐냐고 대답했다. 잠시 당황한 기색이었다.

이내 경찰은 사건 기록을 둘러보고 친구는 자살로 떠난 거라고 했다.

자살을 했다는 것은 누군가 내 친구를 괴롭혀서 스스로 떠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목숨을 스스로 끊기까지는 과정이 있고 그 과정에는 결과가 있다고. 목숨만 본인이 먼저 끊었을 뿐 사실 가해자는 또렷하게 있는데. 그게 단순 자살로 끝나도 되는 거냐고. 친구는 어제 나에게 가족 일이 있어서 돈을 빌려간 게 마지막이라며 발악하듯이 말들을 토해냈다. 한 단어씩 꼭꼭 씹으며. 친구가 사회에 하고 싶었을 목소리를 대신 내주었다. 괴물새끼도 잡지 못하는 너네가 경찰은 맞아?라고 물었고 취조는 더욱 길어졌다.


친구의 부모님이 합의를 해주셨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양심이라는 것이 생겼나 보다. 본인들도 친구가 왜 죽었는지 짐작이 가니까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경찰서 밖을 나왔다. 눈이 빨개진 엄마가 경찰서 앞에 서있었다. 아무런 표정을 짓지 못했다.

친구는 떠났는데, 가해자라는 심적 증거는 전부 있는데. 잡지 못했다. 


힘없이 엄마에게 다가가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엄마. 이제 시아 우리 집 못 온대. 이제는… 집에 놀러 올 시아가. 세상에 없대.”


두 번째로 흘린 눈물들이었다. 오랜만에 엄마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정말 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낮이었던 시간이 저녁이 될 때까지. 온몸에 있는 물들이 전부 눈물로 빠져나갈 때까지 울었다.

이 물들이 모여서 너를 다시 만들 순 없을까. 내가 너의 몸에 있는 피들만큼 울어줄게. 세상에서 다시 살아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엄마의 품에서 4시간을 내리 울던 나는 탈진해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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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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