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은 공항에 발 딛는 순간이 아니라 여행을 준비하고 짐을 꾸릴 때부터가 아닐까 싶다. 나의 문제는 그 준비의 시간이 너무 길다는 점이다. 여행갈 때마다 짐을 꾸릴 팩킹 리스트와 미리 사갈 쇼핑 리스트를 적어놓는 편인데 1년 치 짐을 담으려니 1박 2일이나 걸렸다. 그러다보니 짐을 쌀 때 꼭 필요한 그것, 여행에 대한 설렘은 들어갈 틈이 없었다. 뉴질랜드는 옷이나 공산품 등이 비싸다는 글을 보고 –한국에서는 자주 사지도 않던- 옷이며 화장품 등을 일주일 넘게 온오프라인에서 사대고 있었다.
곧 떠나게 될 한국에는 왜 이리 정리할 것들이 많은지. 혹시 노트북이 고장 날까 싶어 중요한 자료를 여러 개의 USB로 분산해서 옮기는 데만 7시간이 걸렸다. 엄마, 아빠 휴대폰도 새로 교체해드리고 앱을 설치하느라 골머리가 아팠다. 괜히 나 없는 동안 엄마, 아빠가 휴대폰 대리점에서 기기를 교체하다가 덤터기를 쓸까봐 약 2주를 인터넷 검색으로 보냈다. 수많은 기기와 요금제, 통신사 옵션 등을 고려하려니 머리에 쥐가 나고 있었다. 그 때는 몰랐다. 휴대폰을 조금 더 비싸게 살지언정 이것저것 비교하느라 겪는 스트레스와 시간적인 손해가 더 비싸다는 것을.
사실 놔두고 가면 어떻게든 버려지고 사라질 고민인데도 손에 잡힐 때는 쉽게 떼버리지 못하는 미련은 마치 살면서 온갖 걱정을 다 매달고 다니던 모습과도 다를 게 없었다. 이 지지리 궁상도 한국에서 끝내야 했다. 버릴 건 버리고, 떠날 땐 꼬리가 길지 않게!
뉴질랜드에서는 계획 때문에 압박을 받고 싶지 않아서 숙소도 이틀만 예약을 해놓았다. 얼마나 있을지, 어느 지역에 머물 지도 정한 게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 한국에 돌아올지도 몰라서 한국에서 오클랜드로 가는 편도 항공권만 끊어 놓았다.
그래놓고 사람 일이란 게 어찌될지 몰라, 막상 두고 가면 아쉽지 않을까 싶어 일 년치 기초 화장품과 생리대까지 미리 사재기해서 기내용 짐 가방 하나에 꾸역꾸역 채워 넣었다. 그리고 도착하면 몇 달간은 겨울인데 뉴질랜드가 추워봤자 얼마나 추울 거야, 하는 오만한 생각으로 아직 대여섯 달은 남은 여름옷을 왕창 챙겨왔다. 짐이 수화물 허용기준인 56kg을 넘을까 봐 새벽까지 거의 12시간을 캐리어와 사투를 벌였다. 내 몸무게보다도 많이 나가는 짐들을 어떻게 혼자서 끌고 다닐 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막상 외국에 가면 화장도 안하고, 덥거나 추워서 제대로 챙겨 입지도 않았으면서 항상 짐 욕심이 많았다. 지난 십년 동안 열 번도 넘는 여행을 다닐 때마다 그렇게 짐짝에 휘둘리고도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린다.
비자가 승인된 이후 출국까지 2주 정도가 남았는데 만약 1시간만이라도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겁다고 뺐던 패딩과 장갑, 목도리를 챙기고, 얇다고 돌돌 말아서 왕창 집어넣었던 여름 원피스들은 적당히 뺄 것이다. 그래도 정중한 자리에 초대받을 수도 있으니 정장용 옷과 구두 한 켤레 정도는 챙기는 게 좋겠지. 새로 산 바디워시나 치약은 엄마 아빠 쓰라고 집에 두고 오고,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선물이나 줄 걸……. 출국 전 날에 -아무리 짜증이 폭발했기로서니- 엄마 아빠한테 화내지 말고, 별 거 아닌 걸로 싸웠던 친구랑 화해라도 하고 올 걸 그랬다.
어쩌면 철저히 준비할 줄 아는 꼼꼼함보다는 일단 새로운 환경을 부딪혀가며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진짜 고수인데 여전히 내 시계는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향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빼먹고 와서 아쉬운 마음이 들까봐 비자 신청 전부터 출국 당일 날까지도 한국에서 정리할 것들과 뉴질랜드에서 필요로 하는 짐을 정리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정작 정리가 필요한 것은 내 마음이었는데 말이다.
누굴 만날지도 모르면서 외국인 친구 사귀면 주려고 샀던 캐릭터 스프레이는 -당일 아침에 항공사에 전화해서 물어볼 때까지만 해도 허용된다더니- 막상 수화물 보낼 때 반입불가로 가방에서 빼야했다. 캐리어를 하나 더 사기 싫어서 쌀 봉투로 궁상맞게 끌고 갔던 짐짝은 결국 공항에서 만 원씩이나 하는 택배상자를 사서 다시 짐 정리를 하느라 한 시간이 넘게 진땀을 뺐다. 언제나 그랬듯이 공항에서는 허둥지둥 짐짝에 이끌려 다니기 바빴다. 무식하게 주워 담던 짐 중에는 뉴질랜드 햇빛은커녕 습도도 구경 못한 불쌍한 녀석들도 꽤 있었다.
막상 현지에 와보니 한인슈퍼나 일반 대형마트는 한국 편의점보다도 싼 편이였고, 중고 옷을 파는 세컨드 핸드 숍이 워낙 많아서 여름옷은 꾸준히 사다 날랐다.
사실 한국을 떠나기로 하면서 제일 기대했던 시간은 외국에서의 새로운 시작보다 후련하게 버리고 가는 한국에서의 비움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언제나 앞서나가는 내 고장 난 시계는 한국에 두고 온 것들을 그리워할 모습부터 걱정하며 이것도 저것도 챙겨가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렇게 무겁게 들고 왔던 짐들은 뉴질랜드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데 방해만 되었다. 비상용이랍시고 챙겨간 한국라면은 -현지 대형마트에서 2불이면 작은 라면 5봉지는 살 수 있음에도- 짐정리를 할 때마다 무참히 부셔지고 있었다. 마치 나의 준비성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음을 증명하듯이.
한국에서 이 원수 같은 짐짝을 나름 정리하고 챙겨왔다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이런 미련하고 궁상맞은 마음자체도 정리해서 버릴 건 버리고 더 멋진 삼십 대가 되어서 돌아오길 다짐했다. 어차피 어떤 계획도 정해진 게 없는 여행이니 잃을 것도 없고, 무언가 얻게 되면 그저 감사한 거다.
정글에서는 전용 칼만 쓸 줄 아는 셰프보다 무인도에 떨어진 나무작살로도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병만족장이 되어야한다. 예상치 못하게 비오면 맞아주고 필요한 게 있으면 두드리며 찾으면 된다. 그러니 앞으로 짐은 좀 줄이자?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