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차니스트 정리법

정리를 책으로 배운 정리 귀차니스트의 정리 이야기

by 호접몽


나는 정리 귀차니스트다. 아, 변명같지만 오해가 있을까봐 밝혀두고 시작해야겠다. 정리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 하고 싶지 않은 귀차니스트라는 말은 아니다. 정리를 위해 돈을 쓰려면 그 돈으로 책이나 다른 물건을 사고 싶고, 정리를 할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내가 정리에 손도 한번 안 대본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책을 읽으며 정리에 돌입했고,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해소는 되었다. 우리집이 손도 못댈 정도로 먼지와 물건들에 점령당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책 덕분이다. 정리를 책으로 배운 귀차니스트 정리 초보의 '정리와 책' 이야기를 오늘부터 나누려고 한다.


요즘 텔레비전 프로그램 <신박한 정리>를 즐겨 보고 있다. 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변화된 환경으로 감탄하며 새생명을 얻은 듯한 출연자들의 표정을 보는 재미도 한몫한다. 정리 방법도 간단하다. 일단 있는 물건들을 싹 다 꺼내서 버릴 것을 버린 다음에 공간을 재구성하고, 품목별로 정리하면 끝이다. 그렇게 재탄생한 공간을 보며 대리만족을 경험한다.


하지만 방송이 끝난 후 내 공간을 둘러보면 한숨만 더한다. 물건을 꺼내고 버리고 분류하는 작업부터 막힌다. 그런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날을 잡아야 하고 상당한 시간을 저당잡혀야 한다. 하루 아침에 될 일이 아니어서 지레 포기한다.


그렇다고 방치하자니 한이 없다. '나중에 시간 나면' 이라는 것은 이번 생에 보장받을 수 없는 시간이다. 결코 오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니 나에게 맞는 정리법을 활용하여 내 방식대로 내 걸음에 맞춰 해나가야 한다. 내 방식대로 정리하기 위해 그동안 읽은 책들을 떠올려본다.


나에게는 얼마 전 읽은 책『방이 더 깨끗해졌어요』가 정리를 시작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미니멀리즘은 정리에 매일같이 힘쓰는 깔끔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청소는 다양한 세제를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못할 법은 없다. 귀차니스트도 얼마든지 자신의 속도로 정리와 청소를 해나갈 수 있다.


마음이야 당장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 싶지만, 자꾸만 미루게 되는 귀차니스트로서! 다른 사람에게 혹은 정리업체에 도움을 받기보다는 결국 스스로 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서! 평소 활동에서 영역을 조금만 넓혀서 청소를 하자고 결심하고 조금씩 해보기로 했다. 바로 이 말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


"잔뜩 어질러진 뒤 정리하는 것보다는 지금 3분 동안 후다닥 치우는 게 더 낫다!"
- 『방이 더 깨끗해졌어요!』93쪽


물론 이것은 원하는 만큼 정리를 하는 데에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조차 안 한다면 점점 감당할 수 없는 환경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니 내 속도로 조금만 노력을 더해보기로 한다.


생각해보니 지금껏 정리 관련 책을 읽고 어느 정도 도움을 받았다. 읽고 서평을 쓰면서 '이거다' 생각했던 노하우들이 있다. 물론 책을 읽을 때에는 신이 나서 몸을 들썩이며 정리에 돌입하기도 했다. 이제는 새로운 책을 갈망하기보다는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있는 그 책들을 다시 떠올릴 때다. 지금껏 읽은 책들을 다시 살펴보며 조금씩이라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하루를 통째로 저당잡히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15분에서 30분 정도의 시간을 들이는 꾸준함이니 말이다.



자신을 망칠 정도로 늘어난 물건. 에너지와 시간을 빨아들이는 괴물이 된 물건. 도구가 아니라 주인 행세를 하는 물건. 악착같이 일해서 평생을 바치게 하는 물건. 물건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다투는 이상한 현상마저 일어난다. 사실 물건 자체는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다. 물건의 가치가 자신과 동등해지고 심지어는 자신의 주인이 되어버리는 현상에 대해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물건은 당연히 내가 아니며 내 주인도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단지 도구일 뿐이다. 누군가의 시선을 위해 존재하는 물건이 아닌,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만 소유하는 것이 이런 현상을 막는 길이다.
_『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93쪽


주변을 살펴보니 어느덧 잡동사니가 늘고 있다. 정리를 통해 소중한 물건은 더 아끼고, 잡동사니는 버리든 나누든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한다. 물건의 입장에서도 먼지쌓여 구석에서 누구의 손길도 받지 않는 쓸쓸함보다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가는 편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삶의 여백을 위해 조금씩만 더 신경쓰며 정리에 돌입하기로 결심했다. 세상에 가장 힘든 일은 마음먹는 일이라고 하니 그 어려운 것을 드디어 해냈다. 이제 실행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정리에 일가견이 전혀 없어도, 정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삶이 바뀔 수 있다. 나만의 속도로 해내는 이야기를 오늘부터 풀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