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다른 여행을 하고 싶으면서도 남들 다 가는 곳에 안 가면 무언가 빼먹은 듯 아쉽다. 파리에 가면 에펠탑을 봐야 하고, 인도에 가면 타지마할에 가봐야 한다. 평소에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취미가 전혀 없었음에도 여행할 때 그곳에 안 가면 뭔가 허전하다. 사실 나는 별로 아쉽지 않다고 해도 주변에서 상당히 아쉬워들 한다. "피렌체까지 가서 우피치 미술관도 안 간 거야?"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에는 "그러게, 가볼 걸 그랬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특별한 인생을 살고 싶으면서 '평범'하게 남들처럼만, 튀지 않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 그 '평범' 혹은 '평균'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사람을 버겁게 하는 줄 알면서도, 이상하게 따라가게 된다. 그러면서 나중에야 내가 원하던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곤 한다.
『이기적 유전자 사용 매뉴얼』이라는 책에 보면 '평균이데올로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거기엔 이미 부모가 가르쳐주는 삶의 방식이 기다리고 있다. 철들기도 전에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에 맞춰 살아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대학은 들어가야 하고,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마땅히 사회가 기대하는 이력도 쌓아야 한다. 입사를 해서 몇 년이 지날 때쯤이면 당연히 진급도 해야 한다. 그래서 늦어도 나이 30이 되면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했으니 아이는 가져야 한다. 40세가 되면 최소한 몇 평쯤 되는 아파트에 살아야 하고, 골프도 쳐야 한다. 50이 되면 중형차를 타야 폼이 나고, 노후를 위해 얼마는 벌어놓아야 한다. 이렇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기준에 맞추어 살고 있지 않은가. 이른바 평균이데올로기다. 평균인이 되면 사회에 적응하여 살기에 유리하다는 뜻일게다.
『이기적 유전자 사용 매뉴얼』 156쪽
평범하게, 남들처럼, 평균적으로, 그냥 다들 그런 것처럼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다. 그냥 보이지 않는 기준이고 환상일 뿐이다. 희망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이상적인 여행이란 이왕 떠나는 여행이니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인상적인 명소에는 다 가보고, 맛집이란 곳 몇 군데 찾아서 가보면 와우~ 음식을 맛봤는데 이건 인간의 음식이 아닌 것이다. 너무 맛있어서 감탄한다. 역시 최고라는 생각이 들며 여행 오기 잘했다고 한다. 게다가 숙소는 다니고자 하는 명소 근처에 있으면서 시설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다.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나의 체력은 하루 종일 신기한 것을 보고 다니며 감탄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렇게 다닌 곳은 죄다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서 길이길이 기억된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그렇지 않다. 그런 사람이 있기는 할까? 나는 욕심내다가 더 힘든 경험은 있다.
내가 남들이 아니니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여행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았다. 에너지가 바닥나서 질질 끌려다니 듯이 꾸벅꾸벅 졸면서 다녔고, 어느 장소는 그렇게 좋다는 곳이지만 아무런 감흥이 없고 귀찮기까지 했다. 탈이 나서 며칠을 꼼짝 않고 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의 자발적인 여행이 아니라 그냥 패키지여행을 따라갔을 때에 더 무기력했던 것 같다. 몇 군데 덜 가도 상관없는데, 남들 다 보는 거라도 해도 안 봐도 상관없는데…. 따라다니기 벅찼다. 새벽부터 밤까지 행군! 그 무게를 견딜 자가 해야 하는 여행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역시나 귀차니스트인가 보다.
『천 번의 여행에서 찾은 수상한 유럽』에 보면 실험적 관광 이야기가 나온다.
'실험적 관광' 이것은 1990년 스트라스부르 출신의 프랑스인 조엘 앙리가 창안한 것이다. 지금 50대인 앙리는 유명 도시에서 보내는 판에 박힌 휴가와 클럽 메드 같은 리조트에서 보내는 주말이 지겨워져 '실험적 관광 연구소'라는 단체를 창립했다. 그 홈페이지에서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처럼 주사위 굴리기 식으로 짜는 휴가 계획법을 주창하고 있다. 그의 실험적 관광은 말 그대로 각 숫자에 목적지를 배정하고 주사위를 굴리는 방식에서부터 눈가리개를 하고 친구와 함께 익숙한 도시 중심부를 여행하며 감각을 배제하고 그곳을 경험하는 방식에 이른다. 또 견공 가이드도 있다. 개를 빌려 그 녀석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 보는 것이다.
다른 추천 여행 방법으로는 에로 여행과 향수 여행이 있다. 에로 여행은 연인과 함께 주말에 여행을 떠나되 각자 다른 곳에서 출발하여 사랑의 직감이 서로를 같은 장소로 이끌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고, 향수 여행은 제2차 세계대전 전에 출간된 베데커 여행 안내서를 가지고 떠나는 것이다. 또 기차나 지하철의 종착지로 떠나는 방법도 있다.
『천 번의 여행에서 찾은 수상한 유럽』 89~90쪽
사실 내 마음이 더 끌리는 것은 이런 여행이다. 그러면서도 막상 아무 정보도 없는 곳에 가는 건 조금 두렵기도 하다. 평범하게, 또는 평범하지 않게 여행하는 나만의 방법은 적절히 갖가지 방법들을 혼합시키는 것이다. 계획대로 가다가 어느 날 문득 즉흥 여행지로 발길을 돌리기도 하고, '나도 가봤다'라는 도장 찍기용 미술관 방문도 했다가 유명한 작품이 아닌 구석에 있는 작품에 괜히 눈길을 주는 그런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여행을 꿈꾼다. 물론 지금은 여행을 꿈꾸기엔 너무 많이 기다려야 가능할지 말지 모르는 상황이니, 오늘 점심 메뉴나 주사위를 굴려서 결정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