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을 하면서 처음에는 내가 박물관 미술관에 별 관심도 없으면서 다니는 것이 의미 없다는 생각에 가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루브르 박물관을 대하며 언젠가 한 번은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몇 번을 통과하고는 지난 여행에 '루브르 박물관'을 일정에 넣었고, 나는 '루브르 박물관 가봤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가봤다는 것 말고, 민망해서 비밀리에 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 바로 거기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이다. 말 안 하면 아무도 모르는데.
그 해에는 원래 전혀 여행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문득 파리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냥 한번 비행기 티켓을 검색해보았는데, 때마침 1인당 왕복 50만 원도 안 되는 저렴한 티켓이 있었고, 충동적으로 예약을 눌러버렸고, 그다음에는 부랴부랴 여행 준비 모드로 바뀌는 것, 그리고 마음껏 설레며 하나씩 정보를 모으는 것 말이다.
그 해에 그랬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남들이 좋다는 편집숍에도 구경 가고, 미루고 미루던 아니 사실 별 관심 없었던 루브르 박물관도 가보기로 했다. 안 해보던 거 다 하기로 하면서 시티투어버스도 타려고 했는데, 그건 동생이 하도 비웃길래 관뒀다. 하긴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나도 동생이 서귀포에 와서 시티투어버스 탄다고 하면 엄청 비웃을 거다. 뭐할라고 그런 거 타냐면서 말이다. 현실남매다.
파리 여행을 하면서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하염없이 감상에 젖어 있다가 오려고 했다. 모르는 소리였다. 일단 그곳은 엄~~~청 넓었다. 그리고 그 방대한 장소에 엄청난 명화들이 가득하다.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못하고 돌아다녀서 나중에는 제발 이곳을 탈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출구를 찾았던 기억이 난다. 너무 넓은 데다가 죄다 명화이니 오히려 흥미가 반감했던 곳이 루브르 박물관이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을 모두 꼼꼼히 본다면 적어도 3~5일이 걸린다고 한다. 중간중간 쉴 수 있는 공간이 있긴 하지만, 그걸로 체력이 회복되지는 않는다. 마라톤 하는 사람이 초반에 전력질주하다가 에너지 다 뽑아버리 듯, 하루 종일 시간을 다 빼두었는데도 체력이 한정되니 나중에는 감흥이 떨어졌다.
그래도 그곳에서 가장 멀쩡한 때에 접했던 작품이 바로 '사모트라케의 니케'다. 가장 먼저 본 '아는' 작품이었다. 가장 먼저 사람들의 무리를 발견했던 작품이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유명한 작품을 알아보는 방법은 그 주변에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에 좌우된다. 주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갖가지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다? 그럼 유명한 작품이다. 넓은 공간에서 유독 사람들이 몰려있다? 거기로 가보면 '아, 나도 이거 알아'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사모트라케의 니케
1863년 에게 해의 사모 트라케 섬에서 발견되었다. 머리 부분과 양 팔이 없지만 넘치는 힘과 약동이 느껴지는 헬레니즘 조각의 걸작
(『저스트고 프랑스』 중에서)
다음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유명한 작품을 손꼽으라면 바로 떠오르는 그 작품 <모나리자>이다. 별로 안 궁금하다고 해도 결국에 그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모나리자가 어디에 있는지 친절하게 안내 표지판에 사진까지 얹어서 여러 차례 안내해 주니 '여기까지 왔는데 모나리자는 보고 가야지!'라는 생각을 심어준다.
실제 작품 앞에 가면 감상하기가 정말 힘들다. 워낙 작품 크기가 작은 데다가 작품 앞에 다가갈 수 없도록 하니 그 앞에 가기도 힘들지만, 방탄유리로 보호되어 있어서 직접 보든 사진으로 보든 감흥이 떨어진다. 루브르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지만 감상이 잘 안된다. 유리에 반사되어서 각도를 달리하며 기웃기웃거리면서 보아야 한다.
다른 작품들도 많이 보았지만 오늘은 유명한 두 작품만 딱 떠올려보고 마무리해야겠다. 처음에는 책에서 본 명작들의 위치를 파악해놓고 그곳 위주로 돌아다니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워낙 알려지지 않았지만 눈길을 사로잡는 명작들도 사방에 가득하니 말이다. 그러니 지도는 뒷전으로 미뤄놓고 작품 감상에 집중하다 보니 결국 길을 잃고 말았다. 신나서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문득 나는 누구인지, 여기는 어디인지, 혼란스러운 상황이 온다. 비인기 구역은 누구 하나 붙잡고 길을 물어볼 사람이 보이지 않았기에 더 막막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열심히 걷고 걸었는데 그 부근에 사람이 없으니 출구를 물어볼 수도 없고,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서 아무 생각이 안 들고 그저 눈앞에 출구가 딱 나타나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겨우 찾아낸 출구 앞에서 사진을 찍고 길을 나섰다. 루브르 박물관에 관한 나의 생각은 자꾸 바뀐다. 그 당시에는 다시는 안 가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힘든 것은 잊고 또다시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급 피로해지는 것은 무얼까. 다음에 갈지 말지는 그때의 기분에 달렸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그저 마음껏 과거의 시간을 추억한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길을 잃고 피곤해서 패잔병처럼 겨우겨우 숙소로 지친 몸을 끌고 돌아왔던 흑역사를 떠올리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