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소매치기

by 호접몽


그 해 가을, 파리 여행은 급작스레 결정했다. 전혀 생각지 않고 지내다가 뜬금없이 결정하고는 갑자기 바빠졌다. 이번에는 지난번에 안 가고 패스한 곳 위주로 가봐야지, 가서 크루아상은 살찔까 봐 걱정하지 말고 일단 실컷 먹고 와야지, 생각이 많아졌다.



다시 파리에 간다면, 또 그때처럼 설렐 것이다. 프랑스에 다시 간다면? 다이어트는 일단 접어두고 달콤한 디저트를 실컷 먹을 것이다. 미술관에 가면 바쁘게 행군하며 결국에 아무 기억 없이 패잔병으로 돌아올 것이 아니라, 어차피 다 못 볼 거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 찜해두고 그 앞에서 하염없이 감상하다가 올 것이다.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서 모네의 <수련>은 적어도 두 번은 방문해서 감상할 것이다. 컵, 볼펜, 키링 등 사소하지만 일상에서 매일 사용하는 것 위주로 기념품을 사 올 것이다. 또 뭐가 있을까?



그런데 이렇게만 적어놓으면 파리가 굉장히 깔끔하고 낭만적이기만 할 듯한데, 사실 나에게 파리의 첫인상은 충격적이었다. 프랑스를 솔직 담백하게 들려주는 여행 에세이 『프랑스 한걸음 가까이』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호텔에 짐을 풀고 거리에 나가 멋진 노상 카페에 자리를 잡는 순간 바로 누구나 꿈꾸는 여행지에서의 로맨스라도 시작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지하철의 악취와 오물, 거리의 개똥과 파리지앵의 불친절함에 놀라게 된다. 오랫동안 파리라는 이름이 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은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일종의 정신 질환을 겪기도 하는데, 이것을 파리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프랑스 한걸음 가까이』 17쪽





처음 파리에 갔을 때 느꼈던 것이 '파리 신드롬'이었구나,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고 그런 거지만, 처음 파리에 갔을 때에는 파리에 대해 상상했던 것이 와장창 깨지면서 서운한 감정마저 느껴졌다. 어렸을 때 "외국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어?"라며 지저분한 길거리를 청소해야 한다느니 그런 말들을 했는데, 그곳은 한술 더 뜨면 떴지 깨끗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생각해 보니 그곳은 더럽고 위험한 여행지다.



'위험한'이라는 단어가 불쑥 떠오른 데에는 파리 지하철에서 만난 소매치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들뜬 마음으로 길을 나서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바스티유 지하철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통로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소매치기를 만났다. 엄마가 배낭을 메고 다니셨는데 나와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무언가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옆을 쳐다보던 그 순간, 말끔하게 생긴 10대 남녀가 배낭을 열고 고개를 배낭 속에 들이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놀라 소리도 안 나오고 '헉' 하고 있는데, 소매치기 두 사람은 열어놓은 배낭을 조금 닫아주고는 뒤로 돌아 걸어가버렸다. 뛰어서 도망간 것도 아니고 줄행랑을 친 것도 아니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걸어서 유유히 사라졌다. 그것도 가끔 뒤를 돌아서 흘끔흘끔 나를 쳐다보면서 말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배낭을 닫아주고 간 것을 친절하다고 해야 하나. 물건 간수를 잘못한 탓을 해야 하는 것일까. 여행 초반이라 잃은 것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지갑을 붙들어 매고 돌아다녔다. 귀국 후에 소매치기 걱정 없는 우리나라가 무척이나 편했다. 카페 테이블에 가방 정도는 두고 커피 가지러 가도 누가 가져가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그날 일을 동생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여기에서 소매치기가 흔하니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렇게 배낭을 메고 다니면 큰일 나니 그 안에 귀중품을 넣어가지고 다니면 안 된다는 것이다. 동생도 소매치기에게 가방을 한 번 털린 일이 있는데, 그 안에 들어있던 휴대용 티슈 한 통을 털어갔다며 조심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파리' 하면 '낭만' 아닌가. 그러면 길을 가다가 멋진 사람을 우연히 만나는 영화 같은 일 정도는 있어줘야 할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현실에서는, 지하철 타고 가다가 곳곳에서 몇 번 목격도 했듯이, 깔끔한 청소년들도, 멀끔한 중년 남성도, 일단은 조심해야 했다. 여행 중에 낭만은 영화에서나 있으라고 하고 현실은 조심, 또 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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