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베로나에는 '줄리엣의 집(카사 디 줄리에타)'이 있다. 입구는 평범한 건물들 사이에 있어서 쉽게 찾기는 힘들었다. 주소상으로는 맞는데 정말 거기가 맞은가? 혹시 잘못된 것 아닌가? 별별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약간의 미심쩍은 느낌이 든다면 거기가 맞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저기만 통과하면 찾아가던 그곳 '줄리엣의 집'이 나온다.
입구의 벽부터 낙서가 가득하다. 단순히 '누구누구 왔다 감' 그런 걸까, 아니면 오래전에 방문한 어떤 커플의 염원일까. 그들의 사랑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을까, 지긋지긋한 현실이 되어 있을까, 이미 각자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가서 흑역사로 남아있을까. 적어도 이곳에 있을 때에 이들의 마음은 진실이었겠지. 온갖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입구는 아주 평범하지만 일단 그곳에 들어서면 통로를 통과해야 한다. 통로가 있어서 현재와 과거를 연결해 주는 듯하다. 여기 벽에도 사람들의 사연은 가득하다. 어쩜 저렇게 빼곡하게 글을 담아놓았는지,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본다.
조금 걸어 나가다 보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세계 각국, 곳곳의 사연이 과거부터 이어져온 듯 다양한 사연들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새해를 맞이하여 특별 장식을 만든 것이다.
발코니에 얼굴을 내밀고 밑에서 누군가가 사진을 찍어주는 행렬이 줄을 잇는다. 잠깐 자리 비었을 때 빈 공간을 찍어두었다. 사람이 많을 때에는 비어있는 모습을 찍는 것도 순간 포착을 잘해야 했다. 그때 뭐 그렇게 악착같이 찍어두었는지 살짝 웃음이 난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찍으면 누가 뿅 나오고, 그러기를 몇 번,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 겨우 얻어낸 한 컷이었다. 뭔가 해냈다는 느낌으로 쟁취한 것인데 한참을 하드에 담아놓기만 하고 이제야 꺼내 들었다.
아, 발코니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해야겠다. 이 이야기는 모르는 게 나으려나? 로미오와 줄리엣이 실존했든 아니든, 우리 마음속에는 실존 인물이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으니 말이다. 장소도 물론이고.
이 발코니는, 로미오가 자신의 사랑을 털어놓는 순간 줄리엣이 서 있던 발코니라는 소문이 있지만 사실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살았다고 여겨지는 시대보다 몇 세기나 뒤에 이 집에 증축된 부분이다.
(출처)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줄리엣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 때문에 사람들은 줄을 지어 민망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줄리엣의 오른쪽 가슴이 꽤나 닳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스친 모습이다. 줄리엣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고 사진을 찍은 사람들의 소원은 이루어졌을까? 그렇다면 줄리엣의 가슴을 만져서일까, 간절한 바람 때문일까? 끝없는 질문이 이어진다.
거기까지가 첫날 줄리엣의 집에 가서 본 모습이었다. 그 다음날 또다시 그곳에 향했다. 목적지는 아니고 다른 곳에 가는 길에 살짝 들렀다가 가기로 했다. 한 번 더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냥 거기에 다시 가지는 말았어야 했다. 그 다음날 다시 가본 줄리엣의 집에는 전날까지 온갖 사연을 달고 있던 나무를 치워버렸던 것이다.
그 누구의 사랑이 가벼운 것은 없으련만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그들의 사연에 마음이 아팠다. 너무 극단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에 속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히 언젠가는 치워야 할 장식이었는데, 특별히 아쉬울 것도 없었는데 눈물이 다 났다. 그 모습을 보는 게 아니었다. 두 번째 그곳에 방문했을 때에 나는 황량함만 얻고 씁쓸하게 돌아 나왔다.
그것은 어쩌면 '평균에의 회귀' 혹은 '평균회귀' 현상 때문일 것이다.
랜덤한 요인으로 숫자가 변동하고 있는 경우, 평균치로부터 극단적으로 괴리된 숫자가 출현한 다음에 나오는 숫자는 평균적으로 그 전에 나왔던 숫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극단적인 숫자가 나올 확률보다 평균치에 가까운 숫자가 나올 확률이 항상 높다고 하는 '평균에의 회귀' 또는 '평균회귀'라 불리는 통계적 현상을 말한다.
『쉽게 따라하는 행동경제학』 55쪽
처음 갔을 때에는 '우와~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어?'라며 환상적으로 생각하던 곳도 그 기억을 가지고 두 번째 방문했다가는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급반전하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여기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실망하고 다시는 안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분명 아주 좋았던 기억으로 점수를 팍팍 줬던 곳인데, 다시 보니 '엥?'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때 줄리엣의 집은 왜 그런 느낌이었을까. 나무 장식을 치워서? 아니다.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어떤 이유로든 그 다음번에는 실망을 했을지도 모른다. 다르면 달라서, 같으면 별다를 것이 없어서. 어차피 그다음에는 평균치에 가까운 숫자가 나올 확률이 높은 법이니까.
사실 대부분의 여행지가 그랬다. 정말 좋았다며 다시 갔던 단수이도 처음과는 다른 느낌에 당황했고, 두 번째 파리에 방문했을 때에 파리는 나에게 첫 방문의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주었다. 어디까지나 인과관계가 아니라 평균회귀 현상이 관찰될 뿐인 경우이니, 어떤 여행지든 두 번의 방문으로 다시는 안 가야겠다고 결심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럴 때에는 다음번에 한 번 더 가보는 것도 괜찮겠다. 세 번째 방문에서는 '여기 뭐가 그렇게 싫었지?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아마 첫 번째와 두 번째에 못 보았던 것들이 눈에 띄며 좀 더 다른 시각으로 그곳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