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감상하겠다고 100일의 실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만 같은데, 벌써 D-6 일을 달리고 있다. 그동안 매일같이 시를 감상했다. 하루에 한 편씩만 감상하겠다고 시작했지만, 의욕이 넘쳐나서 서너 편은 보아야 직성이 풀린 때도 있었고, 한 편 겨우겨우 날짜 가기 전에 들춰본 기억도 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더 옛 책을 들춰보게 된다. 아주 오래전 책은 아니지만 적당히 무르익은 시를 말이다. 오늘은 그런 의미에서 신경림 시집 『쓰러진 자의 꿈』을 펼쳐보며 신경림의 「길」을 감상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길
-신경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다. '길' 하면 눈앞에 보이는 길만을 생각했는데, 이 시에서는 '내면의 길'을 함께 들여다보도록 짚어준다. 오늘은 '길'이 무엇인지, 내게 주어진 '길'에 대해 곰곰 생각에 잠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