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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Jun 15. 2021

상처에 관한 시 세 편

딱 100일만 매일 시를 감상하고자 결심한지 오늘로 99일. 살짝 게을러졌다. 요즘 들어 거의 하루가 끝나갈 무렵 부랴부랴 시를 감상하곤 한다. 그래도 빼먹지 않고 감상했다는 것 자체로 나를 토닥이며 위로해 준다. 그래 이 정도면 열심히 살고 있어,라고 말이다.



같은 책을 펼쳐들어도 때에 따라 보이는 게 다르다. 오늘은 지난 30년간 광화문글판에 오른 글들을 살펴보았는데, 문득 상처에 관한 시가 눈에 들어왔다. 인간 존재로 살아가는 한, 누구나 흔들리고 상처받고 눈물도 흘리며 살아내야 하는 시간이 있는 법이다. 오늘은 이 시들이 마음에 들어와 울컥한다. 나도 당신도, 우리 인생을 별처럼 아름답게 잘 살아내 보자 격려의 마음을 담아본다.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벌레 먹은 나뭇잎



-이생진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인간도 자연도, 그 어떤 생명체도 세상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결이 곱기만 한 삶을 살아갈 수는 없나 보다. 시를 읽으며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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