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00일만 매일 시를 감상하고자 결심한지 오늘로 99일. 살짝 게을러졌다. 요즘 들어 거의 하루가 끝나갈 무렵 부랴부랴 시를 감상하곤 한다. 그래도 빼먹지 않고 감상했다는 것 자체로 나를 토닥이며 위로해 준다. 그래 이 정도면 열심히 살고 있어,라고 말이다.
같은 책을 펼쳐들어도 때에 따라 보이는 게 다르다. 오늘은 지난 30년간 광화문글판에 오른 글들을 살펴보았는데, 문득 상처에 관한 시가 눈에 들어왔다. 인간 존재로 살아가는 한, 누구나 흔들리고 상처받고 눈물도 흘리며 살아내야 하는 시간이 있는 법이다. 오늘은 이 시들이 마음에 들어와 울컥한다. 나도 당신도, 우리 인생을 별처럼 아름답게 잘 살아내 보자 격려의 마음을 담아본다.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벌레 먹은 나뭇잎
-이생진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인간도 자연도, 그 어떤 생명체도 세상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결이 곱기만 한 삶을 살아갈 수는 없나 보다. 시를 읽으며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해보는 시간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