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모 선배가 식사 자리에서 너희들만 알고 있으라며 주식 종목을 추천해 준 일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눈을 번쩍이며 "저 정말 선배 믿고 투자해요~!"라며 약간의 으름장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정말로 투자를 했을지, 그 종목이 정말 올랐을지는 알 수 없다. 나도 주식에 관심이 전혀 없던 때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으니 말이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나의 귀에도 들려온 정보라면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있어서 정보로서의 효력이 떨어졌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너희만 알고 있어."라는 말에서 의심까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걸로 우리에게 특별히 이득을 볼 일은 없으니, 그냥 자신의 특별한 지식을 뽐내고 싶었던 치기 어린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한참 지난 지금에야 문득 그때 그 시절을 떠올려본다. 그 회사의 역사라든가 재무구조 등의 배경지식이 전혀 없이 '주식 이름'만을 이야기하던 그때를 생각하니 '여행지 추천'과 닮아있다.
예전에 인도 여행을 하면서 여행 중 만난 사람들에게 "좋았던 여행지가 어디였어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한 곳에 오래 머물다가 여행지를 변경하던 때여서 때로는 그들의 대답에서 나온 지명만을 목적지로 해서 가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그때 거기에서 무엇이 좋았는지 물어볼걸.' 하는 생각에 아쉬웠던 적이 있다. 나에게는 별 감흥이 없었기 때문이다. 알고 갔으면 달랐을지, 그렇더라도 같은 느낌이었을지는 미지수다.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보 로토의 '다르게 보기'의 과학 『그러므로 나는 의심한다』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답을 들으면 여러분은 깜짝 놀랄지 모르겠다.) 그 답은 바로 우리는 망상에 자주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의심한다』 167쪽
이 책에서 망상의 힘은 우리에게 상상을 하게 만들고, 정말로 놀라운 것은 상상을 통해 우리가 실제로 자신의 신경세포(그리고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고, 따라서 지각적 행동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차근히 생각에 잠기며 읽다 보면 내가 보던 우주가 달라진 느낌이어서 참신했다.
여행지에 대한 생각도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누구나 좋다는 여행지가 아닌, 나만의 여행지를 떠올릴 때에는 약간의 '망상'이 필요하다.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지 못하는데, 우리 뇌가 그렇게 진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만의 여행지는 나만의 상상과 추억으로 만들어낸 세계가 아닐까.
생각해 보면 누군가 나에게 "어디가 좋았어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아마 "다 좋았어요."라고 두루뭉술하게 답하고서 한참을 여행지에 대해 생각에 잠길 것이다. 문득 그때 내 질문이 끝나자마자 자신 있게 대답했던 그들의 마음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바로 전 여행지였거나, 혹시 '너도 한번 당해봐라'?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스쳐 지나갔던 어느 여행객들의 대답만은 내 기억에서 살아있다. 정말로 나에게 좋았던 여행지는 어디였을까. 기나긴 생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