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도전

by 호접몽


인도 다르질링에서 트레킹을 한 적이 있다. '귀차니스트가 트레킹?' 그렇다. 맞지 않은 조합이다. 그저 인생에서 딱 한 번 무모한 도전을 한 것이다. 산에 오르는 것도 아니고, 그냥 걷기 여행 정도라는 그 길이 '다르질링 티 트랙'이라는 것은 나중에 『내 생애 꼭 한 번 가봐야 할 걷기 여행』이라는 책에서 알게 되었다.



다르질링에서 머물던 숙소는 눈 쌓인 칸첸중가가 보이던 곳이었는데, 며칠 바라만 보다 보니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나의 체력과 장비로는 언감생심. 그 험난한 곳에 오르는 것은 절대 상상할 수 없었지만, 그 동네 여행사에서는 그러면 걸을 만한 길을 가보라고 추천해주었다. 거기보다는 훨씬 힘 안 들고, 그냥 동네 마실 정도의 아주 쉬운 길이라고 했다. 가는 길에 네팔로 국경도 살짝 넘어가 볼 수 있고 중간에 마을에서 차를 타고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장비도 렌트해준다고 하고, 학생이니 특별히 할인해주겠다는 립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결국 한 번 가보기로 했다.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마침 내일 출발하는 여행객들이 있는데 그들도 각자 신청한 것이니 합류해서 함께 출발하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다르질링에서 아침 일찍 자동차를 타고 마니반장 Maneybanjang으로 가서 시작했다. 같이 출발한 사람들이 영국인 여자 두 명, 그리고 키가 아주 큰 남자도 한 명 있었고, 또 다른 국적의 사람들도 있었다. 그곳에서 그동안 못 보던 풍경을 보면서 감탄하는 마음은 한 30분 정도? 길어야 한 시간 안에 끝났다. 그다음으로는 내 보폭으로는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서양인들의 체격에 벅찼다. 나도 큰 편이지만 서양인들에 비하면 축에도 못 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제일 작았고, 그들이 한 걸음 걸을 때에 나는 두세 걸음은 걸어야 비로소 따라잡을 수 있었으니, 거의 뛰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보폭이 다른 사람들과 맞춰 가자니 서로에게 힘들고 신경 쓰이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결국은 먼저들 가라고 하며 마이웨이 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일어난 일이다. 갈림길이 나타난 것이다. 이쯤에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감상하고 가야겠다.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갈림길 앞에서 나는 망설였다. 거기에 이정표가 없어서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지 정말 난감했다.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붙잡고 물어보았을 텐데, 아무도 없었다. 이 길도 맞는 것 같고, 저 길도 맞는 것 같아서 혼란스러웠다. 그중 한 길을 선택해서 한 40분가량 걸어갔다. '여기가 정말 맞을까?'라는 생각으로 걸어갔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다시 멈춰 서서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이미 이만큼 걸어왔는데 계속 갈까, 아니면 발길을 돌릴까. 결국 발길을 돌리는 것으로 선택했고, 그때 나의 결정은 나를 살렸다.



트레킹 다 끝나고 여행사에 가서 방명록을 읽다 보니, 거기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 밤새 고생한 사람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한국사람이었다. 한글로 욕이 적혀있었고, 밤새 버티다가 추워서 가지고 있던 책이랑 다이어리 찢어서 불태워서 체온을 유지했다는 글이다. 읽으면서 많이 놀랐다. 있던 간판이 사라진 것인지는 몰라도, 분명 헷갈릴 만한 길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던 그때의 그 기억을 떠올린다.



어쨌든 걸으면서 보았던 그곳 풍경이 경이로웠지만 나에게는 너무 버거운 길이었다. '우와~!'와 '으악'을 번갈아가며 걸어낸 길이었다. 우기였던 그때에 어쩔 수 없이 밟아야 하는 물과 중간중간 내리는 비로 발이 마를 날이 없었고, 언제 붙었는지 모를 거머리를 발가락에서 발견했을 때, 그 통통함에 너무 놀라 환장할 정도였던 그 순간들은 굳이 적어놓지 않아도 내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중간에 중도 포기해도 상관없을 길을 굳이 끝까지 걸어냈다. 오기로 걸어낸 그 길은 그냥 '해냈다'는 것 말고는 남는 것이 없었다. 몸과 마음이 소진되어버린 기억이다. 그 경험이 나에게 자양분이 된 것이 아니라, 아니라고 생각하면 재빨리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건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렇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이 일로 내가 얻은 인생 교훈이 꽤 된다. 길을 가다가 맞는 길이 아니면 지금까지 걸어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도 과감히 발길을 돌려야 한다. 이때는 물론 자신의 예감을 믿어야 한다. 또한 안 하던 일을 해 보는 게 때로는 용기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무모한 도전일 수 있다. 내 체력을 생각지 않고 안 하던 일을 했을 때 몸도 마음도 무리가 오는 법이다. 아찔했던 그때 그 도전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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