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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Jun 30. 2023

존버 정신, 신데렐라는 11시59분까지 파티를 즐겼을까

오늘만 버티자


컴퓨터 게임에 빠진 아이가 마지막 일분, 일초까지 탈탈 떨어 플레이를 한다. 곧 바람처럼 날라온 엄마가 등짝 스매싱을 날릴 텐데. 건너가야 할 다리에 부지직 금이 가서 몸을 날려야 할지 모르는데 남은 몇 초에 매달린다.


화장실에 가는 행위도 그렇다. 왜, 왜 끝까지 참을까. 몇 줄을 더 읽는다고, 한 줄을 더 쓴다고, 보던 영상을 정지한 후 다시 본다고 작은 키가 더 작아지는 것도 아닌데 굳이 부푼 아랫배를 부여잡고 땀을 찔찔 흘리는 것일까.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수문을 열고 방류하면 쾌감이 더해지는 걸까.


어릴 적 아랫목에서 하이틴 로맨스를 읽다가 살집 좋은 엉덩이가 붉게 데었다. 친정집에 전해내려오는 오랜 전설 중 하나이다. 그때 엄마는 나를 사정없이 때리면서 말씀하셨다,


"이 미련한 것아. 니 살 타는 것도 모르냐. 너를 어찌하면 좋냐."


나는 잘 탄 누룽지를 닮은 아랫목을 보았다. 누가 이렇게 알았나. 아랫목은 원래 그렇게 생긴 건 줄 알았다. 그저 점점 더 뜨거워지는 바닥에 엉덩이를 이리저리 들썩 거리며 끝까지 책을 읽었을 뿐이다.


시험 종료 직전이다. 검토를 마친 아이들이 엎드려 잔다. 갑자기 실낱같은 열정에 사로잡혀 번쩍 눈을 떴다. 찍다 만 문제 몇 개를 해결하고 눈에 띄는 문제 하나의 발목을 잡는다. 가장 답같이 생기지 않은 두 개를 소거하고, 엄선된 두 개를 남긴다. 출제자의 의도에 가장 부합하는 답은 무엇일지,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의 오디오를 재생한다. 교재의 구석구석을 머릿속으로 스캔한다.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종이 울렸다. 맨 뒷사람이 덜커덕 의자 소리를 내며 일어나 답안지를 거둔다. 재빨리 omr 카드에 칠한 답의 분포를 훑는다. 유난히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번호를 골라 마킹한다. 편파, 편향은 옳지 않으니까. 골고루 골고루.


저녁 식사를 하고 뭉그적거리던 누군가가 늦은 시간 대중목욕탕에 간다면 그건 꾸물대는 날씨에 온몸이 찌뿌둥하고 삭신이 쑤신다는 뜻이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뭉친 근육을 수축, 이완하고 여기저기 달라붙은 고민의 보풀도 물에 불려 떼어내고 싶은데, 그건 그쪽 사정이다. 진작 오던가. 하루치 일을 끝내고 싶은 목욕탕 아주머니가 부지런히 대야와 플라스틱 바가지를 쌓고 미끌미끌한 바닥을 거친 나일론 빗자루로 빡빡 문지른다. 빨리 나가라는 소리다. 절박하다. 속도를 내자. 아주머니가 욕탕의 물마개를 뺀다. 소용돌이가 거세진다.


12시 정각, 마법에서 벗어나는 신데렐라는 11시 59분까지 댄스, 댄스파티를 즐겼을까. 누더기 차림의 초라한 모습으로 바뀌기 직전, 가까스로 파티장에서 빠져나왔을까. 음악이 흐르고 멋진 왕자님이 있는 곳에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버텼을까. 하락장이 올 때까지 버티는 존버 정신으로 부자들은 돈을 벌었을까.


결혼 행진곡이 울릴 때까지 단 한 번도 움찔하지 않고 한 남자의 옆자리를 지켰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지만 그건 내가 아니었다. 그래도 버텼기에 결혼을 하고 저리도 예쁜 자식들을 낳았을까. 쑥과 마늘로 100일은 너끈히 살 자신이 있는 나, 쑥은 맛있고 마늘은 몸에 좋다며 없어서 못 먹는다는 나. 쑥털래기, 쑥절편, 쑥국, 갈릭피자.버터갈릭새우, 마늘장아찌... 안다. 알아. 그런 게 아니라 오로지 쑥과 마늘뿐이라는 것을.


그저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는 힘으로 사는 나, 가끔, 사실은 아주 자주 깊이 지친다. 내 안에 부력이 있어 다시 떠오를 수 있을까. 둥둥. 전략은 이렇다. 일단, 일단 오늘만 버티자.

© jeremybishop,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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