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쿠션이 필요해
확신이 있었다. 아들의 뒤통수만 봐도 공부를 하는지, 게임을 하다 만 건지, 딴짓이 하고 싶어 몸살이 난 건지 안다고. 그러고는 멋있는 척했다. 아들이 무안할 까봐 모르는 척 넘어가 주고 그의 자유와 일탈을 위한 시간을 스리슬쩍 깔아주면서.
이건 과거의 어느 때 이야기다.
큰 아들의 온라인 수업과 나의 칩거 생활이 일 년을 넘기며 우리는 긴 동거의 시간에 익숙해졌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아들은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한다. 각자 알아서 아침을 챙겨 먹고 이따금 시간이 맞으면 함께 점심을 먹는다.
"엄마, 글 쓰는 건 잘 되세요?"
"그냥 쓰고는 있어. 엄마가 쓴 거 읽어 봐 줄래?"
아들에게 삐죽 초고 몇 장을 보여주기 전, 급히 빠져나갈 구멍을 삽질하기 시작한다. 이건 완전 초고야. 말하자면 쓰레기인 거지. 헤밍웨이가 초고는 쓰레기라고 그랬다잖니. 엄마가 글쓰기 시작한 거 얼마 안 된 거 알지. 연습이야, 연습."
"엄마, 왜 당당하지 못하세요. 자신이 쓴 글에 이렇게 자신이 없으시면 어떡해요. 파이팅 정신이 있어야지요. 인생 짧아요. 그렇게 주저하고 변명할 시간이 없다고요. 엄마도 아시잖아요...."
그렇게 아들의 잔소리, 아니 뼈를 때리는 충고는 계속되었고 나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해치웠다. 밥이라도 편하게 먹자, 아들아.
엄마와 아들의 자리는 어느새 바 뀌 었 다.
그래 아들아, 엄마가 생각이 짧았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친절한 금자 씨, 이영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을 하건 말건 강물이 멈추면 멈췄지 나의 잔소리가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혹여 강물이 멈추고 코끼리가 플라잉 해서 나뭇가지에 앉는다면 잔소리를 멈출지 말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다.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으며 대한민국 20대 초반의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모든 것이 불안하기만 한 아들을 떠올린다. 한 명은 군필, 한 명은 건강상의 이유로 면제이다. 군필 아들을 둔 엄마는 전쟁을 보는 시각이 예전과 사뭇 다르다. 안 들리던 북한 정세에 관심이 가고 대북 공격에 민감해지며 간절히 이 땅의 평화를 기도한다.
<전쟁과 평화>에 주된 동력인 전쟁은 주인공들을 성장시키고 어른으로 만든다. 수많은 등장인물 중 독자들이 사랑의 작대기를 한다면 단단한 자아와 깊은 내면, 수려한 외모를 겸비한 안드레이가 선택될 것이다. 누가 봐도 흐뭇하다. 톨스토이가 애정을 듬뿍 담아 구축한 캐릭터임에 틀림없다.
이 순간은 나폴레옹도 흘러가는 구름이 떠가는 높고 무한한 하늘과 자기 마음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비하면 작고 하찮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과 평화 p560
매력쟁이 안드레이를 두고 잔소리 버전의 나는 <전쟁과 평화> 2부 5장에 나오는 로스토프의 에피소드에 대해 할 말이 많다. 대략 상황은 이렇다. 전쟁과 평화의 앞뒤 내용을 모르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 들어보시라. 군대 내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했고 로스토프는 돈을 훔쳐 간 범인을 알고 있다.
로스토프는 다른 장교들이 모두 있는 상황에서 연대장에게 사건 전모를 말했고, 연대장은 당신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로스토프는 자신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며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신경 써야 하는 외교관도 아니고 그러려고 경기병이 된 것도 아니라고 한다.
머리가 희고 주름살이 눈에 띄는 이등 대위가 타이른다. 연대장에게 가서 자신의 경솔함을 사과하라고.
전 상대가 누구건 제가 거짓말쟁이라는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 사실은 절대 변함없습니다. 당직 근무를 매일처럼 하명해도, 영창에 넣어도 상관없지만 누가 뭐라건 사과는 하지 않겠습니다.
이등 대위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로스토프를 설득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치부를 폭로하면 연대 전체의 명예는 어떻게 되겠냐며 당신은 다른 부대로 옮겨가면 되지만 이곳에서 죽을 지도 모르는 나이 많은 우리에게는 명예가 중요하다고 또 도둑질을 한 장교를 군법회의에 넘겨야 속이 시원하겠냐고.
연대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제가 나빴습니다. 전적으로 제가 나빴습니다. 그러나 사과만은 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이건 절대 고집이 아닙니다! 제 감정을 설명할 수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지갑을 훔친 장교는 병을 이유로 제명 처분 명령을 받고 이야기는 끝난다. 로스토프는 서툴렀다. 하지만 그가 거짓을 말한 것은 아니다. 명예를 선택한 연대장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했다. 늙은 이등대위는 젊은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잔소리를 했다, 나처럼.
로스토프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분을 참고 기다렸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연대장에게 보고하고 일을 조용히 처리해야 했을까. 그래서 군의 명예도, 피의자의 자존심도 지켜줘야 했을까. 그랬다면 더 바랄 것도 없겠지만, 젊음의 혈기는 그렇게 유연하지 못했다. 억울함에 눈에 뵈는 게 없었을 테고 심장은 터질 듯 나댔을 거고 당장 탈영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테니까.
여기서 나는 무엇을 아들에게 말하고 싶었을까. 그래, 마음의 쿠션이다. 오래전 읽었던 책 <마음의 쿠션> 을 떠올렸다. 감정이 널을 뛸 때면 나 역시 서둘러 마음의 쿠션을 장착한다. 외부에서 가격 되는 부정적 자극을 온전히 받지 않고 쿠션을 거쳐 받아들인다. 살과 뼈로 받아들이는 자극은 충격도, 후유증도 크다. 세월과 함께 나의 맷집은 잦은 자극으로 둔해졌다. 날 것 그대로 일지 모를 아들에게 마음의 쿠션을 선물하고 싶다.
조금은 유연하게 완화된 자극을 수용하면 조금은 더 이성적으로 개인과 전체를 다 아우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긍정적인 자극이야 더 예민하고 역동적으로 받아들여야겠지만 말이다.
본전도 못 찾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아들에게 슬쩍 이 에피소드를 들려줄 생각이다. 안 듣는 척해도 다 듣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어느 날 고민에 빠진 동생을 붙잡고 그 유명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말이야 조직에 갈등이 있었는데 말이지, 마음의 쿠션이 어쩌고저쩌고하며 조언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