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서 숨은 보석을 찾는 심정으로 퇴고합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진짜 하고 싶은 말', '아직 부끄러워하지 못한 말', 저자만이 낼 수 있는 고유의 향기가 깃든 문장을 찾아냅니다. 그런 다음 그 문장에 대해 맞장구를 치면서, ‘이런 표현은 어떠세요?’하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정확하게는, 저자가 겪은 팩트와 집필 의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한 확인 절차에 가깝습니다.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책을 만들어 나가는 셈입니다.
그런 문장들이 갑자기 많아질 때도 있습니다. 문장이 아닌, 문단, 챕터, 콘셉트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그럴 땐 제가 기획자의 영역을 넘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책 전체의 구조조정과 윤문을 하고 나면 저자님들께서 꼭 이런 말을 한마디씩 하십니다. “맞아요! 이게 바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이에요!”
작업을 할 때는 온전히 감상하며 받아들인다는 생각으로 읽으면 눈에 잘 보이지 않았어요. 적극적인 독자가 되어 비판도 서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읽습니다. 그러면 수정했을 때 더 좋아질 수 있는 문장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색한 문장을 눈앞에 놓은 다음에는, 이 문장을 쓴 저자의 의도를 먼저 파악합니다. 저자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행간’을 읽으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보지 못하고 지나칠지 모르는 숨은 맥락을 드러내기 위해, 어떤 문장이나 구절이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제가 느끼는 퇴고의 즐거움은 맥락이 숨은 문장을 찾아 퍼즐 가운데 비어있는 조각을 머릿속에 그리고, 함께 조각을 끼워 넣기 위해 움직이는, 지적 호기심과 공감으로 뭉쳐진 내가 된다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방송작가로 활동하면서 소설가분들의 원고를 얼떨결에 받아보기도 했지만 미출간, 초고를 먼저 읽는다는 미묘한 쾌감과는 다릅니다.
에세이를 퇴고하는 것과 지적 호기심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의아하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정보나 미지의 영역을 접할 때, 뇌는 자연스럽게 그 빈틈을 채우고자 한답니다. 그러니 초고를 읽다가 어색한 문장이 있거나 맥락이 있으면 그것을 바로잡고 채워야 하는 조각이 무엇인지를 그려보게 되었던 것이지요. 지적 호기심이란 어떤 정보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그저 알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입니다.
저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었어요.
퇴고의 즐거움이 인간의 본능에 있다고 믿는 저는 지적 호기심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걸 몰랐거든요.
반대로, 틀린 것을 찾아내기 위해 검열한다는 생각만으로 퇴고하면 작업하는 사람만 더 힘듭니다. 더 나아가서는, ‘창조’하고 싶었던 자신의 꿈이 과분해 ‘돈벌이’가 되는 일에 재능을 쏟고 있다는 생각에 자괴감에 빠지기 일쑤 지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 줄리아 카메론의 저서 가 생각이 나는데요. ‘아티스트의 명성을 좌우하는 것은 어쩌면 재능이 아니라 용기다.’라는 구절에 크게 공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 끝까지 창조를 해낸 저자의 인내심과 용기를 크게 사는 것이 퇴고 전문가로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한 권을 출간하기 위해 힘든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았을 커다란 에너지를 느끼는 것은 출간을 앞둔 생생한 퇴고 현장에서 전문가에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하물며, 내가 쓴 글을 내가 퇴고한다면 어떨까요? 애정이 있는 만큼, 처음에는 흠뻑 빠져서 읽기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쓴 글의 논리와 문장의 아름다움, 단어 사용의 적확함을 다시금 점검하고 되새기는 것이야말로 내 책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좀 힘들더라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볼 만한 재미와 가치가 있는 작업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