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으셨겠지요, 우리는 퇴고의 즐거움을 추적하는 중입니다. 저는 퇴고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의 원천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본디 내재해 있는 본능과도 같은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퇴고나 글쓰기 능력에 관한 영역은 최대한 제쳐두고, 저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퇴고와 관련지을 만한 사건들부터 짚어보게 됐어요.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돌아보니, 억울함과 분노 같은 감정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지만 결국 표현하지 못하면서 생긴 감정들을 처리하는 부분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작가가 된 이지영은 반대로 퇴고를 당해 보기도 하고, 새로운 글쓰기를 위해 퇴고를 먼저 하기도 합니다. 열등감에 젖어보기도 하고 자신을 뻔뻔할 정도로 일으켜 세워보기도 했지요. 그러면서 제가 느낀 것은 창조성을 회복하고 자기 주도성을 되찾는 것이 글쓰기로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명확하게 존재하기 위해’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글쓰기가 되었으며, 그것과 늘 함께했던 일이 바로 나의 언어를 더욱 명확하고 견고하게 다듬는 일, 바로 ‘퇴고’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자신을 들여다보는 글쓰기를 꼭 한번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더욱더 명확하게 존재하기 위해서요. 서울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이 2024년 ‘한국사회 울분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만성적 울분 상태’라고 합니다. 그중 가장 빠르고 손쉽게 마음을 풀어낼 수 있는 치유제는 문학이고요.
그런데 뭘 읽어야 하느냐고요? 만약 내가 직접 쓴 에세이라면 어떨까요?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처음에야 몇 번, 손발이 오그라 들겠지만, 가라앉지 않은 분노와 슬픔에 글을 쓰다가 엉엉 소리 내어 울 때도 있습니다만, 그런 순간들이 몇 번 지나고, 계속해서 내 마음을 글에 담다 보면 가장 가까이서 나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마음 응급처방전’이 바로 글쓰기라는 걸 느낄 수 있답니다.
자, 그럼 어떤 글을 먼저 써볼까요? 오늘 있었던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쓰셔도 좋고, 기쁜 일, 혹은 속상했던 일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때에 희로애락을 느끼시나요? 저는 누군가의 칭찬에 기뻐합니다. 이 기쁨은 누군가의 칭찬이 제가 주도적으로 의지를 갖추고 한 행동의 성과에 대한 것일 때 배가 됩니다. 내가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즐거운 일이 그런 것들이지요.
외출준비를 할 때 남편이 재촉하면 분노합니다. 남편은 장난스레 훼방을 놓으려고 참견 한마디를 더 하는 거지만, 오랜만의 외출에 좀 더 예쁘게 단장하고 싶은 저는 방해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으르렁거리게 되는 것이지요.
아이가 다쳐서 울면 슬픕니다. ‘좀 더 조심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분노와 함께 몰려오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어찌할 수가 없기 때문에 슬픕니다. 이때 내 탓을 하게 되면 더욱 우울해집니다.
아이들과 대화하며 보내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생각 없이 던진 농담에도 즐겁고, 아이의 성장에 따라 대화의 주제가 달라지는 것도 즐겁습니다. 함께 책을 읽은 후 나누는 생각이나 질문에도 초록 신호등이 켜진 듯이 즐겁습니다. 아이들과의 독후활동을 기록한 글이 포털사이트 네이버 메인 화면에 걸렸을 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이렇게 보면 ‘희(喜)’와 ‘락(樂)’, ‘로(怒)’와 ‘애(哀)’, 이런 것들이 뭐가 그리 크게 다를까 싶기도 한데, 각각에 대해 글을 써보고 나니 조금 알겠더라고요. 맞거나 말거나 저의 생각을 덧붙이자면, ‘용(用)’이라는 단어의 차이가 희’와 ‘락’, ‘로’와 ‘애’의 차이를 만드는 게 아닐까 합니다. 분노할 ‘로’로 해결이 되면 ‘로’로 그치지만, 아무리 분노해도 그것이 ‘소용’이 없을 때, 슬플 ‘애’가 됩니다. 즐거울 ‘락’이라 부른 일이 안팎으로 유용한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되면, 그것이 기쁠 ‘희’가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단어의 의미에 명확한 차이를 발견하거나, 단어의 어원을 찾곤 하는 일이 저는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희로애락을 이렇게 차이를 명확하게 두면서 다시 보니,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의 쓰임, 자신의 가치, 인정받는 것에 대한 욕구가 감정을 좌우한다고 해도 크게 이상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도 그럴 것이, 남의 시선 신경 쓰지 말고, 남의 인정을 갈구하지 말고, 내가 나를 먼저 사랑하자고 끊임없이 되뇌는 저에 대한 조급함이 있었거든요.
외출할 때면 왼쪽 귀에는 꼭 귀걸이의 침이 잘 들어가지 않아서 끙끙대곤 합니다. 귓불의 앞에서 침이 통과하지 않을 때, 이럴 때 으레 쓰는 방법은 구멍의 반대쪽인 귓불의 뒤쪽에서부터 귀걸이 침을 꽂아 귀걸이 길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퇴고의 즐거움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찾아보던 중, 이번에는 저를 즐겁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런지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즐거운 일들이 ‘유용함을 알려’ 기쁜 일을 가져온 사건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알게 되겠지요. 그 즐거움의 구성요소에는, 분명 퇴고에서 나오는 즐거움의 원천도 숨어있지 않을까요?
다음 장에 이어지는 글은 저의 희로애락 중 기쁜 감정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입니다. 지금까지 퇴고의 즐거움을 추적하기 위해 퇴고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이제는 그 반대쪽인 기쁜 감정, ‘희’에 다가가 귀걸이 침을 꽂아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