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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Nov 13. 2024

7. 명확하게 존재하기

‘명확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존재감이 강하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독특한 특성을 지닌다는 뜻일까요? 여기, ‘명확하게’ 붓이 스치고 지나간 한 ‘획’이 있습니다. 이것은 강하게 그은 것도 아니고, 독특하게 그은 것도 아닙니다. 희미하지 않을 뿐입니다. 어떤 역할이 있는지는 누구나 알 수도 있고,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자신만은 알고 있습니다. 희미한 역할이라 할지라도 자신만의 이유가 명확하게 있을 것입니다. 



명확하게 존재하는 것은 삶을 자기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감과 신념이 강하고, 자신의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하므로 외부에 의해 특성이 크게 좌우되지도 않고, 존재가 인지하는 한 희미해지지 않습니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영역을 어떤 언어로든 표현하고, 확장하고, 한정합니다.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생각과 의지를 굳건히 하기 때문에 쉽게 혼란을 겪지 않습니다.  그것이 명확하게 존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생각과 의지를 굳건히 하다 보면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도 명확해집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열정적으로 일하게 됩니다. 동시에,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의 한계, 내가 처리할 수 있는 감정의 한계도 인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불편한 상황이 왔을 때 조금 더 용기를 낸다면 ‘No’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요. 자신을 들여다보는 습관은 곧 생각하는 힘이기 때문에 내가 불편한 이유를 나 자신에게만큼은 얼버무리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글로 써내는 것은 솔직함을 넘어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찾아 스스로 파고드는 힘으로 결국에는 내 안에서 답을 찾아냅니다. 그렇게 ‘나’를 찾아냅니다. 그리고 나의 삶은 더욱 ‘나다운 것’과 가까워집니다. 이처럼 명확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나와 세상을 보는 시야가 깊어지는 길목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속담을 들먹여가며 열심히 공부하고 암기했다면, 이제는 ‘생각하는 것이 힘’인 시대입니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사색하는 힘’은 더욱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깊이 생각하는 힘이 되는데, 이것이 나의 감정을 놀랄 만큼 빠르게 처리해 줍니다. 내가 불편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정리하면 상대방과 적당한 타협점을 찾는 데에도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내가 불편함을 느낄 때 외면하거나, 숨어버리거나, 공격적으로 돌변하거나, 혼자서 끙끙 앓는 것을 선택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므로 명확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내가 강한 의지를 가지는 것이 무엇인지, 존재의 정체성을 찾고 유지하며 성장하는 일에 더욱 가깝다고 할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 사이에서 가장 나다운 것을 찾고 내가 존재하고 싶은 모습이 되기 위해 강한 의지로 노력하는 것이지요. 오롯이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한 걸음씩 내딛는 일을, 저는 ‘명확하게 존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진짜 ‘나'에 대해 알게 되기만 하면, 이런 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강한 의지를 가지고 주도적으로 하게 되는 일입니다. 내 삶에서 내가 갖는 ‘주도성’, 우리가 느끼는 희로애락의 열쇠이기도 합니다.



‘이대로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야’

‘이게 사는 맛이지!’

‘비로소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위의 세문장을 천천히 살펴볼까요. 여러분은 자신의 인생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던 때가 있었나요?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순간이었는지를 회상할 수 있나요?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은, 내 심장이 박동하고 살아 숨 쉬고는 있지만, 사람답지 않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일 겁니다. 일상에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무언가가 부족했을 수도 있고, 정서적인 부분에 매우 커다란 결핍이나 위협이 있었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생존이 느껴지는 문장이지요. 


‘사는 맛’이라는 건, 어렵고 힘든 시간이나 정성과 기다림 끝에 어떤 결실이나 보상을 얻은 기쁨을 가리킬 거예요. 그 결실이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매일을 살아내기 위해 내게 주어진 일들을 마치고 한숨 돌리며 자신에게 선물하는 ‘소확행’으로, 혹은 그런 시간을 통해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해소한다는 느낌이 바로 그런 걸 테지요.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것보다 좀 더 진정한 삶을 산다는 믿음에 가까워요. 단순히 생명체로써 숨을 쉬는 것보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보다, 인고의 끝에 얻은 달콤함보다, 조금 더 나아가 자신이 알고 있는 삶의 의미대로 사는 기쁨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다가간 느낌일 겁니다. 


 회사에 출근해서 하는 일이 재미없는 이유는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회사 일도 나답게 주도적으로 임할 수 있다면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내가 잘하는 일을 나답게 주도적으로 해냈을 때는 ‘살아있다는 기분’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거예요. 내가 한 일을 인정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삶에서 나를 좀 더 알게 되었고, 어쩌면 이것이 삶의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열쇠를 발견한 기분이 들 테니까요.


이외에도 우리는 주도권이 타인에 의해 흔들리거나 빼앗기면 분노하고, 후회해도 이미 늦어버린 일처럼 해결이 불가능한 것 앞에서 슬픔을 느낍니다. 또, 내가 주도적으로 행하는지도 모르고 주도적으로 행하는 일 (주도성을 논할 필요가 없는 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의무는 잊은 채 하는 일처럼 자유롭게 나를 내려놓는 시간에 우리는 즐거움을 느끼지요. 그런데 여러분, 희로애락의 차이를 여러분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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