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를 하면서 점점 자신의 존재를 명확하게 그려가는 저자님을 보며, 뿌듯하고 즐거웠습니다. 작가로서 ‘독보적인 필력’을 가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하지만 이렇게 퇴고 중에 보석들을 발견하고 즐거움을 깨닫고 나니, 나만 글을 잘 써서는(?) ‘만성적 울분 상태’인 세상이 생각만큼 차도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구나 글쓰기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책 쓰기’라는 목표 이전에 좀 더 일상적이고 간단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명확하게 하는 작업을 꼭 해보면서 치유와 성장을 천천히 이루어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지요.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나의 주변의 모든 사람이 글쓰기를 어려워하지 않고 쓰는 일을 즐기고, 글쓰기를 하면서 자유를 느끼기를 바란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소망이지요. 꼭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책을 읽고 나누는 독서 모임이 있는 것처럼, 자신이 쓴 글을 서로 나누며 공감하는 글쓰기 모임도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바람을 저 혼자만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음 챙김이나 자아탐구에 관련된 일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 글쓰기 영역에서 연구하고 활동하시는 분들, 글쓰기를 가르치는 분들, 책을 매개로 활동하시는 분들도 이런 소망을 마음에 품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에 어떤 변화가 찾아온다면, 그것이 한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전부터 필요와 발견, 연구 등의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전부터 있어 온 '저널치료'라는 분야는 저의 마음을 쏙 빼놓았습니다. 말로만 배운 ‘독서치료’, ‘글쓰기치료’라는 단어가 실제로 어떤 모습이고, 어떤 효과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지요.
‘대나무숲 글쓰기'라는 작은 커뮤니티를 만들었습니다. 꼭 익명으로 무언가를 고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곳 같지만, 그보다는 나를 위해 깊이 생각하고 나의 생각을 자유롭게 토해낼 수 있는,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괜찮은, 글쓰기 안전지대를 만들고 싶었지요. 저는 ‘존재가 명확해지는 글쓰기’를 위해서는 ‘안전지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곳에 모인 분들을 대상으로 새벽마다 '5분 질주' 테라피를 40분 남짓의 시간 동안 3번 정도로 정해 진행해 보았습니다. 한 플랫폼으로 한정해 움직이지 않고,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글쓰기 테라피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림책이나 시를 매개로 진행하기도 했고, 매일 주제를 바꿔가며 라디오 오프닝 형식의 글을 써서 직접 내레이션하며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쓰게 할까’를 생각하며, 고민과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에 뭐라도 좋으니 내 생각을 지면에 쏟아내는 것은 몇 번의 연습만 거치면 금방 자유롭게 하게 되지만, 쓴 것을 공개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견고한 벽이 있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두었습니다. 뭐든 쏟아냈다는 것이 중요하고, 제대로 쏟아낸 경험을 맛본 사람은 다시 같은 순간을 경험하고 싶어 했습니다. 마음이 정화되고, 정돈되는 느낌을 받았다며, 감사 인사를 받았지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자신의 글을 도반들에게, 혹은 개인적인 온라인 공간에 게시하기도 했습니다. 글쓰기의 기초를 다지고, 장편의 글쓰기로 물꼬를 트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실제로 책을 몇 권 출간하시며, ‘대나무숲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도 실었다며, 출간한 책을 제게 보내주시는 감사한 일도 생겼습니다..
요즘은 개인 브랜딩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는 시대다 보니, 개인 브랜딩을 위한, 혹은 자기 삶을 회고하는 '책 쓰기'를 하려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아서인지 책 쓰기를 위해 책 읽기를 시작하는 분들도 많이 생겨났지요. 온라인 독서모임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정말 반가운 현상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 우리는 자신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 혹은 전문가나 전문가에 가까운 사람을 찾아 조언을 들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선택이라면, 마음에 관한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전문가의 이야기만 듣고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왜냐하면 전문가는 항상 '최상'의 선택을 하도록 돕지만, ‘최선’의 선택은 결국 나 자신이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은 한 번뿐이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에, 무엇을 선택하든 기회비용이 있기 마련이지요. 우리는 늘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지나며, 매번 어떤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선택과 동시에 그 밖의 것들은 포기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동시에 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후회도 늘어가는 것일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글을 써야 합니다. 나만의 글쓰기 안전지대를 확보하고, 주변에 전하고 싶지 않은 말일수록 글로 써봐야 합니다. 나에게 묻고 답하는 편지를 써봐야 합니다. 나에게 편지를 쓰고, 곱씹어 반복해 읽어보거나 시간을 두고 나중에 찾아 읽어보면서 찾아오는 필연적인 시간을 기꺼이 떠안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나에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도록 격려하는 방법입니다.
혹은, 글쓰기로 견뎌야 합니다. 힘듦을 고스란히 겪은 나의 상처를 돌봐야 합니다. 마음의 상처를 묘사하고 구구절절 기록해야, 아물어가는 모습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처만 기록해도 나는 조금씩 치유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내가 겪은 시련의 의미와 모양을 알고 내 존재를 명확히 할 때, 비로소 감당할 힘이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