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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퇴고의 즐거움

by 이지영

퇴고란, 글쓴이가 더 잘 쓰도록, 독자에게 더 잘 읽히도록 하는 작업이지요. 우리는 지금까지 제가 직접 쓴 글을 퇴고하며 자아를 돌보았던 즐거움, 즐거움의 원천인 진정한 기쁨, 공감, 지적 호기심, 본능적으로 공감하고 희망을 일으키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이제는 내 이야기 쓰는 법에 대해 알아볼까요?



왜 ‘퇴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쓰는 법’이냐고요? 퇴고는 글 쓰는 사람과 편집하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퇴고의 범주는 양쪽에서 누가 퇴고하느냐에 따라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글쓴이가 쓴 글이 영 마음에 차지 않을 때, 온 마음을 다해 쓴 글인데도 과감히 모든 것을 뒤엎고 새로 쓰는 걸 선택하는 것처럼요.



퇴고는 글쓴이 스스로 할 때 그 체계나 순서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차피 ‘내 글’이니까요. 그렇지만 만약 ‘제대로’ 쓰고 싶다면, 백지로 돌아가 새로 써야 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정말 도전해봐야 할(?),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겠지요!



왜 그래야만 할까요? 단순한 오탈자를 넘어, 문장의 어색함이나 문단의 구조조정을 넘어, 다시 써야만 한다고 했을 때는 어떤 기준이 작용하는 것일까요? 세 가지 정도로 추려 보았습니다.



첫째, 내가 쓴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들 때입니다. 내 글이 편집자를 통해 강한 윤문을 거친 경우에, 간혹 이런 느낌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chat GPT가 작성한 글의 경우, 당연한 결과겠지요. 정말로 내가 쓴 것이 아니니까요. 글을 '내'가 반드시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당연히 직접 써야 합니다. 나만의 언어로 나를 표현하는 대신 chat GPT가 나의 마음을 대변한다면 좀 슬플 것 같아요.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정신이 고양되는 기분을 느끼기는커녕, 형식적으로 작성된 서류를 로봇 대신 사람이 제출했다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네요.



둘째, 글의 주제에 대해 쓰다 보니, 내용이 마음에 차지 않아서입니다. 그럴 때에는 주제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자유롭게, 또 깊이 있게 생각해 본 다음, '내가 이 주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를 한 줄로 작성해 봐야 합니다.



저는 이 작업을 ‘주제 탐험’이라고 부르는데, 말 그대로 특정 주제를 놓고 자기 내면을 탐험하기 때문이지요. 어떤 때에는, ‘하고 싶은 말’ 한 줄을 작성하다가 그릇된 나의 믿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오해나 편견 같은 것들이지요. 괜찮습니다. 기획 단계에서는 얼마든지 그래도 됩니다. 이렇게 글의 전체 모습을 그리는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작업을 많이 할수록 얻는 것이 많아집니다.



마지막으로 셋째, 글을 쓰다 보니, 자신 있는 주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서입니다. 어느 정도 쓰고 난 뒤에 갑자기 더 이상 쓸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닐까요?



만약, 자신감을 잃은 이유가 이미 그 주제에 대해 많은 사람이 다루었기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세상에 나와 있는 이미 많은 콘텐츠가 사랑을 노래하고, 사회의 변화에 대해 다룹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나를 믿어야 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과는 엄연히 다른 존재입니다, 어떤 교과서나 참고서도 하나의 개념에 대해 똑같이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세상에서 하나뿐인 이야기가 나의 글이라는 것도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겠지요.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진지하게 고민해 본 경험이 있는 주제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 굳게 믿는 것, 좋아하는 것 등을 짚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가장 치열하게 몰두하고, 오랜 시간 고민하고, 힘이 들 때 늘 찾게 되는 '진정한' 모든 것에 대해 내 생각을 쓰면 누구보다도 깊은 통찰이 담긴 글이 자연스럽게 나만의 언어로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글을 완성해 놓고 보면, 어떤 어려움을 나만의 방식으로 이겨 낸 이야기가 됩니다. 바로 자기 주도성을 잃었다가 되찾는 순간, 치유와 성장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글은 글쓴이의 삶을 녹여 가공한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는 내 삶을 돌아보고 기록하는 것과 같고, 내 글을 퇴고하는 것은 나의 삶과 정신을 재구성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퇴고는 내 삶을 퇴고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제대로 퇴고 하려면, 제대로 써야 하고, 자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 선행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주제 의식이 명확해진 다음에야, 문장 표현의 적확성을 살피고, 최종의 최종단계에서 맞춤법이나 오탈자 등을 따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글의 성격에 따라 ‘자아의 변화’가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쓰기를 미리 제안합니다. 그래야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문장이 저자를 잘 표현하는지, 흐름에 따른 논리와 감정이 자연스럽고 명확한지를 알 수 있고, 그것이 독자들의 공감과 직결되기 때문이지요.



제가 느끼는 퇴고의 즐거움은 저자의 커다란 자아가 숨어 있는, 그러한 맥락이 스며든 문장을 찾아 퍼즐 조각을 머릿속에 그리고, 함께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움직이는, 지적 호기심과 공감으로 뭉쳐진 내가 된다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려면 초고를 받아 읽는 동시에 ‘공감’부터, ‘그럴 수’부터, 먼저 던져야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문장의 오류를 잡아내는 것보다 우선해야 하는 일이지요.



저에게 퇴고는 타인과 나에 대한 적극적 공감이며, 또한 명확하게 존재하기 위한 장치인 셈입니다. 저자의 마음에 공감하는, 그의 삶에 찾아온 치유와 성장을 돌아보며 명확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최초로 확인하는 독자가 되는 것. 그것이 저의 퇴고 작업을 즐겁게 했던 것이지요.



단편적인 텍스트와 이미지가 분수처럼 쏟아지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꿋꿋이 자신만의 호수를 이루어 유영하며 진실한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유로운 일이 또 있을까요? 여러분도 글쓰기에 흠뻑 빠져들어 나와 타인에게 공감하는 즐거움을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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