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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by 이지영

우리에게 왜 글쓰기 안전지대가 필요할까요? 글쓰기를 하면 정말로 내 마음이 나아질까요? 어떤 글을 쓰면 내 인생이 바뀔 수 있을까요? 글을 퇴고하는 것처럼, 내 인생도 퇴고 할 수 있을까요?



앞 장의 제목이 ‘대나무숲 글쓰기’였으니, 대나무숲을 배경으로 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를 예로 들어볼까요?



비밀을 발설하지 말라는 명을 받고 속병을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대나무 숲에 찾아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 이발사의 마음을 살펴보죠. 대나무 숲에 가기까지, 이발사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는 단순히 타인의 비밀을 누설하고 싶다는 욕구보다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는 억눌린 욕구가 더욱 괴로웠을 것입니다.



아마도 최상의 선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아무도 없는 최선의 장소을 찾아 헤맸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영업을 하는 이발사가 갑자기 가게를 비우고 망망대해로 떠날 수는 없는 노릇. 누구나 이상하게 생각하겠지요? 반면 대나무숲은 상대적으로 가깝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기 좋은 장소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차선으로 선택한 장소가 대나무숲이었고, 그는 완전범죄를 계획한 사람처럼 아무도 모르게 그곳을 찾아갔을 것입니다.



‘아휴, 내가 어쩌다 이 모양이 된 거야…….’ 하고 이발사가 신세한탄을 하며 산을 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차선의 선택을 한 고통은 누구의 몫인가요? 아마 이발사는 누구의 원망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임금님은 이발을 해야만 했고, 이발사는 임금님의 이발사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을 테니까요. 이러하듯 각자의 '그럴 수밖에 없는'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누군가를 ‘콕 집어’ 원망할 수 없었습니다. 다독여야 하는 것은 자신의 답답한 마음뿐! 말하고 싶은 마음뿐!



온 나라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소문이 퍼지자 임금님은 처음에는 이발사를 불러 화를 냅니다. 그러나 사실은 임금님도 누구를 '콕 집어' 원망할 수가 없다는 걸 압니다. 부모가 일부러 그렇게 낳은 것도 아니고, 자기도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지요. 어차피 이발을 해야 하니 누군가는 자신의 비밀을 알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니 소문을 냈다고 이발사를 죽이고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랬다간 소문이 더욱 크게 부풀려질 수도 있으니까요.



아마도 어진 임금은 그런 악순환만큼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신체적 결함이라고 생각했던 '당나귀 귀'를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행히, 아주 다행히도, 백성들은 임금의 귀가 크고 길어서 더욱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이라며 오히려 좋아했지요.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하더라도 우리는 선택을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도 선택입니다. 아무리 소심하고 의지가 박약한 사람일지라도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있습니다. 작가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할 뿐입니다. 무엇을 고르든, '선택'이라는 것을 하면서 우리의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갑니다. 세상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고, 공감하려 하면 할수록 더욱 깊고 다양하게 읽힙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인간의 마음을 꿰뚫는 통찰'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쓰려고 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해 먼저 공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성 있는 글을 쓰고, 그로부터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글도 피상적으로 쓰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나에게 공감해야 나만의 언어도 거기서부터 만들어지며, 통찰은 원망과 비난이 아닌 공감에서부터 빚어집니다.



내가 나의 이야기에 먼저 공감해야, 나를 스스로 치유하는 글쓰기도 가능해집니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내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가장 깊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적극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훈련이 되며, 그리고 비로소 삶 전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통찰이 깃든 문장을 써낼 수 있는 것이지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대나무 숲에서 외쳤든, 구덩이를 파고 외쳤든, 우물 속 혹은 갈대밭에서 외쳤든, 자신의 마음에 공감함으로써 그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직면해 해결하려 했지요. 나름대로 선택한 방법을 통해 이발사는 속이 후련해졌을 것입니다. 속에 꽁꽁 눌러둔 말이 있다면 어떻게든 ‘표현’을 하는 것이 몸에도, 마음에도 좋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나아가 이런 생각을 했겠지요. ‘이렇게 좋은걸, 임금님께도 알려야겠다!’ 라고요. 자신의 비밀 때문에 가장 괴로운 건 임금님 자신이었을 테니까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진심으로 임금님을 걱정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었을 것입니다. ‘차라리, 임금님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신 있게 드러내면 좋으련만…….’ 이 이야기가 널리, 오래도록 전해 내려오는 이유는 바로 이 진심 어린 ‘공감’을 통한 내면의 성장 덕분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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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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