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할 때면, 표현을 마음껏 하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초고를 받아 읽습니다. 여러 감정이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들을 파도 타듯 읽다 보면, ‘정말 내가 마음껏 고통스러워해도 될 일인가.’ 하고 비교 대상을 찾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지는 등, 역시 오탈자만 보는 퇴고는 저의 성격에 맞지 않았거든요. 저자도 만족하고 독자들도 공감하는 성공적인 출간을 위해서는 진심 어린 충언과 응원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색한 문장을 눈앞에 놓은 다음에는, 이 문장을 쓴 저자의 의도를 먼저 파악합니다. 저자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행간’을 읽으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보지 못하고 지나칠지 모르는 숨은 맥락을 드러내기 위해, 어떤 문장이나 구절이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런 다음 그 문장에 대해, ‘이런 표현은 어떠세요?’하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정확하게는, 윤문을 하기 전, 저자가 겪은 팩트와 집필 의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한 확인 절차에 가깝습니다. 공감과 소통을 통해 책을 다시금 만들어 나가는 셈입니다.
그런 문장들이 갑자기 많아질 때도 있습니다. 문장이 아닌, 문단, 챕터, 콘셉트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그럴 땐 제가 기획자의 영역을 넘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것은 때로는 비경제적인 행동이었지만 이미 삶이 녹아든 문장들을 본 이상, 제대로 응원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책 전체의 구조조정과 윤문을 하고 나면 저자님들께서 꼭 이런 말을 한마디씩 하십니다. “맞아요! 이게 바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이에요!”
어떤 때에는, 글에서 숨은 보석을 찾아 양파를 한 겹 씩 벗겨내는 심정으로 퇴고합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진짜 하고 싶은 말', '아직 부끄러워하지 못한 말', 저자만이 낼 수 있는 고유의 향기가 깃든 문장을 찾아냅니다. 조금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겠습니다만, 표면으로 드러난 이야기의 수면 아래에 정말 표현하고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되고, 이것을 끌어올렸을 경우 글의 맛이 더욱 깊어지고 빛날 것 같다는 판단이 서면, 이건 꼭 말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코로나가 엔데믹을 향해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겨울에 만난 초고에서는, 어느 도시에서 발견한 여러 장소를 소개하고 있었어요. 장르는 에세이였고, 장소를 소개하는 것이 그 책의 주제였습니다. 소개하는 장소는 관광 명소보다는 가족과의 추억이 있는 곳에 가까웠지요. 저자가 새롭게 이사 와서 살게 된 동네를 더욱 깊이 알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 전반적인 흐름이었습니다. 초고에 드러난 내용을 한 겹 벗겨내면, 그것은 한마디로 ‘새 동네 적응기’였어요.
그런데 계속해서 읽다 보니, 원하지 않았던 이사와 전학에 대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쩔 수 없이 무언가에 휘말리듯’ 작은 도시의 낯선 동네로 이사를 해서 아쉬운 부분을 강조하고 있었고, 이사의 원인이 된 어떤 것에 대한 원망도 보였습니다. 아이의 교우관계와 관련해 괴로운 학교생활 이야기도 서술되어 있었지요. 부모로서 그것을 바라봐야만 했던 안타까운 마음도 간절한 기도와 함께 녹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부분은 특정 장소를 추천하고 소개하는 제목과 주제와는 달리 너무나 상반된 분위기여서, 두 가지 주제가 함께 들어있지만 이대로 섞이게 두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이대로 출간된다면, 저자는 조금 후회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단 한 사람의 내포 독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저자와 저자의 가족이었다는 걸 깨닫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요.
상처와 고통의 기억을 시간이 어느 정도 해결해 주겠지만, 일상적으로 맞이하던 장소와 그 풍경이 어느 날부터 미움과 원망보다 위로와 치유로 다가왔다면, 그것은 ‘장소’가 책 속의 소재가 되기엔 아쉬움이 컸습니다. 잠시 논리적인 문제로 파고들자면, 인물들의 감정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자기 주도성을 되찾은 순간들에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일반적인 장소의 소개보다는 자녀와 함께 동네 ‘탐방’을 했던 행위에 중점을 두는 것이 더욱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낯선 곳에서 다시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곳에서 나름의 의미와 추억을 만들어나가며, 자기 주도성을 회복한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지요. 결국 제가 제안한 것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전과 후를 쓰되, 동네에 대한 미운 감정이 깃든 문장은 순화하고, 가족이 겪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에 무게를 좀 더 실으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내가 스스로 마음이 일어나서 했던 행동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은 훗날 내가 어려운 일이 닥쳐 흐르는 대로 살아가야만 할 때, 내가 무기력해졌을 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힌트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초고 속에 파묻힐 뻔했던 보석이자, 저자가 표현하고자 했던 진짜 메시지였습니다. 등장인물의 존재가 명확해지고 단단해지는 동시에, 독자도 공감하는 감동적인 이야기였던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