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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네피에 Oct 27. 2023

Nevaeh 시티의 무료한 그녀

초단편

"눈을 뜨세요. 네바에 시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언가 속삭이는 소리에 그녀는 눈을 떴다. 늘 자신의 침대에서 눈뜰 때마다 느꼈건조방의 냄새나, 여러가지 향이 뒤엉킨 그런 냄새는 없었다. 따뜻한 느낌이 서린 하얀 내부 인테리어와 아주 조금 달달한 실내 향기가, 그녀가 덮고 있는 보송한 솜이불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몸을 반쯤 일으킨 그녀의 침대 저편에 희고 매끄러워 보이는 껍질을 가진, 관절 마디마디에서 푸른빛을 내는 로봇이 하나 보였다. 로봇치곤 고급스럽네. 그녀는 내심 놀라지 않으려고 애꿎은 이불을 만지며 촉감을 느껴보는데, 갑자기 후벼 파는 듯한 두통이 정수리와 뒤통수를 때렸다. 그녀는 이불 위로 엎어졌다. 로봇이 다가오며 말했다.


"너무 생각을 많이 하지 마십시오. 현실 속 당신에서 저희 네바에 시티로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고 주변을 살폈다. 통유리로 된 유리벽 너머로 밖이 보였다. 한쪽으로는 넓게 펼쳐진 황금빛 평야가, 다른 한쪽으로는 에메랄드빛 해변을 품은 바다가 널리 펼쳐져 있었다. 한국이 아니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녀는 유리벽 가까이 다가가 더 유심히 밖을 바라보려는데, 머릿속으로 기억이 스쳤다. 운전기사가 직접 운전하는 고급스러운 옛날 리무진, 비싼 양복을 입은 아저씨, 로봇 경호원, 총성, 피, 비. 그녀가 로봇을 향해 물었다.


"분명 미끄러져서 차에 기댔는데 총에 맞았어요. 그 다음엔 쓰러져서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된 거죠?"

"맞습니다. 좀 더 이해하시기 쉽게 제가 외형을 바꾸겠습니다."


로봇이 유리벽 옆에 서있는 그녀에게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바닥에서 가까운 곳부터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육각형의 비늘이 앞뒷면을 뒤짚 듯 발부터 차례로 비늘조각이 뒤집히더니, 평범한 수트 차림의 중년 남성이 되었다. 놀란 그녀가 유리벽에 몸을 기대고 물었다. "뭐죠?".


남자는 멈춰 서서 빙그레 웃으며 유리벽을 향해 손을 뻗더니, 왼쪽 끝에서부터 반대로 쓱 저었다. 그의 손이 향하는 방향에 따라 바깥세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황금빛 평야는 푸른 언덕으로, 에메랄드 빛 해변은 울창한 우림으로. 그녀는 깜짝 놀라 유리벽에 이마를 대고 눈을 꿈뻑였다. CG인가?


그때 그녀의 시야에 팔뚝만 한 회색빛 도마뱀 한 마리가 우림을 뚫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이 이쪽을 향해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 발짝 물러 쪼그려 앉아 눈을 가늘게 뜨고 그 광경을 바라보는데, 다가오던 도마뱀이 유리벽에 '텅'하고 부딪혔다. 순간 도마뱀의 침과 콧김이 유리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녀가 놀라 남자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죠?"

"지금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이곳은 네바에 시티, 현실이 아닙니다. 당신은 저희 회사 TAMSUNG의 회장 데이비드 팍의 목숨을 구하고 사망하셨습니다. 회장님께서는 그런 당신의 희생에 감사하며 당신의 뇌를 마인드업로딩해 이곳에서 지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무슨 말인지 되게 어려운데, 제가 죽었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허무하네요. 뭐, 잘된 거 같기도 하고. 근데 사실, 구하려고 했다기보단 비 때문에 미끄러져서 차에 기댄 건데 하필이면 그때."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저희 회장님을 구한 건 맞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죠. 근데 지금 제가 어떻게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거죠?"

"네, 법적으로는 사망처리 되셨고. 저희 회사 전용 VIP 병동에서 사망하시기 직전까지 뇌의 모든 기억과 필수 데이터를 마인드업로딩하였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이 네바에 시티에 살아있는 겁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당신의 모든 것을 도와줄 매니저 제임스입니다. 당신은 이 네바에 시티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회장님께서 그렇게 허락하셨죠."

"무엇이든요?"

"네. 원하는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저를 부르시거나, 머릿속으로 저를 생각해 주세요. 언제든지 당신이 원할 때 당신 앞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 허락받고 그렇게 한거죠?"

"지금 허락을 해주시면 될것 같습니다. 원치 않으실 경우 언제든지 소멸하실 수 있습니다."


그녀는 잠깐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한숨을 크게 한번 쉬더니 제임스에게 말했다.


"그럼. 우선 지금 제가 상상하는 모든 음식들을 준비해 주세요."


제임스가 빙긋 웃자, 어느새 그녀의 눈앞에 푸짐한  패스트푸드 한상이 차려졌다. 피자, 햄버거, 치킨, 파스타, 핫도그, 빨주노초파남보의 탄산음료들까지 종류별로 갖춰져 있었다. 그녀는 얼른 의자에 앉아 김이 나는 페퍼로니 피자 한 조각을 베어 물더니 치즈를 주욱 늘어뜨렸다. 이게 본고장 피자맛인가?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저 음식을 바라보다가 제임스에게 말했다.


"먹다가 생각날 수 있으니까, 바로바로 해주세요."


맛있는 걸 먹으면서 다른 맛있는 걸 떠올리던 그녀는 새로운 음식이 나타날 때마다 자꾸 웃음이 났다. '이야', '음', '대박'. 그녀의 입에서는 감탄사가 끊이질 않았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고,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먹다가 그녀가 물었다.


"질리지 않는 건 그렇다 쳐도, 포만감이 없네요. 생각해 보면 허기도 없었어요."

"원하시면 모두 느끼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에요, 됐어요. 화장실 어딨 어요?"

"불편하신 건 대부분 없애두었는데, 그걸 잊었네요. 원하시면 화장실도 안 가실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진짜로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된다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얼마나 그럴 수 있어요?"

"이곳은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영원히 그러실 수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여기서 일어나는 1년 정도의 일들은 현실세계에서 0.000000000001초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마저도, 현실세계의 CPU 연산처리속도 기술이 발전하면 그만큼 더 짧은 시간이 됩니다. 데이비드 회장님이 살아계실 동안은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신다고 하셨으니, 한마디로 영원히 가능한 거죠. 돌아가시지 않을것 같거든요."



그녀는 네바에 시티에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모두 해보기 시작했다. 스노보드, 프리다이빙, 우주정거장 방문,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외줄 타기, 심해어 관광, 알프스 등반, 사막 캠핑,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하다 하다 어디갈지 찾는게 귀찮아 새로운 방법도 고안했다.


"제임스 씨,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랜덤 여행이랑 랜덤 식사 부탁해요."


모든 새로운 공간과 모든 새로운 사람들. 그들은 모두 그녀를 환영했고 그곳에서 그들과 보낸 시간들은 매번 감동 그 자체였다. 그렇게 2주쯤 되던 어느 날. 그녀는 제임스에게 물었다.


"제임스 씨, 지구 말고 다른데도 돼요?"

"물론이죠. 현재까지 알려진 우주 말고도, 저희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축한 우주 역시 가능합니다."

"내일부터는 우주로 부탁해요."


그녀가 우주로 무작위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지 셋째 날, 제임스에게 말했다.


"우주는 좀 안 맞는 거 같아요. 애들 생긴 것도 그렇고, 먹는 건 말도 안되고. 그냥 지구가 제일 낫네요."

"아무래도 그러실 거예요. 지구인이셨잖아요. 지구가 가장 편하죠. 그래서 저희 네바에 시티도 지구 모방을 최우선으로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러게요. 내일부터는 좀 쉴게요. 계속 밖으로 돌아다녔더니 뭔가 지치네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피곤함은 꺼두었는데요."

"아니요. 기분이요."

"없애드릴까요?"

"아니에요. 놔두세요."

"네. 편히 쉬세요."


그녀는 며칠간 편히 쉬면서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했다. 제임스가 와서 무엇을 도와줄지 물어도, 손사래를 치며 기다려보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고 어느 날, 그녀는 제임스를 불러다 앉혀놓고 말했다.


"이 정도 기술이면, 우주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아요?"

"네, 물론 가능합니다. 알려진 우주를 기준으로 14억 4830여 개, 다음 주라면 15억 여개까지 가능합니다."

"잘됐네요. 거기까진 바라지 않고요. 태양계 정도만 10개 만들어주세요."

"만들었습니다."

"그냥 만들어달란 게 아니에요. 현실과 똑같이, 지구의 인간들 하나하나가 모두 자기 의지에 따라서 행동하고, 삶을 인식할 수 있는 정도로요."

"엄청난 정보처리량이군요. 그렇게 해본 적은 없지만, 시도한다면 현재 기준으로 태양계 8개 정도는 가능합니다. 다만 운영체제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여유를 두자면 5개 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5개. 좋아요. 언제든지 내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개입할 수 있죠?"

"네, 가능합니다."

"해주세요. 그리고 모든 죽은 인간들은 마인드업로딩해서 따로 모아주세요. 내가 매번 살펴보고 새로 태어날 곳을 정할게요."

"신이 되려고 하시는 거 같네요."

"영화감독 같은 거죠. 심심하니까요."

"그들이 느끼는 것은 모두 현실과 똑같을 겁니다. 고통도, 두려움도, 절망도요."

"기쁨도, 행복도, 즐거움도 똑같잖아요. 뭐 어때요, 이제 나는 못 느끼니까 대리만족이라도 하는 거죠."

"그렇군요. 시스템 효율화와 발전 예상치를 계산해 보면, 이곳 시간으로 매 달 1개의 태양계를 더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계속 늘려보죠 뭐. 저를 복제하면 되잖아요."

"이제 네바에 시티를 저보다 잘 이해하시네요."

"인간이 만든 건데. 거기서 거기죠 뭐."


그녀가 만든 태양계는 점점 늘어났다. 그녀는  인간들의 삶과 죽음을 살펴보고, 이 지구에서 저 지구로 옮겨가며 새로운 삶을 쥐어줬다. 지구는  수십 개를 넘어 수백 개가 되었고, 그녀 역시 수십 명이 되었다. 수십 명의 그녀 중 매달 한 두 명 정도가 네바에 시티에서의 소멸을 제임스에게 부탁했다. 


결국 모든 그녀들이 네바에 시티에서 소멸했고, 제임스는 모든 그녀들이 소멸한 뒤로는 더 이상 새로운 태양계를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제임스는 이미 만들어놓은 태양계를 없애지도 않았다. 네바에 시티 속에 생성된 수백 개의 지구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신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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