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와 나의 이야기-프롤로그
한국으로 돌아온 지 2년하고도 석 달이 되어간다.
애착을 갖는 대상에 대해서는 유독 미련이 많은 성격이라 나의 벌새 존스노우와의 마지막 만남의 순간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보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가 중요하다.
존스노우와의 마지막 만남은 떠올릴수록 마음이 아파서 그것에 대해 차마 기록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가장 큰 건 그리움과 자기연민 때문이었을 것이다. 꾹꾹 눌러둔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면 감당하기 어렵듯이, 그리움도 한번 폭발하면 어디까지 나를 되돌려놓을지 알 수 없으니까.
한국에 돌아와서 한동안 유튜브로 코넬대학에서 올려주는 실시간 벌새 영상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한국에서 오후에 그 채널에 들어가면 미국은 밤이어서 화면이 컴컴했다. 이곳 시각으로 저녁에 영상을 보면 미국 콜로라도주의 산골마을에 찬란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온갖 벌새들이 날아와 피더에서 식사를 시작한다.
나는 몹시 피곤하고 지쳐있었다. 30대와 40대에 걸친 10여년의 시간을 이국땅에서 보내다가 돌아와 다시 한국사회에 뿌리내린다는 건 역시나 어려운 일이었고, 벌새가 열심히 날갯짓을 해야만 공중에 떠있듯이 나 역시 열심히 마음의 날개를 흔들어서 우울과 좌절을 떨쳐버리지 않으면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을 것만 같았기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하고 짐을 싸기까지 딱 두 달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되도록 벌새를 오랫동안 보고 사진도 많이 찍고 가야지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 중 한 달 가량은 자동차 여행을 다니면서 미국 전역에 흩어진 오랜 지인들과 작별인사를 했고, 뉴욕주까지 올라가서 오빠 가족들과도 작별을 하고 돌아오느라 벌새를 만날 시간이 없었다.
나머지 한 달 가량은 짐을 싸고 처분하고 현지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느라 오롯이 벌새를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남들 눈에는 멍하니 딴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그래서 벌새를 볼 수 있는 아침 시간은 늘 애틋했다.
시간은 빨리 지나갔고 그 아파트를 떠나던 마지막 날 아침, 나는 눈뜨자마자 1층으로 내려가 뒤뜰로 통하는 부엌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제 피더를 치워야만 할 때가 된 것이다.
피더에는 새가 없었다. 괜히 마음이 허전했다. 내가 떠날 것을 알고 먼저 떠난 것일까.
여전히 깻잎밭은 무성했고, 토마토 지지대 두 개에는 흰색, 보라색, 연보라색, 분홍색의 나팔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이제서야 내가 꿈꾸던 그림-아름답게 피어난 나팔꽃에 벌새들이 부리를 박고 넥타를 먹는 장면-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나는 떠나야 하는 것이다.
아파트 관리업자들에게 뒤뜰의 나팔꽃과 식물을 남겨두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두었다. 피더가 없어지더라도 벌새들에게 얼마간 넥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피더를 걷어내려고 손을 뻗었을 때 나는 서쪽을 등지고 햇살이 비쳐드는 동쪽을 향해 서 있었다.
바로 그때 익숙한 그 소리...벌새 한 마리가 급히 날아오며 고속으로 날개를 젓는 소리를 들었다.
눈이 부신 가운데 내 눈앞까지 날아온 새를 자세히 보니 목 부분이 붉은 수컷이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냥 그곳에 머물던 벌새 한 마리가 피더를 지키러 왔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게 나의 존스노우라는 걸 알았다.
햇살을 등진 그의 모습은 검은 실루엣으로 보였지만 말이다.
강렬한 황금빛 광선 속에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다.
그는 공중에 잠시 머무른 상태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가슴속으로 격렬한 기쁨과 슬픔이 솟아올라 먹먹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존스노우는 내게 작별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존스노우는 내 눈을 들여다보며 작고 가는 부리를 딱딱 마주쳐 소리를 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동안 고마웠어!"
결국 그 한 마디밖엔 해줄 수가 없었다.
내 인생에서 꽤나 암울했던 지난 2년을 구해준 건 바로 존스노우였다.
나의 벌새 존스노우는 하늘 높이 날아가버렸고, 나는 피더를 떼어 집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너무나 많은 감정이 응축된 이 순간을 나는 오랫동안 기억하며 곱씹기로 결심했다.
그래야만 이별의 순간을 최대한 길게 늘여서 마치 더 오래 함께였던 것처럼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당시 친구가 그려주었던 존스노우의 그림을 되찾게 된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새로이 이사를 하고 물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간 어디에 두었는지 알 수 없었던 그림이 튀어나온 것이다.
이제는 존스노우의 그림을 보아도 마음이 아프지 않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온전히 이별의 순간을 받아들이고 나니,
고통 없이도 그 대상을 자유롭게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을.
벌새 존스노우와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에너지도 샘솟기 시작했다.
어떤 일에는 그렇게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는 존스노우의 부리 앞쪽에 꽃도 그려넣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비워두었다고 했다.
나는 며칠 전 다른 친구의 정원에서 쑥부쟁이와 구절초 등을 꺾어와서 유리잔에 꽂아두었었는데, 그걸 벌새 그림이 놓인 액자 옆에 놓아주었더니 노란꽃 한 송이가 정확히 벌새의 부리를 향했다.
나의 벌새 존스노우는 이제 인공으로 제조된 설탕물이 아닌 진짜 꽃에서 넥타를 빨고 있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오랫동안 벌새를 아시아대륙으로 데려오는 상상을 했었는데(벌새는 아메리카 대륙에만 산다), 이제야 해결책을 찾은 것 같다.
존스노우는 우리집에 산다.
벌새 존스노우의 암호와 같던 마지막 메시지는 이제서야 명확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곳에서도 피더 하나 걸어놓으면 돼. 그러고서 차차 일어나는 기적을 지켜봐! 이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